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y Voice

유서

by parallax view 2011. 1. 2.
유서를 썼다. 새삼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좀 무섭게 들리겠지만, 연말 결심은 2011년 첫날에 유서를 쓰자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둘째날에 쓰고 말았지만.

올해 마지막 날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나는 그 다음 새해 첫날 유서를 읽으며 괜히 비장한 척한 자신을 마음껏 비웃을 것이다. 인적 드문 공터에 가서 라이터 불로 유서를 태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 유서는 남은 분들의 것이다.

유서에서 잠깐 아룬다티 로이와 최승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둘 다 서른에 대해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했다. 아룬다티 로이에 대해서는 확실히 틀렸는데, 왜냐하면 그녀가 말한 나이-늙지도 젊지도 않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는 서른 하나였기 때문이다.

만약 올해를 넘겨서까지 살아있다면, 나는 다음해에도 유서를 쓸 것이다. 자신을 달래며 또 비웃으며. 다음해에도, 또 다음해에도. 십 년을 써도 겨우 열 편이다. 그러나 모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언제나 한 편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수증과 다를 게 무어냐.

서른 즈음이다. 또래들은 이미 서른이 되었다. 나는 그 언저리에서 덩달아 서른이 된 기분이다. 이 걸쳐있는 시간이 문득 아름답다. 다른 서른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김광석을 들었다.

나의 시간이 흘러간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나의 시간.


'My Voi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형도] 우리는 그 긴 겨울의 通路를 비집고 걸어갔다  (6) 2011.01.14
Happy Birthday to Me  (4) 2011.01.10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8) 2010.12.31
공병호의 한 마디  (2) 2010.11.22
세기말의 인간  (0) 2010.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