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2009)는 <로큰롤라>(2008)의 불량스러움을 홈즈의 캐릭터에 들이붓고 자본의 힘으로 쌔끈하게 다듬어낸 물건이다(난 아직도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스>(1998)을 못 봤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하는 홈즈는 여전히 양키 같지만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를 온 몸으로 드러내고, 주드 로의 왓슨은 똑부러지는 발음과 수트가 잘 어울리는 몸이 서로 찰싹 달라붙어 좀체 뗄레야 뗄 수 없다. 둘 다 몸의 승리다. 액션성이 부각되긴 했어도 그것도 홈즈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서서히 수긍이 간다. 레이첼 맥아담스의 아이린은, 좀 더 캐릭터의 교묘함을 살려도 좋았을 것을. 원작도, 홈즈의 수많은 변주들도 잘 모르는 관계로 감히 과거의 이미지들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가이 리치의 홈즈는 셜록 홈즈의 수많은 조각상 중에서 제법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아직 노동계급의 정치가 전면에 부상하기 이전의 산업시대를 배경으로, 오컬트와 과학이 기묘하게 동거하던 당시 대영제국을 잘 살려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언어가 노동계급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과문한 것일까. 모리아티 교수의 출현을 암시하는 마무리에 <배트맨 비긴즈>(2005)가 겹친다. 다음 편은 홈즈의 '다크나이트 리턴즈'가 될 것인가.
'Traumfabri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를로스 : 68의 그림자가 휩쓸고 간 자리 (0) | 2011.05.10 |
---|---|
[옮김] 당신과 나의 전쟁 (6) | 2010.02.24 |
<파주> : 가장 두려운 것, 익숙함 (6) | 2009.11.27 |
<디스트릭트9> : '디스트릭트9'은 어디에나 있다 (10) | 2009.10.16 |
시나리오네트워크 (10) | 2009.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