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만화 스토리 작가의 말처럼 그녀의 역사서술은 동인지-그 중에서도 남성 동성애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화들-를 연상케 한다. 특히, '남성성'에 대한 애착과 남자들 사이의 인간관계는 중세 이탈리아와 고대 로마, 중세 일본을 넘나드는 서술의 기반으로 자리잡는다. 체사레 보르자도 그녀의 시선에서 빗겨갈 수 없었다. 시오노는 체사레라는 남자의 인격과 행동력에 주목하며, 체사레가 살았던 시대의 세평과 근대의 르네상스 연구자(특히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평가 따위는 체사레의 매력을 강조하는 조미료가 되거나 명백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녀가 바라본 체사레는 '근대인 체사레 보르자'였다.
종교가 현실정치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고 또 각종 금전관계와 유착했던 15,6세기 유럽에서 시오노에 의해 묘사되는 체사레는 운과 능력을 겸비한 사내였다. 그는 미남은 아니었지만 강인한 느낌을 주었고, 적 앞에서 여유롭게 웃지만 옆구리를 찌를 준비를 늘 하고 있는 영리한 사람이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완과 충분한 재력, 정치적인 호위(아버지가 교황이라는 데서 오는 권위)를 모두 가졌기에 체사레는 역사의 주인공-영웅사관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나, 봉건사회에서 권위적인 입장에 선다는 점을 보건대-으로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시오노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의 근대적인 사고와 행동에 있다. 기존의 종교와 도덕관념 등과 완전히 거리를 두고 자신의 자유와 야심을 철저히 추구하는 자유주의자 체사레는 봉건사회의 윤리에 구속된 여타 귀족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로마냐 공국을 건설한 뒤 용병대 체계에서 '국민개병제'로의 군사조직의 변형과 그것에 기반한 통일 이탈리아라는 국민국가를 구상하는 모습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와 오버랩된다. 국민개병제와 근대 교련, 근대국민국가의 원형인 절대 왕정은 그로부터 수십 년 후인 30년 전쟁 후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시간을 앞지를 뻔했던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천재'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그의 근대인으로서의 면모는 마키아벨리나 다 빈치 등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정치/경제 구조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실 상 유럽의 상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약 절반을 양분한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무역활동은 근대로의 진전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단계는 흐름의 연속이자 생산체제의 단절의 역사다. 유럽 사회가 근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르네상스와 종교전쟁으로 묘사하는 기존 역사관을 따르더라도 체사레 보르자의 활동은 그 시기에도 존재하는 문화의 다양성과도-이탈리아는 지리적으로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가까워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시오노의 작품들에서도 그런 면은 종종 묘사된다-밀접한 연관이 있다.
다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은 체사레 보르자" 라는 추정은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시오노가 분명하게 밝혔다기보다는 '우아한 냉혹'을 읽은 독자들이 생산한 추정인 셈인데, 시오노는 마키아벨리가 당시 이탈리아의 떠오르는 야심가로서의 체사레를 피렌체 외교관 자격으로 접견한 사실을 바탕으로 문학적인 몇 가지 장난을 펼쳤을 뿐이다. "어느 정도 연관은 있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분위기를 띄우지만, 공화주의자 마키아벨리에게 체사레는 여전히 위험한 인물임은 분명했다. 다만 시오노는 체사레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이 위험한 사내의 과감함과 교활함-를 긍정한다.
한편 그녀는 이 매력적인 남자와 그 가족을 서술함에 있어서 여자관계와 남색(男色)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가장 거룩해야 할 교황의 가족이 가장 사치스럽고 방탕했다는 세평은 비단 보르자 가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교권 전체가 부패해 위클리프와 후스 등의 종교개혁가들을 처형하고 그 추종자들과 적대적인 전쟁상태에 돌입하던 당시 사회에서 교황을 비롯한 지배계급의 부패는 극심했다. 시오노는 그런 역사적인 사실들을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서술의 양념으로 쳐가면서 체사레와 그 일가의 남색이나 자유분방한 성관계를 가볍게 서술한다. 시오노 작품의 미시적인 부분이면서도 항상 등장하는 남색은 작품의 극적인 분위기를 위한 소스이기에 다른 작품들에도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오스만 튀르크 쪽 주인공 메메트 2세가 그의 어린 동성 애인과의 잠자리에서 깨는 걸로 극을 시작한다.
결국 돌아오는 곳은 시오노의 극 구성의 특징인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지점'이다. '우아한 냉혹' 역시 그녀의 서술방식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며, 논픽션을 자기 식으로 재구성해 내는 힘이 여지없이 발휘된다. 그러나 체사레가 사는 방식은 다중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지극히 억압적인 지배자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는 시대를 앞질러가다 '운명의 장난으로' 무너진 비운의 사내임은 분명하다. 그나마 독자들은 그가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 죽었기에 안도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시오노가 '우아한 냉혹'을 통해 찬미하는 것은 젊은 남자의 과감한 행동력이다. 시오노의 기획은 올리버 스톤 감독이 '알렉산더'를 만들 당시의 인터뷰와 합치된다.
"젊은이가 역사를 이끈 적이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알렉산더와 체사레 보르자 모두 역사를 이끌기 위한 동력을 확보하는 입장에 있다는 걸 전제로 한다 해도, 체사레 보르자에 대한 재구성은 분명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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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올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서평.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과 함께 작가의 시선을 자신의 시선으로 착각하며 보았더랬습니다. -_-;;
지금 읽어보면 또 생각이 다르겠지요. :)
하지만 '우아한 냉혹'은 시오노와의 괜찮은 첫 만남이었습니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나의 점수 : ★★★
시오노 나나미와의 첫 만남. 그녀의 글에 대해 "역사는 동인지다" 라고 평한 것에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 그러나 이 재미있는 에세이들을 놓칠 수는 없었다. '로마인 이야기'는 아직 읽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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