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략 7년 전쯤, 서울역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언제나 패스트푸드점은 가장 한계적인 임금을 자랑(?)하는데, 잘 알려져 있듯이 이 가장 작은 조직에도 승진이 있어서 크루crew로 불리는 알바들도 꾸준히 일하면 매니저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은 일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고딩이라는 점, 패스트푸드점 임금은 당연히 낮다는 인식, 그리고 (소수이긴 하지만) 승진에 대한 기대 때문에 어느 정도 상쇄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이었다. 오래 일한 크루여서 주변에선 매니저 승진을 기대하던 누나에게 무심코 물었다. "알바들도 노조 만들 수 있지 않아요?"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안 돼. 노조 만들면 큰일 나!"
2. 노조 만들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젊은 알바들. 그래서 혁명이란 말은 더더욱 입 밖에 꺼내기 힘들고, 그 이전엔 거의 생각해 본 적도 없는 20대.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 레디앙, 2009)는 <88만원 세대>의 후속편인 것 같지만, 그보다 차라리 조한혜정의 <교실이 돌아왔다 :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생의 글읽기와 삶읽기>의 연장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leopord, <오랫만에 책 얘기>). 그래서 우석훈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선 실망하기 일쑤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연세대와 성공회대 학생들 일부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20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책의 한계는 뚜렷하다. 애초 이들이 20대의 대변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두되, 그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우석훈의 언어로, 20대에 대한 분석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3. 그럼에도 '진 짜기'에 대한 우석훈의 제안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20대에 대한 부채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나는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너무 잔인한 규정이다"는 공지영의 반발이야말로 우석훈이 바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을 부채감을 어느 정도 털어내기 위한 작업으로 보던, 20대를 위한 해법으로 보던 책에서 제시되는 실천방법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여기 네 가지 목표와 세 가지 전략이 제시된다. 노동권, 거주권, 보건권,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해 20대 1만 명이 지원하는 20대 당사자운동(시민운동), 20대 기초의원 출마(정치운동), 알바 노조(노동운동)가 그렇다. 이렇게만 해도 뭔가 될 것 같은데, 정작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꼬"에서 누구나 다들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믿지 않는다.
4. 책은 끝내 믿음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려면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믿음보다 그 믿음을 '보증'해 줄 무언가를 찾는다.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몸으로 겪고 있는 세대이고 시대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우석훈이 특유의 수다를 풀어헤치며 동원하는 삼국지를 다시 불러내자면, 우리는 '도원결의'를 맺기도 전에, 관우도 장비도 믿을 수 없다고, 믿을 건 내가 팔 '돗자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5. 그래서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못 미덥고 갑갑해 보여도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조금은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하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에서 우석훈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고, 수다의 마당은 글을 넣은 김명진, 박재용, 유재영, 방영화, 백고은, 이윤주, 서명선의 것이다. <교실이 돌아왔다>와 이 책의 연결고리는 방영화다. 2006년과 2007년의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었던 06학번 영화는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 어느 덧 대학원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졸업반이 되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 3년. 그 동안 20대는 얼마 만큼 바뀌었으며, 또 바뀌지 않았는지를 방영화와 백고은을 통해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고은의 가난과 절망감은 고은 개인의 것이면서 20대가 느끼는 '가장 보통의 감정'이기도 할 것이다.
6. 유재영이나 서명선은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규정을 너무 쉽게 따라간 감이 있고, 그것이 88만원 세대론의 맹점을 키우는 것 같다. 즉, 개개인의 성향을 카테고리로 묶을 수는 있어도, 이 카테고리를 개개인에 적용할 때엔 상당한 갭이 발생한다. 그래서 세대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세대론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혹자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지적은 88만원 세대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는 점을 상쇄하지 못한다. 세대론이라는 규정을 넘어서고 싶다면 그 이전에 각자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을, 20대던 30대던 애틋함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그 애틋함이 믿음으로 이어질지 어떨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끝내 믿음에 대한 책이다.
2. 노조 만들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젊은 알바들. 그래서 혁명이란 말은 더더욱 입 밖에 꺼내기 힘들고, 그 이전엔 거의 생각해 본 적도 없는 20대.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 레디앙, 2009)는 <88만원 세대>의 후속편인 것 같지만, 그보다 차라리 조한혜정의 <교실이 돌아왔다 :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생의 글읽기와 삶읽기>의 연장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leopord, <오랫만에 책 얘기>). 그래서 우석훈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선 실망하기 일쑤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연세대와 성공회대 학생들 일부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20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책의 한계는 뚜렷하다. 애초 이들이 20대의 대변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두되, 그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우석훈의 언어로, 20대에 대한 분석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3. 그럼에도 '진 짜기'에 대한 우석훈의 제안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20대에 대한 부채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나는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너무 잔인한 규정이다"는 공지영의 반발이야말로 우석훈이 바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을 부채감을 어느 정도 털어내기 위한 작업으로 보던, 20대를 위한 해법으로 보던 책에서 제시되는 실천방법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여기 네 가지 목표와 세 가지 전략이 제시된다. 노동권, 거주권, 보건권,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해 20대 1만 명이 지원하는 20대 당사자운동(시민운동), 20대 기초의원 출마(정치운동), 알바 노조(노동운동)가 그렇다. 이렇게만 해도 뭔가 될 것 같은데, 정작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꼬"에서 누구나 다들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믿지 않는다.
4. 책은 끝내 믿음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려면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믿음보다 그 믿음을 '보증'해 줄 무언가를 찾는다.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몸으로 겪고 있는 세대이고 시대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우석훈이 특유의 수다를 풀어헤치며 동원하는 삼국지를 다시 불러내자면, 우리는 '도원결의'를 맺기도 전에, 관우도 장비도 믿을 수 없다고, 믿을 건 내가 팔 '돗자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5. 그래서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못 미덥고 갑갑해 보여도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조금은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하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에서 우석훈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고, 수다의 마당은 글을 넣은 김명진, 박재용, 유재영, 방영화, 백고은, 이윤주, 서명선의 것이다. <교실이 돌아왔다>와 이 책의 연결고리는 방영화다. 2006년과 2007년의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었던 06학번 영화는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 어느 덧 대학원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졸업반이 되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 3년. 그 동안 20대는 얼마 만큼 바뀌었으며, 또 바뀌지 않았는지를 방영화와 백고은을 통해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고은의 가난과 절망감은 고은 개인의 것이면서 20대가 느끼는 '가장 보통의 감정'이기도 할 것이다.
6. 유재영이나 서명선은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규정을 너무 쉽게 따라간 감이 있고, 그것이 88만원 세대론의 맹점을 키우는 것 같다. 즉, 개개인의 성향을 카테고리로 묶을 수는 있어도, 이 카테고리를 개개인에 적용할 때엔 상당한 갭이 발생한다. 그래서 세대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세대론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혹자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지적은 88만원 세대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는 점을 상쇄하지 못한다. 세대론이라는 규정을 넘어서고 싶다면 그 이전에 각자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을, 20대던 30대던 애틋함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그 애틋함이 믿음으로 이어질지 어떨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끝내 믿음에 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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