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 Think

091115 책 이야기

by parallax view 2009. 11. 15.
0. 몸이 낫고 나니까 이번에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걸 위해 난 무얼 해야 할까. 딱 그 고민. 머리는 쉬임 없이 돌아가는데 몸은 한없이 쉬고 싶어한다.

1.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형성백 옮김 / 부키, 2004)를 뒤늦게 읽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장하준은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과 자본시장개방 등을 강요한 워싱턴 컨센서스에 비판적이다. 공기업 민영화와 자본시장개방, 무역장벽 철폐가 경제성장의 도그마로 고착되었던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장하준의 선진국 비판은 그저 철 지난 보호무역 옹호론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신자유주의의 기세가 한풀 꺾인 지금에 와선 각각의 입지는 뒤바뀐 것 같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정치경제의 국민적 체계>(1841)에서 제목과 기본 방향을 가져온 것 같다. 영국, 미국 등 오늘날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 사용하던 산업무역기술ITT 정책과 제도들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한편, 이들이 개도국 단계를 벗어난 뒤엔 후발주자들을 떨궈낼 목적으로 기존의 ITT 정책을 버리고 자유무역론을 신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위선에 지나지 않음을 역사적 방법론을 통해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재밌는 부분은 '미국의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이었다. 장하준의 이후 저서를 언뜻 보더라도 그의 입장은 일관되는데, 장하준과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창용과의 SBS 시사토론 내용은 경제학자이자 정책조언자인 두 사람의 입장 간 차이와 공통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sonnet, <SBS시사토론 : 이창용-장하준>).


 
2. 로마사에 대한 입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공화정의 몰락을 역사적 필연으로 보느냐, 보지 않느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그저 그리스 하면 로마가 따라오는 식의 국내 독자의 기존 인식을 확 바꾼 긍정적 효과 외에도, 카이사르에 대한 팬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나머지, 로마사의 중심을 카이사르에 맞춰 역사 이해에 대한 지평을 좁힌 부정적 영향도 있는 것 같다(<열두 명의 카이사르>의 추천사 같은 경우,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불만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필립 마티작의 <로마 공화정>(박기영 옮김 / 갑인공방, 2004)은 공화정의 유명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집단전기적으로 펼치면서 다양한 사진자료를 첨가해 보는 재미를 부각시킨다. 뒷표지의 로마 공화정 묘사는 고대 공화정을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해석한 감이 있다. 공화정 연구의 주요 대상은 아무래도 귀족 가문이다. 카이사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둘째쳐도, 공화정 말기의 인물들-마리우스, 술라, 폼페이우스 등-에 대한 입장도 오락가락한다(사임의 <로마 혁명사>가 참고문헌에 등재되어 있긴 하지만, 지은이에게 사임만큼의 균형감각을 기대하긴 힘들다.). 대중적인 자료용 기획물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3.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2005)는 그냥 기분전환용으로 집은 소설. 야마모토 슈고로상, 아쿠타가와상, 이즈미 교카상... 일본은 소설상도 많다는 얘기도 되고, 그만큼 소설상으로 프로모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얘기도 되고, '검증'된 작품 아니면 국내에서 팔리기 힘들다는 얘기도 되는 것 같다. 스토리나 묘사에선 별 새로움을 못 느끼겠고, 그저 마지막 한 장면만이 또렷이 각인되어서 "역시 뭐든 기억에 남는 거 딱 한 장면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해주었다. 하루쯤은 불쾌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2005)은 원래 친구 생일 선물로 사준 거였는데, 골골거리는 게 좀 나아질 즈음 눈앞에 어른거리는것을 그대로 집어서 읽었다. 시중에 널려있는 자기개발서나 위안용 에세이보다 이 책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러셀 본인이 서문에 썼듯이 책의 주 타겟은 학자나 전문가가 아니라, 현대(1930년대긴 하지만)의 일반 대중이다. 현대인의 불행의 원인을 짚고, 그 불행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 왔으며, 노력하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소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옮긴이가 러셀의 담백한 문장을 가능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인상이 들었는데, 영문본으로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Read & Thin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떡밥춘추 제2호 리뷰  (16) 2009.12.02
091117  (6) 2009.11.17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19) 2009.10.26
[렛츠리뷰] 수학 재즈  (10) 2009.10.08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8) 2009.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