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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oice

한병철과 네그리 사이의 거리

by parallax view 2014. 10. 18.

"친절마저 상품이 된 시대, 혁명은 없다." (한겨레)


  한병철은 네그리의 낙관주의를 비판한다. 이 세계에는 네그리가 주장하는 식의 다중(멀티튜드)이 아니라 고독인(솔리튜드)이 존재한다. 이 신자유주의 시대는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노동자이면서 자기-경영자이기 때문이다. 자기-경영자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를 착취한다. 고독인으로서의 '나'는 자기를 소진하며 조금씩 죽어간다. '나'는 '너'도, '우리'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고독자로서 사라져간다…

하지만 한병철과 네그리 모두 푸코 식의 권력 개념을 자기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소화한다는 점에서, 이들 사이의 거리가 그토록 먼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푸코의 생명권력(bio-power)은 인구를 관리하고 생육하며 번성하게 하는 전략이자 개인이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기술/담론(technic/discourse)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두고 네그리는 다중을 통제, 관리하려는 생명권력과 다중에게 내재한 역능으로서의 생명정치(bio-politics)를 구분하고, 생명권력을 돌파하는 힘으로서 생명정치를 강조한다.


  반면 한병철은 푸코가 『안전, 영토, 인구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과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에서 이야기했던 자유주의 통치성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전유해, 자기-경영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부각시킨다.


  한병철은 네그리에 비해 푸코의 실제적인 관점에 좀더 근접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병철의 관점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네그리와 유사하다. 푸코 식의 '내재성의 평면'에서 현실을 돌파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오히려 네그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푸코의 주장을 전유하는 셈이다.

말하자면 투쟁은 권력이 있는 곳에 상존하며, 투쟁의 복수적인 지점에 개입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식이다. 계급투쟁의 외로운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으로 묶일 수 없는 이들의 다중적이고 복수적인 투쟁(들)이 있을 뿐이다. 네그리의 다중은 기존의 노동계급이라는 범주로 엮일 수 없으며 당(party)이라는 정치적 형식의 지도를 거부하는 무리(multitude)를 말한다. 그런 점에서 네그리는 혁명 같은 거대 서사를 줄곧 피해왔던 푸코의 관점을 공유한다. 


  그와 꼭 정반대 지점에 한병철이 위치해 있다. 말하자면 그는 네그리가 가능하다고 믿는 지점에서 외부로 빠져나갈 돌파구 같은 건 없다는 것을 간파한다. 물론 그의 포지션은 '비판'을 수행하는 철학자이니, 그가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오히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한병철이 비판만 한다는 게 아니라, 제대로 비판을 하고 있는가에 있다. 한병철은 네그리의 입장과 혁명을 동일시하고, 자기-경영자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나눔이 상품화됨에 따라 '상품으로서의 공산주의'가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어떤 점에서는 그가 옳다. 공산주의가 상품이 된다면 그 순간 공산주의는 종말을 고한다. 특히 리프킨 식의 공유경제는 결코 자본주의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나눔이나 공유, 공동체와 같은 개념으로 환원되거나 그들의 합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어느 하나의 항으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난처하게 하는 유토피아(적 과정)라고 하는 게 보다 적절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공산주의는 상품이 될 수 없는 것, 상품이 되기를 늘 저항하는 것, 자본주의의 승리 속에서도 사고금지(Denkverbot)를 요구받게 되는, 불순하고 불경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한병철이 멈추어선 지점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나는 하이데거 역시 공산주의 앞에서 멈춘 대신 반공주의적 혁명으로서의 파시즘으로 나간 지점이 바로 그곳이 아닐까 의심한다. 한병철을 일종의 하이데거주의자로 보는 건 지나친 것일까. 그리고 하이데거에게 파시즘의 혐의를 일방적으로 덮어씌우는 건 아닐까 나는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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