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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090709

by parallax view 2009. 7. 9.
1. 폭우가 쏟아지는 덕분에 학교 가는 길따라 바지며 양말이며 홀딱 젖어버렸다. 과방에 총총히 들어가 발 말리고 있으려니 뭔가 한가한 기분이 들었다.

2. 다행히 지난 포스팅(<후배들의 연행소식을 듣고>)에서 이야기했던 두 후배들이 모두 풀려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불구속기소된 상태인만큼 이후에는 꽤 성가신 법적공방이 있을 것 같다. 사건 당사자였던 인준이의 글(하인준, <안녕하세요. 저는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입니다>)과 독설닷컴에 올라간 태우 여자친구의 글(<남자친구가 대공분실에 끌려갔습니다>)은 비록 운동권적인 열의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긴 하지만-요즘엔 그런 것도 별 중요하지 않긴 하다-예민한 사실 한 가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 : 경찰이 원하기만 한다면 이메일 검색과 휴대폰 통화기록, 사진채증 따위가 얼마든지 수천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로 바뀔 수 있다는, 요즘 들어 너무나 당연하게(?) 그리고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실 말이다. 인준이 사건(?)을 관할한 곳이 대검찰청 소속 보안수사대라는 것도 보너스☆

3. Hendrix와 후배 한 명과 같이 한 주에 한 권씩 책 읽는 세미나를 하기로 했다. 첫 책은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비록 학부생이지만 정치학도로서 뒤늦게 아렌트를 본다는 게 좀 부끄럽긴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을 믿고 싶다. Hendrix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서평에도 나와있듯이(Hendrix, <악의 평범성 : 희생양 제의 뒤 추악함들에 대한 묘사>), 유대인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된 아이히만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는 말에 과장이 심하고 기억력이 지독히 나쁘긴 했어도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술 더 떠서 그가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고 또 폴란드에 그들의 나라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계획까지 생각했다는 건 쇼크다.

더 센 것은 법정의 배후에 희생양(아이히만)을 요구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사실 나치와 타협함으로써 살아남았고, 동포들더러 수용소에 잠시만 머물러 있어주면 무사할 거라는 거짓정보-본인들이 진심으로 믿었든 어떻든-가 결국 대다수의 유대인을 살해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지도부를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음은 물론이다(생존자 비율은 전자가 약 0.5%(네덜란드의 경우), 후자가 약 40%다.). 요컨대 자기가 무얼 하는지 알지 못함, 그 무사유가 악에 동조하는 순간, 악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악의 평범성이다.

4. 어쩌면 영화 <빠삐용>의 꿈 장면을 이렇게 변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그렇다면 내 죄가 무어란 말입니까?" "생각하지 않은 죄!"

5. 노정태와 아이추판다 사이의 논쟁은 그예 평행선을 걷는가. 여기에 던지는 관전평 두 개(김우재, <노정태와 이택광의 '밥그릇 투쟁'>, aleph, <슬쩍 끼어들어 딴소리>)가 오히려 더 재밌다. 철학은 학문분과에 얽매이기보다는 사유하는 행위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하지만, 개념과 언어 사이의 괴리, 갈등, 충돌을 나는 아직 다 끌어안지 못하겠다. 인문학은 좀 오래된 말로 '개혁'과 '개방'을 필요로 하겠지만, 이 개혁과 개방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진행되느냐 그것이 관건일게다. 인문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인문학이 살아날 거라는, 다소 무책임한 말을 던져본다.

6. 요즘 주위에 심사가 힘든 사람들이 너무 많다. 꼭 정치적인 얘기는 아니고. 다들 건강했으면. 기운 냈으면.


덧 : 내일은, 아니 오늘은 꼭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볼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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