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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요시노 이발관> : 마을. 우리의 '비빌 언덕'

by parallax view 2009. 7. 29.
PD저널 <김주원의 그 때 그 때 다른 영화> (13) 요시노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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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란 아무래도 고즈넉한 것이다. 개울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집들은 옆집을 내리누를 만큼 높지 않아 여기가 다툼 없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아이들은 한없이 착하고, 어른들은 전통이 안정감 있게 유지된다는 자긍심에 늘 뿌듯한 공동체. 하지만 이 고요한 안정감은 한 소년의 전학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학생은 마을 아이들의 머리대로는 도저히 못 자르겠다고 선언해버린다. 마을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란 다름 아닌, 아이들의 동그란 바가지 머리였기 때문이다.

<카모메 식당>(2006)의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는 <요시노 이발관>(2004)을 통해 일본의 작은 시골마을을 조명한다. 마을공동체가 시장자유화의 대안으로 공공연히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지금/여기’에서, 영화 속 마을은 고무적인 공간이다.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선량하고, 누구 하나 다치면 즉시 모여 성금을 거둔다. 아이들의 머리는 산신령 때문이다, 텐구(일본 전설 속의 코가 길고 얼굴이 빨간 우스꽝스러운 도깨비) 때문이다 종종 말이 바뀌긴 하지만 어쨌든 모두 똑같이 ‘요시노 스타일’, 바가지 머리다. 마을은 현재 대안적 가치로 주목받고 있는 나눔, 베풂, 평등이 골고루 퍼져있는 편안한 공간인 것만 같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본다면 이 마을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구습(결국 문제는 그 동그란 ‘요시노 머리’)이 강요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청소년 인권이라는 관점에서는 편견과 억압의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이발관에 자주 놀러오던 아이들이 이발사 아줌마에게 저항(?)하는 장면은 두발제한을 겪어본 관객에게 좀 더 익숙할 게다. 내 머리의 자유를 달라! 요시노 아줌마한테 걸려 끝내 머리가 동그랗게 된 전학생을 보며, 이 소소한 코미디에 쿡쿡 웃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을이라는 공간이 영화 속 환상에 머물 위험도 있지만, 그럼에도 <요시노 이발관>은 상황을 과장하지 않는 균형감을 갖췄다. 산신령에게 제사 드리는 날에 신사 앞에 나타나 단체로 머리를 염색해 저항한 아이들이 나중에 요시노 아줌마의 바리캉에 머리가 밀린 뒤에도, 아이들은 요시노 이발관에 찾아와 아줌마가 보고 싶었다며 너스레를 떨고 만화책을 보고 과자를 먹는다. 일상은 저항보다 길기 마련이고, 아이들의 행동은 타협이라기보다 공존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마을 노인이 바가지 머리스타일을 전통으로 고집하는 요시노 아줌마에게 던진 말 : 전통은 시간이 지나면 전설이 된다는 말은 마을이 반드시 진보적 가치를 담보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비빌 언덕’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결국 마을이고, 다수의 마을 사람들이다. 혹시 당신도 이런 마을,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나. 이건 꼭 도시냐 시골이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김주원(P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