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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인디포럼 2009 : 촛불 1주년, 독립영화의 길을 묻다

by parallax view 2009. 6. 4.

<인디포럼 2009 기획포럼 : 어쩌다 참관기>에서 조금 정제된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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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1996년 시작된 이래 인디포럼도 사람 나이로 치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소녀든 소년이든 이맘때면 제 마음먹은 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자본과 권력에 개겨보자고 만들어졌는데, 더욱 개김성 투철한 사춘기라니. 이 뜻 깊은(?) 나이를 위해 6월 2일 인디스페이스에서 포럼이 열렸다. <촛불 1주년, 독립영화의 길을 묻다>라는 자못 거창한 제목에 걸맞게 토론자들의 면면도 범상치 않다. 이택광, 고병권, 진중권, 변성찬. 이들 정부의 요주의(!) 지식인에 이송희일, 김곡, 허경 등 독립영화진영의 주자들이 한데 모였다.

진중권과 이택광 등 스타 지식인의 무게감은 역시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주최 측엔 죄송한 말이지만 좁은 영화관을 가득 메운 건 팔 할이 스타에 대한 기대감 아니었을까. 그러나 정작 당사자 중 하나인 진중권은 피로감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전 방위로 압박해 오는 권력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촛불 1주년을 돌아보는 작업이 엄연히 현재형의 물음임을 되새기게 한다.

이택광은 “한국사회 변화의 징후로서의 촛불”로 그 동안 그가 자신의 블로그(wallflower.egloos.com)에서 꾸준히 이야기해 온 ‘촛불과 중간계급’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해 낸 것 같다. 물론 그가 말하는 ‘중간계급’은 월급의 많고 적음이나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건 대중의 믿음의 문제다. “나는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중간에 있다”는 일종의 자기암시적인 욕망이다. ‘촛불’은 이들 중간계급이 이명박(국가)에게 정상국가를 요구하는 과정이었으며, 이것이 촛불의 원동력이자 한계였다.


한편, 고병권(수유+너머 추장)은 ‘미디어, 미디에이션, 이미디에이션’라는 주제를 통해 대중이 그 동안 언론이나 정당 등의 매개(미디에이션)에서 소외되어 왔으며, 이 소외에 대한 극적인 저항이 바로 직접행동(이미디에이션)으로서의 촛불임을 주장한다. 포럼의 지적 난장은 진중권이 개입하면서 갈무리됐다. 촛불의 역동성은 휴대폰과 노트북과 디카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칼라TV’의 성공은 이들 뉴미디어와 이를 영리하게 사용할 줄 아는 유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진중권이 제시한 게임으로서의 칼라TV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택광이 말했듯이 칼라TV는 진중권이라는 강력한 ‘대표기표’가 주된 힘이었다. 이 ‘킹왕짱’ 센 캐릭터를 관객이 인터넷방송과 휴대폰 메시지를 이용해 원격으로 조종하는 유사게임은 독립영화의 화두인 ‘비디오 액티비즘’(Video Activism)과 관객의 접속을 암시한다. 이 지적 난장판에서 이택광과 고병권과 진중권의 등 뒤에 손 붙잡고 선 유령들-라캉과 들뢰즈/가타리와 벤야민-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이건 흡사 여고괴담이 아닌가.).

촛불과 독립영화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독립영화진영의 주요 화두로, 포럼에 모인 영화감독과 평론가의 고민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시민적 저항을 미디어로 표현하고, 현존하는 방송플랫폼과의 채널 확보에 관심을 보이는 허경이나, 독립영화진영 안에서 주류로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이 자라나고 있음을 경계하는 이송희일은 독립영화 안의 미묘한 균열 내지는 온도차를 드러낸다. 특히 촛불이 관객에게 ‘지금/여기’를 묻는다는 변성찬의 말은 독립영화가 끊임없이 현재성과 현장에서의 활동을 요구받고 있고, 또 스스로도 요구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직간접적으로 촛불이 반영되어 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촛불의 흔적이 감지된 작품이 적다는 인식은 작가들이 미학적 독립성에 갇혀 정치성을 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불만으로 작용한다. 여기에는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일차적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이는 그 이전에 작가들이 정치를 피해가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이기도 하다.

독립영화가 가는 길이 언제 그리 쉬웠겠냐만, 2009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적극적이고 역동적이기를 요구받고 있어 그 길이 좀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촛불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시민의 광장이 민중의 지팡이에 봉쇄당하고 데이트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블랙코미디와 난센스의 시대가 되었다. 독립영화가 정치적 냉소와 무력감으로부터, 자본과 권력이라는 욕망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울 수 있기까지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지금 우리는 저항과 미디어가 만나는 지점을 돌아보고 방향을 설정하는 길목에 서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개인적인 서사 속에서 집합적인 저항을 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는지. 그것이 올해로 14살이 된 인디포럼이 꾸는 사춘기의 꿈일 게다. 이쯤 되면 나도 그(녀)에게 바라는 게 생긴다. 마음껏 개기고, 얻어터져도 개기고, 또 다시 개길 수 있기를. 그게 사춘기고, 열네 살이니까. 김주원(P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