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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수많은 길이 펼쳐져 있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제국 /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by parallax view 2005. 2. 21.

제국 Empire 은 놀라운 책이다. 현상과 그 분석의 깊이, 해박함의 수준을 보아도 충분히 학구적이며,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을 설명하는 과정은 서사적이기도 하다. 맑스적인 혹은 맑스주의적인 글쓰기/글읽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낯선 개념과 그들 간의 혼합 속에서도 어느 정도 독해의 갈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제국은 무수한 오해를 낳을 여지가 있다. 개념의 이해에서부터 '제국'의 지배형태 등등에 대해 자칫하면 '미국이 곧 제국'이라는 등의 오해가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제국'이 자본주의 질서의 확장이라는 개념을 전제하지 않는 한 발생하는 필연적인 실수일 것이며, 제국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염두에 두면서도 종종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제국은 무수한 학문분야와 현상-국제정치경제학, 맑스주의 역사학, 포스트모더니즘, 사이버펑크, 미국의 탄생과 발전, 인종주의 등등-을 가로지르고 있고, 깊이있는 독해를 위해서는 스피노자, 마키아벨리, 헤겔, 니체, 맑스, 푸코, 들뢰즈/가타리, 그리고 네그리의 다른 저작과 아우토노미아 사상가들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인 문턱이 존재한다. 제국의 시도는 분명 종합화이지만, 이 종합화를 네그리/하트와 같이 달려가기 위해서는 각각의 상이한 문턱들을 뛰어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용의 충실함과 해박함이 도리어 독해에 문제가 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그리/하트가 제국에서 풀어내고자 하는 시도는 훌륭하다. 특히 두 개의 근대성의 발견과 제국의 탄생, 훈육사회/통제사회를 설명하는 것은 근대 분과학문의 경계를 스스로 넘는 탈근대적인 서술이다. 생각컨대 제국은 또한 문학적이다. 여기서 네그리/하트, 특히 하트의 보이지 않는 공헌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제국하면 으레 네그리를 떠올리지만 공저자인 하트는 문학이 주된 전공(근대 분과학문의 경계 상)으로, 이들은 맑스/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의 선언적 의미와 문학적인 뉘앙스를 멋지게 오마쥬하고 있다. 제국은 '제국'의 탄생을 알리는 선언문인 동시에 '대항제국' Counter-Empire 의 생산을 진지하게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제국이 안고 있는 한계는 종종 지적받는 것처럼 '다중' Muititude 의 존재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맑스가 자본 Capital 의 저작에 몰두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생산의 영역으로 내려가' 파헤쳤지만,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해서는 별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에 대해 네그리/하트는 새 저작인 다중을 집필하였지만 아직 살펴보지 못했고, 출간 후의 영향력이 제국에 미치지 못해 '다중'의 생산에 대한 충분한 논쟁거리를 던져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한다(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위험함은 물론이다. 올바른 비판을 바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중'을 기다린다는 것은 메시아 혹은 대중을 선도할 '전위'를 기다리는 바램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한다.'전위' Vanguard 와 '대중' Mass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가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실천보다 도태되고 고립되는 상황을 낳았다는 것은 수많은 혁명 상황과 현재의 투쟁들이 역사를 통해 고증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우리는 네그리/하트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다중의 징후를 세계의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국 안에서도 언급되는 68혁명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LA 폭동 등 뿐만 아니라, 역사의 각 장면들 scene - 수많은 농민반란과 그 실패, 그것이 낳은 보다 반항적이고 지혜로운 대중-에서 '자발성'과 '현명함'으로 무장한 다중은 늘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 역시 혁명적인 상황을 자주 체험하지 않았는가. 한국전쟁을 전후한 이념갈등, 반일투쟁, 반독재투쟁, 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87년의 혁명적 국면들. 다중은 오히려 가까이 있지 않을까.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푸른 희망을 생산해 가는 녹색정치운동, 성인과 미성년자 사이의 이분법을 깨고 사회의 동반자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 운동, 지율 스님의 투쟁과 사람들의 화답이 일구고 있는 천성산 살리기 운동, 여중생의 사망에 분노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촛불을 밝힌 추모집회(물론 그 안에서 기존 운동사회 헤게모니를 쥔 운동가들이 스스로 전위가 되어 '미군 철수'를 위해 집회를 활용했다는 측면과 '질서'라는 근대적인 관념이 운동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훼손했다는 것도 지적되어야 한다)...

'제국'의 자본주의적인 생체정치가 끊임없이 작동하는 현실에서도 다중은 생산된다. 그것은 나일 수 있고, 내 곁의 친구들일 수도 있다. 흑인 여성 파트타임 노동자일 수도 있고, 아일랜드 탄광 노동자일 수도 있다. 다중의 투쟁전략 또한 다양하다. 잡종성과 다양성이 '제국'을 생산하는 동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중'이 경계와 제한이 없는 '제국'의 리좀에 있기 때문에 거꾸로 잡종성과 다양성은 '다중'의 거름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중'은 국제주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전략과 대안은 여전히 실천 속에서 생산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제국은 실천에 대한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뿐이다. 제국은 그것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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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 올린 '제국' 서평.
반 조금 넘겨 읽은 주제에 서평까지 쓰는 것이 우습지만, 이 글 전에 올려진 리뷰에 대항(?)하려는 의미에서 써놓은 글입니다.

'제국'은 정말 멋진 책입니다. 사회과학도가 아니라도 읽어볼만한 책.
그러나 개념들에 대한 사전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요.
그나마 책의 부록으로 개념설명과 관련도서를 실은 것이 괜찮은 기획.

제국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나의 점수 : ★★★★★

현재의 정치적 구성과 전망을 활기차게 파헤치는 그 통찰에 갈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