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노조 만들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젊은 알바들. 그래서 혁명이란 말은 더더욱 입 밖에 꺼내기 힘들고, 그 이전엔 거의 생각해 본 적도 없는 20대. 우석훈의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 레디앙, 2009)는 <88만원 세대>의 후속편인 것 같지만, 그보다 차라리 조한혜정의 <교실이 돌아왔다 :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생의 글읽기와 삶읽기>의 연장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leopord, <오랫만에 책 얘기>). 그래서 우석훈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선 실망하기 일쑤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연세대와 성공회대 학생들 일부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20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책의 한계는 뚜렷하다. 애초 이들이 20대의 대변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전제로 두되, 그들과 교감하는 과정을 우석훈의 언어로, 20대에 대한 분석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3. 그럼에도 '진 짜기'에 대한 우석훈의 제안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20대에 대한 부채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나는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너무 잔인한 규정이다"는 공지영의 반발이야말로 우석훈이 바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책을 부채감을 어느 정도 털어내기 위한 작업으로 보던, 20대를 위한 해법으로 보던 책에서 제시되는 실천방법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여기 네 가지 목표와 세 가지 전략이 제시된다. 노동권, 거주권, 보건권, 교육권을 확보하기 위해 20대 1만 명이 지원하는 20대 당사자운동(시민운동), 20대 기초의원 출마(정치운동), 알바 노조(노동운동)가 그렇다. 이렇게만 해도 뭔가 될 것 같은데, 정작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꼬"에서 누구나 다들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믿지 않는다.
4. 책은 끝내 믿음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려면 우선 믿음이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믿음보다 그 믿음을 '보증'해 줄 무언가를 찾는다.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몸으로 겪고 있는 세대이고 시대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우석훈이 특유의 수다를 풀어헤치며 동원하는 삼국지를 다시 불러내자면, 우리는 '도원결의'를 맺기도 전에, 관우도 장비도 믿을 수 없다고, 믿을 건 내가 팔 '돗자리'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5. 그래서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만드는 과정은 못 미덥고 갑갑해 보여도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조금은 뭔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하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에서 우석훈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고, 수다의 마당은 글을 넣은 김명진, 박재용, 유재영, 방영화, 백고은, 이윤주, 서명선의 것이다. <교실이 돌아왔다>와 이 책의 연결고리는 방영화다. 2006년과 2007년의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 수업을 들었던 06학번 영화는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서 어느 덧 대학원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졸업반이 되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 3년. 그 동안 20대는 얼마 만큼 바뀌었으며, 또 바뀌지 않았는지를 방영화와 백고은을 통해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고은의 가난과 절망감은 고은 개인의 것이면서 20대가 느끼는 '가장 보통의 감정'이기도 할 것이다.
6. 유재영이나 서명선은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규정을 너무 쉽게 따라간 감이 있고, 그것이 88만원 세대론의 맹점을 키우는 것 같다. 즉, 개개인의 성향을 카테고리로 묶을 수는 있어도, 이 카테고리를 개개인에 적용할 때엔 상당한 갭이 발생한다. 그래서 세대론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세대론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혹자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 지적은 88만원 세대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는 점을 상쇄하지 못한다. 세대론이라는 규정을 넘어서고 싶다면 그 이전에 각자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을, 20대던 30대던 애틋함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것 같다. 그 애틋함이 믿음으로 이어질지 어떨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는 끝내 믿음에 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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