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저널 지면개편 하면서 분량이 확 줄었고, 연재도 격주로 한다. 대신 오프라인에도 올라감. 사진은 PD저널판과 다름.
원문 : 김주원의 그 때 그 때 다른 영화 (11) 레인(Let it rai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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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내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날 때를, 비에 촉촉이 젖은 들판을 바라볼 때를, 혹은 잊고 싶은 기억 때문에 오도카니 빗속에 서 있을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가끔씩 비는 하느님의 손길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이 든다. 치유력이 있다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 그 속에 있으면 뭐든 용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착각, 혹은 위안 받고 싶은 욕망. 그 어느 것이든 비는 그(녀)의 바람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비를 썩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레인>(Let it rain, 2009)은 <타인의 취향>(2000)의 감독인 아네스 자우이의 코미디다. 감독, 각본, 주연을 도맡는 재능을 과시하는 그녀는 그러나 작품 안에서 인물에 오롯이 몰입해, 자신의 존재를 과장하지 않는 미덕을 발휘한다.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계진출까지 모색하는, 정력적인 여성주의자 아가테(아네스 자우이)에게 접근하는 두 남자, 자유분방한 PD 미셸(장 피에르 바크리)과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랍인 청년 카림(자멜 드부즈)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프랑스 사람들의 평범한 결을 차분하게 짚어나간다. 시골의 중산층 가정인 아가테 동생네는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가테 자매에겐 엄마와 같은 아랍인 가정부 미무나에게 월급도 주지 못한다. 미무나의 아들인 카림은 아버지에게 제대로 이혼통보도 못하는 엄마가 못마땅하고,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너무 주관이 강한 아가테에게도 불만이 가득하다. 또 연애관계에 언제나 뒤따르곤 하는 ‘바람’은 미셸과 카림의 머리 위에 두둥실 떠 있다. 이들에겐 도무지 편안할 날이 없다. 같이 작업을 하려니 손발도 맞지 않는다. 아이고, 골치야.
하지만 그들의 어설픈 다큐멘터리 작업은 과잉도 결핍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에 깜짝 활력을 불어넣는다. 상황을 극적으로 활용하는 기교가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프랑스 안에서 곪아가는 여성문제와 인종문제, 계급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끈기 있게 풀어가려는 노력이 빛을 발한다. 야외촬영이 엉망이 된 순간, 아가테의 분노는 폭발하고 미셸은 변명에 급급하고 카림은 당황한다. 이들의 머리위로 갑작스레 퍼붓는 빗줄기는 그들이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해준다. 성적·인종적·계급적 차이도, 감정적인 마찰이나 대립도 빗속에서는, 서서히 가라앉는다.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살을 부비면서 서로를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비의 힘이다.
작품의 원제는 “Parlez-Moi De La Plube”(비에 대해 이야기해줘). 빗속에서 각자의 진심을 꺼내는 일. 그것은 어떤 이념보다, 실천보다 더 힘이 센지도 모른다. 영화는 누군가와 함께 비를 맞고 싶게끔 한다. 이 영화, 꽤 힘이 세다. 김주원(PD저널)
원문 : 김주원의 그 때 그 때 다른 영화 (11) 레인(Let it rain,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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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박타박 내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날 때를, 비에 촉촉이 젖은 들판을 바라볼 때를, 혹은 잊고 싶은 기억 때문에 오도카니 빗속에 서 있을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가끔씩 비는 하느님의 손길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인 생각이 든다. 치유력이 있다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 그 속에 있으면 뭐든 용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착각, 혹은 위안 받고 싶은 욕망. 그 어느 것이든 비는 그(녀)의 바람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비를 썩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레인>(Let it rain, 2009)은 <타인의 취향>(2000)의 감독인 아네스 자우이의 코미디다. 감독, 각본, 주연을 도맡는 재능을 과시하는 그녀는 그러나 작품 안에서 인물에 오롯이 몰입해, 자신의 존재를 과장하지 않는 미덕을 발휘한다. 이야기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계진출까지 모색하는, 정력적인 여성주의자 아가테(아네스 자우이)에게 접근하는 두 남자, 자유분방한 PD 미셸(장 피에르 바크리)과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랍인 청년 카림(자멜 드부즈)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프랑스 사람들의 평범한 결을 차분하게 짚어나간다. 시골의 중산층 가정인 아가테 동생네는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가테 자매에겐 엄마와 같은 아랍인 가정부 미무나에게 월급도 주지 못한다. 미무나의 아들인 카림은 아버지에게 제대로 이혼통보도 못하는 엄마가 못마땅하고,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너무 주관이 강한 아가테에게도 불만이 가득하다. 또 연애관계에 언제나 뒤따르곤 하는 ‘바람’은 미셸과 카림의 머리 위에 두둥실 떠 있다. 이들에겐 도무지 편안할 날이 없다. 같이 작업을 하려니 손발도 맞지 않는다. 아이고, 골치야.
하지만 그들의 어설픈 다큐멘터리 작업은 과잉도 결핍도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에 깜짝 활력을 불어넣는다. 상황을 극적으로 활용하는 기교가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프랑스 안에서 곪아가는 여성문제와 인종문제, 계급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끈기 있게 풀어가려는 노력이 빛을 발한다. 야외촬영이 엉망이 된 순간, 아가테의 분노는 폭발하고 미셸은 변명에 급급하고 카림은 당황한다. 이들의 머리위로 갑작스레 퍼붓는 빗줄기는 그들이 서로의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해준다. 성적·인종적·계급적 차이도, 감정적인 마찰이나 대립도 빗속에서는, 서서히 가라앉는다.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살을 부비면서 서로를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비의 힘이다.
작품의 원제는 “Parlez-Moi De La Plube”(비에 대해 이야기해줘). 빗속에서 각자의 진심을 꺼내는 일. 그것은 어떤 이념보다, 실천보다 더 힘이 센지도 모른다. 영화는 누군가와 함께 비를 맞고 싶게끔 한다. 이 영화, 꽤 힘이 세다. 김주원(PD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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