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러의 목적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략은 드러냄으로써 감추기. 혹은 감춤으로써 드러내기. 하지만 <인사동스캔들>의 트레일러는 노골적이다. 김래원은 고니 같았고, 엄정화는 정마담 같았다. 애초부터 고니가 정마담을 가지고 놀 거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영화는 자신의 한계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박희곤 감독의 <인사동스캔들>(2009)은 미술품 경매를 둘러싼 암투를 다룬 오락영화다. 국보급 복원가 이강준(김래원)은 강화병풍 복원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병풍의 해외유실혐의로 체포된 전적이 있다. 최고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도박판을 전전하던 그를 건져 올린 건 미술거래의 큰 손 배태진(엄정화). 그녀는 일본에서 극비에 입수한,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안견이 그렸다는 ‘벽안도’를 복원하고 싶어 한다. 배태진은 지극히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한 이강준을 끌어들여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고자 한다. 당연히 이제부터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일본만화 <갤러리페이크>(1992)를 영화 <타짜>(2006)에 버무린 것만 같다. <갤러리페이크>는 고학으로 미술을 전공해 뉴욕메트로폴리탄 큐레이터까지 진출했던 전도유망한 남자가 모종의 사건으로 몰락한 뒤, 일본에 돌아와 화랑 ‘갤러리페이크’를 운영하며 겪는 모험을 다룬 만화다. 이강준은 가짜 미술품을 파는 화랑의 주인 후지타 레이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후지타가 그랬듯이 이강준의 오만하고 위악적인 성격도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다. 나쁜 놈이지만 온전히 나쁜 놈은 아닌 것이다.
배태진은 이에 대립하는 캐릭터다. 겉으로는 미술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속물이고 위선자다. 영화는 미술을 소재로 한다 뿐이지 많은 부분에서 <타짜>를 쫓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엄정화가 연기하는 배태진은 더욱 물신적인 정마담이다. 그녀를 수행하는 보디가드, 그녀가 운영하는 위선적이고 치밀한 조직, 업계에서의 영향력 따위도 그대로다. 하지만 배태진과 정마담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배태진에게는 순정이 없다. 순정의 부재는 배태진을 그저 ‘나쁜 년’으로 몰아넣는 일등공신이다. 그녀는 그저 파멸당해야 마땅한 절대악일 뿐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여러 방면에서 약점을 드러낸다. 스토리의 속도감에는 관객을 위한 여유가 부족했고,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감독의 의욕은 지나쳤다. 김래원과 엄정화는 썩 어울렸지만, 둘 다 자신의 연기영역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캐릭터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평면적이다. 이강준을 따르는 동생들은 단지 이강준의 손발이 되어주기 위해 설정되었을 뿐이며, 이강준-배태진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거나 북돋워줄 수 있는 캐릭터들(특히 경찰들)도 자신의 성격을 충실히 드러내지 못한 채 이야기의 수단으로 소비된다. 영화적 기술은 난무하는데 정작 미술품에 대한 것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반복되는 갈등구조에만 집중한다. 한 마디로 소재는 증발하고 오락만 남은 것이다.
<인사동스캔들>은 영화 <식객>(2007)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 <식객>이 요리·음식문화라는 소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이야기를 운암정의 소유를 둘러싼 갈등쯤으로 축소시켜버린 것처럼. 소재, 특히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작품이 표현할 수 있는 폭을 좁힌다. <인사동스캔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술품을 향유하는 인사동 문화의 배후에 깔린 자본주의적 욕망을 단순한 오락적 소비를 위한 수단으로 이해한 결과, 도식적인 시나리오 작법만 남아버렸다.
꼭 음모와 사기의 재구성이 아니더라도, 근사한 액션씬 하나 없어도 미술에 얽힌 갈등과 희로애락을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왜 그렇게 상황과 위기를 과장해야만 했을까. 영화제작이 투자여부에 좌지우지되는 여건은 불가피하더라도, 꼭 비용이 많이 드는 캐스팅과 제작방식이어야만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제작진과 투자자의 속내가 몹시 궁금하다. 문화가 가진 다양한 얼굴을 돌아볼 때에야 문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빛을 볼 수 있지 않을는지. 그 점에서 영화라는 문화는 여전히 다른 분야의 문화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사동스캔들>이 여전히 거북스러운 이유다. 김주원(PD저널)
박희곤 감독의 <인사동스캔들>(2009)은 미술품 경매를 둘러싼 암투를 다룬 오락영화다. 국보급 복원가 이강준(김래원)은 강화병풍 복원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병풍의 해외유실혐의로 체포된 전적이 있다. 최고에서 나락으로 떨어져 도박판을 전전하던 그를 건져 올린 건 미술거래의 큰 손 배태진(엄정화). 그녀는 일본에서 극비에 입수한, ‘몽유도원도’를 그린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안견이 그렸다는 ‘벽안도’를 복원하고 싶어 한다. 배태진은 지극히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한 이강준을 끌어들여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고자 한다. 당연히 이제부터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일본만화 <갤러리페이크>(1992)를 영화 <타짜>(2006)에 버무린 것만 같다. <갤러리페이크>는 고학으로 미술을 전공해 뉴욕메트로폴리탄 큐레이터까지 진출했던 전도유망한 남자가 모종의 사건으로 몰락한 뒤, 일본에 돌아와 화랑 ‘갤러리페이크’를 운영하며 겪는 모험을 다룬 만화다. 이강준은 가짜 미술품을 파는 화랑의 주인 후지타 레이지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후지타가 그랬듯이 이강준의 오만하고 위악적인 성격도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다. 나쁜 놈이지만 온전히 나쁜 놈은 아닌 것이다.
배태진은 이에 대립하는 캐릭터다. 겉으로는 미술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속물이고 위선자다. 영화는 미술을 소재로 한다 뿐이지 많은 부분에서 <타짜>를 쫓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엄정화가 연기하는 배태진은 더욱 물신적인 정마담이다. 그녀를 수행하는 보디가드, 그녀가 운영하는 위선적이고 치밀한 조직, 업계에서의 영향력 따위도 그대로다. 하지만 배태진과 정마담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배태진에게는 순정이 없다. 순정의 부재는 배태진을 그저 ‘나쁜 년’으로 몰아넣는 일등공신이다. 그녀는 그저 파멸당해야 마땅한 절대악일 뿐이었던 것이다.
<인사동스캔들>은 영화 <식객>(2007)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다. <식객>이 요리·음식문화라는 소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이야기를 운암정의 소유를 둘러싼 갈등쯤으로 축소시켜버린 것처럼. 소재, 특히 문화에 대한 몰이해는 작품이 표현할 수 있는 폭을 좁힌다. <인사동스캔들> 역시 마찬가지다. 미술품을 향유하는 인사동 문화의 배후에 깔린 자본주의적 욕망을 단순한 오락적 소비를 위한 수단으로 이해한 결과, 도식적인 시나리오 작법만 남아버렸다.
꼭 음모와 사기의 재구성이 아니더라도, 근사한 액션씬 하나 없어도 미술에 얽힌 갈등과 희로애락을 풀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왜 그렇게 상황과 위기를 과장해야만 했을까. 영화제작이 투자여부에 좌지우지되는 여건은 불가피하더라도, 꼭 비용이 많이 드는 캐스팅과 제작방식이어야만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제작진과 투자자의 속내가 몹시 궁금하다. 문화가 가진 다양한 얼굴을 돌아볼 때에야 문화를 소재로 하는 영화가 빛을 볼 수 있지 않을는지. 그 점에서 영화라는 문화는 여전히 다른 분야의 문화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인사동스캔들>이 여전히 거북스러운 이유다. 김주원(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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