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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카를로스 : 68의 그림자가 휩쓸고 간 자리

by parallax view 2011. 5. 10.

얼핏 보면 <카를로스>(2010)는 <뮌헨>(2006)과 <바더 마인호프>(2008)를 포개놓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뮌헨 올림픽 사건을 일으킨 ‘검은 9월단’의 멤버가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폭탄에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영광의 30년’을 경험하던 1970년대, 동서 냉전과 신(新)식민주의, 반전(反戰) 운동이 뒤섞이며 급진적인 무장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던 시대. 카메라는 ‘카를로스 자칼’이 어떻게 태어나고 성공했으며 몰락했는지를 단절된 템포로 포착한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카를로스가 누구이며 무엇이 그를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는가에 집중하는 듯하지만,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더욱 도드라지는 것은 카를로스가 아니라, 시대 그 자체인 것만 같다. 그런 점에서 <카를로스>는 옛 제국주의 국가들의 신식민주의 네트워크에 대항하는 무장투쟁 네트워크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독일 적군파와 일본 적군파,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PFLP 같은 반(反)자본주의 조직들과 구 소련, 구 동독, 헝가리 등 현실 사회주의 국가, 거기에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등 옛 ‘제3세계 블록’이 어떻게 1975년 OPEC 습격 사건과 같은 ‘사건들’을 통해 복잡다단하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카를로스>는 카를로스의 투쟁이 감각적으로 펼쳐지는 1부까지 유쾌한 템포를 유지하며 관객을 영화 속으로 손쉽게 끌어들인다. 그러나 카를로스의 ‘리즈 시절’이라고 할 2부부터는 ‘달이 차면 기우는’ 인생사를 따라가는 듯 점점 속도감이 떨어진다(덧붙여 이성관계가 늘 비슷한 앵글로 묘사되는 것은 그의 삶에서 이성관계가 차지하는 비중과는 별개로, 횟수를 더해갈수록 지루해지기만 한다). 덕분에 2부부터 전체 5시간 30분이라는 ‘괴물 같은’ 시간을 체감할 수 있다. 이런 배치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카를로스 자칼에 붙었던, 신출귀몰한 테러리스트라는 신화가 당대의 유럽 시민들―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시민들―에게 얼마나 양가적인 감정을 불어넣었는지를 ‘지금 여기’의 관객들에게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유쾌한 혁명가이자 군인 정신과 권위주의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그 안에서 교차한다. 그러나 카를로스라는 한 인간의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서사가 길어지고 ‘네트워크’가 선명하게 드러날수록 카를로스의 캐릭터는 더욱 단조롭고 전형적으로 보인다. 카를로스에 대한 기록들 중 여전히 여백이 많다는 게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토드 헤인즈가 7명의 인격을 통해 밥 딜런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고자 한 것과는 달리, 아사야스는 카를로스의 궤적을 따라가는 데 일단 만족하는 것 같다.

여기서 “왜 ‘카를로스’인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카를로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어떤 흔적을 직시한다. 카를로스의 시대는 68혁명의 시대이며, 카를로스는 68의 그림자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세계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킨 지 약 20년. 왜 유럽이 68의 그림자가 휩쓸고 간 자리를 되새겨보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진 이 시공간 속에서 말과 법에 철과 피로 대항한 혁명가들이 거듭 소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한편, 끝내 카를로스를 붙잡은 프랑스 경찰 당국은 ‘법의 복수’가 어떤 정념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카를로스는 그저 체 게바라가 되고 싶었던 한 명의 ‘슈퍼스타’에 불과한 것일까? 카를로스와 긴장 관계에 있던 카다피도 권좌를 위협받고, ‘9.11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도 미군에 살해당한 지금, <카를로스>가 관객들과 만나는 ‘사건’이 공교롭다.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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