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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umfabrik

인디포럼 2009 기획포럼 : 어쩌다 참관기

by parallax view 2009. 6. 3.
인디포럼, 오늘입니다.
(이택광 님 포스팅)

0. 한 동안 포스팅이 뜸했다. 좀 정신 차릴만 하니까 바빠질 일이 늘었다. 디카가 없어서 이 날 사진이 없는 것이 대략 안타깝다. 현장의 출연진(?)의 얼굴을 보고 싶다면 여기를. (erte, <인디포럼 2009 포럼 관람기>)

1. 지난 주 금요일 어쩌다 인디포럼 개막식을 참관(<노무현과 인디포럼과 촛불>)한 뒤 지난 6월 9일(화) 두 번째로 찾아갔다. 스폰지하우스 중앙(인디스페이스)은 여전히 좁다. 인디포럼 기획전으로 세 작품이 상영되었다. 개막작이었던 <외출>(감독 서재경)이 한 번 더 나왔는데 인디포럼과 촛불 사이의 관계를 그 작품만큼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 것 같다('촛불'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이 그만큼 적다는 얘기.).


한편,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감독 김경만)는 두 남자가 지난 대선 생방송을 보면서 나누는 잡담을 다룬다. 한국현대사의 흔적을 비추는 기록영상(풋티지, footage)을 계속 삽입해 50,60년대와 2008년 12월의 '지금/여기'가 뒤섞인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의 진술과 실제현장이 불일치하는 편집을 연상시키는 연출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환멸과 냉소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동시에, 투표를 행사하는 주권자이지만 결국 구경꾼으로 밀려나는 그 남자들이 방관함으로써 이명박(그 이전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회창 등등)을 만들어왔다는 직관을 일깨운다. 남자들과 같이 낄낄대면서 같이 방관자가 되는 슬픔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 작품인 <자가당착>(감독 김곡, 김선)은 유괴사건(?)을 빙자한 한 편의 위악적인 블랙코미디. 촛불이 한창이던 때를 배경으로 이미지의 짜깁기와 비약적인 스토리로 관객을 놀린다. 약간 불쾌하고 조금(?) 비타협적인 영화. 마지막 장면은 새삼 섬뜩하다.

2. (존칭생략) 기획전이 끝나고 포럼이 시작되었다. 이택광과 고병권(수유+너머 추장)의 발제는 얼마 전까지 벌어졌던 이택광과 조정환 블로그 사이의 논쟁을 떠올리게 했다. 라캉주의자와 자율주의자의 대결이 재현될 것인가 두둥. 그럴리가. 수유+너머는, 예전에 들뢰즈/가타리와 네그리/하트의 뒤안길에 잠시 홀딱 빠져있던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솔직히 이택광, 고병권, 진중권 모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왠지 낯설지 않은 기분이라는 건 나만의 착각이겠지. 이택광은 글에서 받은 인상보다 훨씬 젊었고, 진중권은 포럼에서 피로를 숨기지 못했다. 여러모로 피곤할만하다 싶다(그는 정부의 과도한 한예종 감사에 같이 걸려든 상태.).

3. 전체적으로 포럼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하나는 촛불로 읽어보는 한국(시민)사회에 대한 얘기이고, 또 하나는 독립영화의 전망에 대한 것이다. 이 둘을 하나로 이어보려는 게 포럼의 기획의도였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발제자들의 언어 차이 때문에 약간 삐끗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택광은 발제문에 비해 나름 쉽게 설명했던 거 같고, 좀 아쉬운 건 고병권 쪽인데 뭐랄까, 자율주의와 전통적 맑스주의 사이의 차이가 좀체 드러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그럼 넌 뭘 아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만.). 이제 더 이상 '다중'과 '리좀'에 대해서는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일까?

4. 확실히 진중권은 대중에게 먹히는 이야기를 할 줄 안다. 그가 진행한 칼라TV가 유저들이 인터넷방송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원격조정된 일종의 게임이었음을(그리고 이택광은 진중권이 킹왕짱 강한 캐릭터 '진키워'였음을 적절하게 지적했다.) 설명했을 때, 이 유사게임은 저항의 미래에 대한 제법 섹시한 전망이 아닐까 싶다.

5. 현장에서 직접 뛰는 독립작가들-이송희일, 김곡, 허경-과 영화평론가 변성찬에게서는 이번 인디포럼 출품작에 대한 불만이 느껴졌다.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작가들이 촛불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녔을 테고 또 촛불이 80년 광주나 87년 6월 못지 않은 강렬한 경험일 것이기에, 촛불을 반영한 작품들이 충분히 쏟아져 나올 것을 기대했던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경향(사적인 서사와 상업드라마 구성의 답습)을 발견한 데에 대한 당혹감도 있지 않았나 싶다.

6.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과 팬픽션의 확장이 창작의 경향을 변화시키는 만큼, 이를 극한까지 밀어붙여서 정치를 말하지 않고도 정치를 드러내는 작업으로 향하도록 유도하면 어떨까.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을 듣진 못했지만, 이송희일 감독의 "더 놀았으면 좋겠다"는 말에서 사적 서사와 공적 저항 사이의 연결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7. 포럼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어져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쏟아낼 게 많은 분들이 모인 게 화근(?)이었는지도. 개인적으로 배고픈 거 빼고는 굉장히 재밌었는데(9시에 끝나면 근처 우동집에서 카레우동 하나 맛나게 먹어치우려고 했는데!), 문화판 안팎에 상존하는 언어의 차이(그러니까, 철학에 대한 접근성과 이해도 말이다.)가 좀 더 해소되어야 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현장에 모인 관객들 중 발제자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하는 것도 문제다. 영화 하는 사람들은 말이 짧으니 그 부분은 좀 고려해 달라는 김곡 감독의 부탁은 관객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물론 이 접근성 문제는 양날의 칼이다. 요컨대 관객도 공부는 좀 해야 하지 않을까.).

8. 이 참관기에 대한 나름 정제된 버전은 방금 전 PD저널 담당기자에게 보냈다. 기사와 잡설 둘 사이의 어딘가에 포럼의 제 모습이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