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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by parallax view 2010. 9. 29.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홍기빈 / 녹색평론사, 2006)는 한미 FTA가 좌우파 갈등으로까지 비화되던 2006년에 씌여진 '팜플렛'이다. 지금이야 한미 FTA가 미국 측의 입장 보류로 인해 답보 상태에 있지만, 97년 IMF 구제금융 이후로 한국의 체질을 또 한 번 바꿀 격랑이었다는 걸 떠올릴 필요가 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선전하고 독자 대중에게 단결을 호소하는 글이 바로 팜플렛 아니던가. 이런 팜플렛 중에는 지금도 고전의 반열에 드는 것들도 종종 있다. 맑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그렇고,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 그렇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우석훈의『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와 함께 한미 FTA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뿌린 '삐라'에 다름 아니다.

제목에서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듯이, 책은 한미 FTA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investor-state claim(이하 '직접소송제') 조항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어려운 국제법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편견은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비록 직접소송제의 역사적 기원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설명은 친절하고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다. 글 마디마디에 위트가 잘 스며들어서 따라 읽는 맛도 좋다. 그러면서도 현상을 전지구적 차원에서 탐색하는 지구정치경제global political economy 관점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런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독자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타깝다. 팜플렛이라는 매체가 자비출판(自費出版)이라는 불운한(?) 역사를 갖고 있다고는 해도 말이다.

글쓴이의 주장은 이렇다. 직접소송제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투자자가 자신의 이윤을 위해 국가를 공격하는 창이라는 것이다. 직접소송제가 왜 문제인가. 쟁점은 수용expropriation과 법적 관할권jurisdiction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책에 잘 나와있으니 그냥 읽어 보시길 권한다. 여기서는 직접소송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만 이야기하겠다. 직접소송제는 외국인 투자자가 자국과 협정을 체결한 국가에 '투자'를 할 때, 체결국에 의해 '자산'의 손해를 보았을 경우 그 국가를 국제 중재재판소에 제소할 권리를 외국인 투자자에게 부여하는 조항이다. 문제는 이 투자와 자산의 범위가 너무 넓고, 국가는 투자자를 제소할 수 없으며, 국제 중재재판소의 중재과정이 너무나 비민주적이라는 데 있다. 국제 중재재판소가 주권국가의 국내법이나 주권국가 간의 합의로 도출된 국제공법에 기반한 게 아니라, 중세 상인법에 토대를 두었다는 것도 문제다. 정의나 형평성, 환경 같은 가치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로지 '이해 당사자' 간의 합의만이 목적이다. 중재재판소의 선례들은 더 나아가 중재재판이 오직 이윤만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외교통상부는 직접소송제가 "기본적으로 투자와 관련해 내외국인 차별금지, 이행의무 부과금지 등 외국인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협정상의 중요한 의무 위반에 대해서만 제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만약 투자자와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를 대비해 예외조항을 만들어 두고, 또 협상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면 되기 때문에 직접소송제 조항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홍기빈은 이런 태도가 얼마나 안일한 것인지 차근차근 사례를 제시하며 반박한다.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모범생으로서 공기업 민영화와 기업 구조조정, 긴축재정정책 강화 등을 충실하게 따랐다. 여기에 직접소송제 또한 적극 받아들여 해외 자본의 국내 유치를 도모했다. 그 결과는? 초국적 기업들에 의한 소송 러시였다. 왜 호주 시민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할 때(AUSFTA) 직접소송제 조항 삭제를 적극적으로 요구했겠는가. 이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 있다.

이에 따라 의회에서는 정부의 협상단에 대한 추궁이 이어졌다. 정부의 수석 협상대표인 스티븐 데디(Stephen Deady)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이익이 반영되도록 문구를 잘 짜 넣을 수 있다"고 말하며 빠져나가려 했을 때 노동당 소속 스티븐 콘로이(Stephen Conroy) 의원은 이렇게 몰아붙였다. "그런 식으로 법적 정의를 엄격히 해봐야 그걸 뒤바꾸는 것을 업으로 삼는 변호사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변호사들은 돈만 주면 흑을 백이라고 우기면서 소송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며, 종종 흑이 백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고 만다." 요컨대 그런 변호사들에게 이용될 빌미가 될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자체를 협정에서 근원적으로 빼라는 것이었다. (p.172)

직접소송제는 주권양도 행위에 다름 아니다. 홍기빈은 80년대 신자유주의 전략이 공기업 민영화와 기업 구조조정, 긴축재정정책, 자본시장 개방 등의 거시경제정책으로 구사되었다면,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한 90년대 이후에는 직접소송제와 같은 미시정책을 통해 구체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직접소송제 조항을 포함한 FTA가 타결된다면, 어떤 나라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조세를 회피하고, 손톱만큼의 소송 가능성이라도 포착하면 보유하고 있는 법률가 부대를 총동원하는 것이 초국적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이 다방면으로 소송을 걸어온다면 어떤 나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미국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존 캐리 민주당 상원의원은 이 조항의 삭제를 적극 주장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국가의 정책자율성이 설 자리가 없다. 또, 소송 비용과 보상 비용은 모두 그 나라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중재재판 내용도 공개되지 않고, 시민들의 접근도 막는 중재재판에 어떤 정당성과 민주성이 있단 말인가?

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을까? 바로 식량주권과 시민의 생존권 때문이었다. "미친소 너나 먹어."라며 싸우고 또 싸웠지만, 정작 한미 FTA 자체의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촛불 안에서도 한미 FTA가 '전지구적 대세'이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자리잡고 있지는 않았던가. 지금이야 미국이 자동차 산업 문제 등으로 협상을 유보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FTA 체결을 요구한다면 그 때는 어떡할 것인가? 가뜩이나 파급효과가 큰 한미 FTA인데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같은 독소조항마저 삽입된다면 시민의 생존권과 주권은 보장받기 어렵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는 시민들이 국민국가 밖에서 전지구적 시민운동으로 연대하는 것 못지 않게, 국민국가 안에서 정책자율성을 지키는 게 왜 중요한지를 강하게 호소하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필독을 권한다. 한미 FTA 협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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