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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썸머워즈> : 외로운 개인의 꿈. 블로거의 꿈

by parallax view 2009. 8. 20.
PD저널 <김주원의 그 때 그 때 다른 영화>(14) 썸머워즈(2009)

지난 번의 글 <썸머워즈 잡담>과 연결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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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 좋아하는 선배 나츠키가 제안한 아르바이트를 덥석 받아들인 소년 겐지. 아르바이트의 정체는 할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나츠키의 남자친구 노릇을 해달라는 것이었고, 거짓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할 줄 모르는 겐지는 당황하고야 만다. 그러거나 말거나 27명이나 되는 나츠키네 식구들은 할머니 생신잔치로 왁자하고, 겐지에게 이런 대가족과의 만남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첫날 밤 날아온 문자메시지가 평안한 일상에 균열을 가한다. 싸움이 시작되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썸머워즈>(2009)는 한 소년과 가족과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오락적이고 소년만화적인 긴장구조가 서사의 중심이기 때문에 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의 애틋한 감성을 요구하는 관객들에겐 조금 성에 안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순간의 감정을 잡아내는 감각은 여전히 예민하다. 나가노 우에다의 시골을 비출 때, 슬픔에 빠져있는 식구들을 롱테이크로 잡을 때, 단란하고 소소한 일상을 욕망하는 관객의 심정 역시 적절하게 포착해 낸다.

작품에서 설정된 온라인 세계 OZ는 지금 와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적인 부분이다. 비록 단일한 포맷을 사용하고 있진 않더라도 누구나 하나 이상의 온라인 계정을 소유하고, 인터넷이 단순 취미를 넘어 납세 등의 행정과 은행업무, 주식매매 등의 경제활동까지 확장된 지금에 와서 특히 그렇다. 다만 당혹스러운 점은 작품 안의 갈등구도를 여전히 국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있다.

우리 관객들은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작은 무사가문이었던 진노우치 집안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법 하지만-감독은 요즘 일본 젊은이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소재로 했음을 털어놓았지만-이것이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것으로 비약할 수는 없다. 진노우치 가문의 양자인 와비스케가 개발한 해킹 프로그램을 미 국방성이 남용함으로 인해 OZ가 교란된다는 설정에서 일본vs 미국의 구도를 끄집어내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따로 있다. 과학자는 진정으로 가치중립적인가. 정보가 소수, 더 나아가 1인에게 독점되었을 때 권력관계는 어떻게 폭력적으로 변하는가. 온라인-오프라인 관계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어진 ‘지금/여기’에서 <썸머워즈>의 오락적인 비약이 반드시 허황되거나 유치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가족이 하나 둘 해체되면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인 일본에서, 감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족을 그리며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그 희망이 단 한 편의 판타지로 현실화될 수는 없겠지만, ‘리바이어던’ 같은 거대한 폭력에 대항해 1억 5000만명의 유저들이 연대의 끈을 던지는 환상과 맞물리며 ‘돌아와 부빌 언덕’을 꿈꾸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외로운 개인의 꿈이며, 블로거의 꿈이다. 가족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