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保守). 옛것을 지킨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강렬한 인상을 주지도 못한다. 마치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상대를 방어적으로 대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매력도 느낄 수 없듯이.
하지만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의 역사(EAI, 2008)>의 저자 강원택 교수는 단언한다. 그럼에도 보수주의는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특히 영국 보수주의(토리즘, Toryism)의 역사를 조망함으로써 격변과 혁신의 풍랑 속에서 기득권계급이 어떻게 자신의 이익을 지켜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진보는 선-악 개념과 동일시된다. 정치적 입장이 종교적 가치관으로 비약하는 모순은 보편적인 현상이나,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이는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이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겠지만, 민주화가 진행중인 지금도 보수주의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기득권계급의 반동적 성격 때문이다. 강남의 내 땅을 위해서라면, 내 자식의 학벌을 위해서라면 종부세도 낮춰야되고 국제중도 만들어야 된다는 이념적 천박함이 권력과 결탁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영국 보수당도 그 기원은 귀족계급의 연합이었다. 청교도 혁명을 거치며 취약해진 왕권을 귀족정치가 대체하면서 귀족회의 격인 상원이 탄생하고, 국왕과 국교회(성공회)에 대한 지지에서 출발한 당파정치가 정당으로 형성되는 등 보수당의 탄생배경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은 귀족정치만으로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냈다. 19세기 말 노동계급의 급격한 팽창은 또다른 도전이었다. 영국 보수당은 이런 도전을 어떻게 극복해냈을까?
비결은 유연성이었다. 지배계급은 계속해서 내 코가 석자라며 땅 한 뼘 내놓지 않다가는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을 우려한 결과,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영리함을 발휘한 것이다. 무엇보다 프랑스 대혁명과 구체제(앙시엥 레짐)의 몰락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점진적인 개혁에 대한 귀족사회의 합의가 존재했다. 그 결과 보수당은 귀족계급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계급까지도 포용한다. 당의 외연이 넓어진 것이다. 흡사 로마 공화정의 원로원처럼, 사회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수용하면서 가장 보수적인 가치인 국왕과 성공회, 그리고 애국심을 지켜나갔다.
여기서 지도자의 리더쉽이 중요해진다.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 로버트 필, 영국 보수당의 토대를 닦은 벤자민 디즈레일리, 그리고 현재의 보수당 이미지를 만든 스탠리 볼드윈의 공통점은 실용적 기회주의로 요약된다. 이들은 모두 당내 우파의 반동성을 잠재우면서 선거권 확대와 빈민주택제공과 같은 당대의 개혁 이슈를 선점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즉, 먹고 사는 문제-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점진적인 개혁으로써 사회의 불만을 잠재우는 중도적 노선을 견지하였기 때문에, 성공적인 지도자들은 대부분 기회주의자로 매도당했다(아마 신자유주의 개혁을 이끈 대처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보수당 우파들만이 계속 득세하여 선거권 확대나 복지국가 건설을 영영 외면했다면 약 300년의 세월에도 유지되는 정당이 될 수 있었을까? 만약 반동적인 정책만을 밀어붙였다면 점진주의 전통의 영국이라 해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었을까?
그러나 유연성은 보수주의의 성격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기도 하다. "가진 자의 정치적 생존의 기술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는 하나의 이념 ism 이라기보다 경험이나 상식 등 현실적 체험과 관찰에 의해 형성된 사고방식, 감정의 양태, 생활양식으로 봐야한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 (pp.18-19)
이 책의 영문 제목은 The Art of Survival, 생존의 기술이다. 영국 보수당은 300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유의미한 대안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자신의 이해에 집착해 단 한 톨의 이익마저 내놓지 않으려하는 반동성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영국이 무조건 낫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겐 얄미울 정도의 상식과 합리성이 있다.). 하지만 진보세력 또한 문제가 있다. 허구헌날 코끼리는 말하지 마를 경전처럼 외는 것도, 진보는 간지나는 것이어야 하고 마구 탐나는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는 허지웅도 문제의 맥락을 잘못 짚고 있다. 차라리 진보진영은 먹고 사는 것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는 이녁의 말이 훨씬 설득력있다.
보수세력이 살아남고 싶다면, 무엇보다 진보진영이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대안세력으로 존재하고자 한다면 보수정치를 알아야 한다. 이념에 경도되지 않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권력욕에 목메지 않을 정도로 세속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생존의 기술을 배워나가는 기본일 것이다.
본서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원한다면 : <영국에서 들여다본 보수의 생존전략> (periskop over Military History)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강원택 지음 / 동아시아연구원
나의 점수 : ★★★★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정치를 고민한다.
권력에 대한 욕망, 유연성, 그리고 외연의 확장. 우리는 좀 더 합리적인 권력을 획득할 수 있을까.
하지만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 영국 보수당의 역사(EAI, 2008)>의 저자 강원택 교수는 단언한다. 그럼에도 보수주의는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특히 영국 보수주의(토리즘, Toryism)의 역사를 조망함으로써 격변과 혁신의 풍랑 속에서 기득권계급이 어떻게 자신의 이익을 지켜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진보는 선-악 개념과 동일시된다. 정치적 입장이 종교적 가치관으로 비약하는 모순은 보편적인 현상이나,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이는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이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이겠지만, 민주화가 진행중인 지금도 보수주의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기득권계급의 반동적 성격 때문이다. 강남의 내 땅을 위해서라면, 내 자식의 학벌을 위해서라면 종부세도 낮춰야되고 국제중도 만들어야 된다는 이념적 천박함이 권력과 결탁했을 때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영국 보수당도 그 기원은 귀족계급의 연합이었다. 청교도 혁명을 거치며 취약해진 왕권을 귀족정치가 대체하면서 귀족회의 격인 상원이 탄생하고, 국왕과 국교회(성공회)에 대한 지지에서 출발한 당파정치가 정당으로 형성되는 등 보수당의 탄생배경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은 귀족정치만으로는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냈다. 19세기 말 노동계급의 급격한 팽창은 또다른 도전이었다. 영국 보수당은 이런 도전을 어떻게 극복해냈을까?
비결은 유연성이었다. 지배계급은 계속해서 내 코가 석자라며 땅 한 뼘 내놓지 않다가는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을 우려한 결과,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영리함을 발휘한 것이다. 무엇보다 프랑스 대혁명과 구체제(앙시엥 레짐)의 몰락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점진적인 개혁에 대한 귀족사회의 합의가 존재했다. 그 결과 보수당은 귀족계급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과 노동계급까지도 포용한다. 당의 외연이 넓어진 것이다. 흡사 로마 공화정의 원로원처럼, 사회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수용하면서 가장 보수적인 가치인 국왕과 성공회, 그리고 애국심을 지켜나갔다.
여기서 지도자의 리더쉽이 중요해진다. 근대 보수주의의 아버지 로버트 필, 영국 보수당의 토대를 닦은 벤자민 디즈레일리, 그리고 현재의 보수당 이미지를 만든 스탠리 볼드윈의 공통점은 실용적 기회주의로 요약된다. 이들은 모두 당내 우파의 반동성을 잠재우면서 선거권 확대와 빈민주택제공과 같은 당대의 개혁 이슈를 선점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즉, 먹고 사는 문제-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점진적인 개혁으로써 사회의 불만을 잠재우는 중도적 노선을 견지하였기 때문에, 성공적인 지도자들은 대부분 기회주의자로 매도당했다(아마 신자유주의 개혁을 이끈 대처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보수당 우파들만이 계속 득세하여 선거권 확대나 복지국가 건설을 영영 외면했다면 약 300년의 세월에도 유지되는 정당이 될 수 있었을까? 만약 반동적인 정책만을 밀어붙였다면 점진주의 전통의 영국이라 해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었을까?
그러나 유연성은 보수주의의 성격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기도 하다. "가진 자의 정치적 생존의 기술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보수주의는 하나의 이념 ism 이라기보다 경험이나 상식 등 현실적 체험과 관찰에 의해 형성된 사고방식, 감정의 양태, 생활양식으로 봐야한다는 지적은 의미가 있다." (pp.18-19)
이 책의 영문 제목은 The Art of Survival, 생존의 기술이다. 영국 보수당은 300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유의미한 대안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자신의 이해에 집착해 단 한 톨의 이익마저 내놓지 않으려하는 반동성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영국이 무조건 낫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겐 얄미울 정도의 상식과 합리성이 있다.). 하지만 진보세력 또한 문제가 있다. 허구헌날 코끼리는 말하지 마를 경전처럼 외는 것도, 진보는 간지나는 것이어야 하고 마구 탐나는 그런 것이 되어야 한다는 허지웅도 문제의 맥락을 잘못 짚고 있다. 차라리 진보진영은 먹고 사는 것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인식시켜야 한다는 이녁의 말이 훨씬 설득력있다.
보수세력이 살아남고 싶다면, 무엇보다 진보진영이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대안세력으로 존재하고자 한다면 보수정치를 알아야 한다. 이념에 경도되지 않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권력욕에 목메지 않을 정도로 세속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생존의 기술을 배워나가는 기본일 것이다.
본서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원한다면 : <영국에서 들여다본 보수의 생존전략> (periskop over Military History)
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강원택 지음 / 동아시아연구원
나의 점수 : ★★★★
영국 보수당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정치를 고민한다.
권력에 대한 욕망, 유연성, 그리고 외연의 확장. 우리는 좀 더 합리적인 권력을 획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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