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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oice

160826

by parallax view 2016. 8. 26.

  간만의 휴가다. 자주 가는 카페에서 앤드루 로스의 <크레디토크라시>를 다 읽고 정지돈의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를 다시 읽는 중이다. 


  정지돈의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를 다시 읽으려니 이전에 읽은 단편들이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미래의 책」은 생각보다 읽을 만했다. 페소아의 <불안의 책>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읽을수록 그의 글은 정치적으로 반동적이라는 혐의를 나도 모르게 붙이고 있었다. 페소아의 이명異名인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는 너무 심약하고 예민한 인물이다. 그의 침울함과 무기력함은 내가 그에 이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나 또한 별반 다를 것이 없을 텐데도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은 일종의 자기혐오일까. 


  페소아/소아르스의 정반대편에는 레닌이 있을 것이다. 근대적인 인물figure의 스펙트럼 양극단에 선 두 인물, 페소아와 레닌. 레닌은 소나타를 가리켜 "이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해, 투쟁에 방해가 될 것이다"는 악명 높은 말을 남겼다. 강철의 규율을 강조했던 가혹한 레닌과 어떤 투쟁도 운동도 회피하며 내면에 침잠한 페소아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근대성modernity의 두 얼굴이며 서로 뒤통수를 마주한 야누스다. 그들은 끊임없이 읽고 쓴 '책의 사람들'이자 수많은 가명/이명으로 활동한 근대의 투사militant다. 어쩌면 두 형상을 서로 뒤섞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다 시위 군중 한가운데 뒤섞여 구호를 외치는 인민 중 하나가 된 페소아/소아르스와, 두 눈을 감고 소나타를 들으며 투쟁의 열기를 잠시 식히는 레닌을 상상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오늘날 페소아는 몇 가지 경구로 소비되고 있으며, 레닌 또한 별다를 것이 없다. 페소아와 레닌의 시대를 뒤흔들었던 공산주의가 이제는 죽은 개 취급을 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글이 이 세계를 배회한다는 건 어쩌면 '공산주의의 유령'이 세상을 떠돈다는 증거는 아닐까. 안다. 비약이고 과장인 것을.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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