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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썸머워즈 잡담

by parallax view 2009. 8. 17.

0. 내용을 알고 있는 분들 위주의 글. 스포일러도 있음. PD저널 송고본에서 못한 얘기를 여기에.

1. 모든 작품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고, 여지가 많을수록 좋은 작품이기 마련이다. 여지가 많다는 얘기는 논란이 많다는 얘기도 되는데, 사실 <썸머워즈> 자체가 엄청 많은 여지를 남기는 작품은 아닌 거 같다.

2. 예민한 부분은 이 작품이 속칭 '일색'(日色)에 물들어 있다는 편견에 기반한 거 같은데, 예컨대 극중 와비스케가 개발한 해킹 프로그램 '러브머신'을 미 국방성이 사들여 시험하는 과정에서 OZ가 교란되었다는 설정에서 일본의 우익적 반미 정서를 끄집어내는 게 그렇다. 관객이 애초 국가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상, 작품이 국가주의적으로 탈바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가노 우에다의 시골을 비추고, 지방유지인 작은 무사가문이 주역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 작품이 일본이라는 국가의 위대함을 알리는 작품이 될까?

3. 오히려 잡아낼 수 있는 부분은 과학자가 스스로 가치중립성을 선언할 때의 모순이다. 아마 면죄부라는 잣대는 여기에 들이댈 법한데, 정작 과학자가 개발자 자신과 기술 자체의 중립성을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기보다, 미 국방성이라는 소재에 한정해서 발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아래는 8월 3일 기자시사회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은 감독의 답변이다.

: 일단 미국은 현재 전 세계 속에서 최강이고 특별한 힘을 가진 나라다. 한국 사람도 미국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걱정하는 것 같고 미국도 고민하는 거 같다. 세계평화가 그런데, 작품 속에서 미국을 적으로 만들거나 미국을 나쁘게 보이려는 건 아닌데. 미국이 힘으로 세계평화를 달성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싶고 미국인들도 고민이 많은 거 같다. 물론 미국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책망하려는 건 아니었다.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4. 또, 작품 안에 무의식적으로 깔린 정보의 독점도 주목할 만하다. 정보사회인 인터넷에서 정보의 독점은 곧 권력의 독점이다. "무엇이든 알고 싶다"는 욕구를 심어놓음으로써 보통 프로그램 이상이 되어버린 '러브머신'이 유저들의 계정(어카운트)을 하나하나 잡아먹어 가면서 거대화되고 OZ를 파괴하는 과정은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다. 당장 인터넷이 끊긴다고 생각해 보면 사카에 할머니의 죽음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아닌 게 아니라 점점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상호의존이 증가하는 추세니까. 거대한 정보의 괴물이 수 억의 어카운트를 농락하는 광경은 홉스의 <리바이어던> 표지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5. <썸머워즈>에서 묘사되는 가족은 너무 이상화된 측면이 있다. 감독 역시 이상화된 가족을 의도적으로 드러냈다고 말하는데, 그만큼 환타지를 통해서라도 가족을 복원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반영한다고 봐야 할 게다. 사실 그런 가족은 일본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그나마 보존되지 않았나? "가족은 가족에게 폭력이다"라는 허지웅 님의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함에도, 이 작품의 주체를 '가족주의 중세 권력'으로 단순화시킬 수만은 없다고 본다. (허지웅, <썸머워즈 단평>) 진노우치 가문의 질서가 가부장적이라기보다 모계사회적이라는 것도 떠올려야 할 거 같다. "가장 힘든 것은 혼자 있는 것"이라는 사카에 할머니의 말에서, 모든 위안이 가족으로 회귀하지는 않더라도 외로운 현대인에게 가족이란 이제, 그 정도의 애틋함을 가진 화석이 된 것은 아닐까.

6. 여담이지만 온라인 세계 이름이 OZ인 건 <오즈의 마법사> 때문도 아니고, 감독 오즈 야스지로 때문도 아니다. 감독이 일할 때 회사-집을 왕래하던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들르는 곳이 동네 편의점 '오즈'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듯한 편의점에서 온라인의 다양성을 연상하는 재치가 있다. 덧붙여 OZ의 설정은 호소다 감독의 루이비통 CM인 <Superflat Monogram>(2003)을 반복한다. 좀 새삼스럽지만 호소다의 기술적 감각이 빛나는 부분이기도 했고.



7. 물론 진짜 장기는 진노우치 가문의 캐릭터 27명 모두 개별적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데에 있지만. 아바타까지 따로 만들면서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 데에 최대한 주력했다. 흠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