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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말, 자기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2007)

by parallax view 2008.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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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 달콤살벌한 가정

우석훈 박사와 박권일 기자가 공저한 '88만원 세대' (2007)는 "우리나라의 10대가 동거를 선언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동거, '옥탑방 고양이' 같은 드라마 등으로 주류매체의 아이템으로 등장한데다 20대의 동거는 종종 발견되는 일이라 그리 낯설지만도 않지만, 이 나라에서 젊은 여자와 남자가 '결혼'과 '부모의 동의' 라는 매개 없이 함께 사는 것은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정한 생활방식으로 인식된다. 하물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10대가 동거를 선언한다니! '어린 신부'도 아니고 말이지. 하지만 '88만원 세대'는 우리나라에 잔존하는 유교적 관습이나 사회인식 같은 문화적 장치는 일단 빼고 최대한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즉, 이 나라에서 10대가 동거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생존 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경제적(물질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자문자답에 우석훈 박사는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라고 못을 박는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번째는 집값, 두번째는 교육비, 마지막으로 월급(급여)이다. 간단히 말해 "돈이 없기 때문" 이지만, 이것을 인권의 측면에서 보자면 주거권과 피교육권, 노동권이고, 경제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부동산과 등록금(학자금) 그리고 고용이다.
이 점을 이웃나라 일본이나 선진국 프랑스 등과 간단하게 비교하지만, 자문자답의 목적은 그 너머에 있다. 10대에게 생존권을 포함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데 과연 지금 '성인'으로 인정되고 또 사회 구성원이 된 20대에겐 미래가 있느냐 없느냐 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대의 생존전략 : 나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 믿음 하나

연구자들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밑바탕에 깔고 들어가는 것이 있다면, 지금의 한국에서 20대는 '지옥'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영화 '배틀로얄'에서처럼 서로 죽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배틀로열을 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무척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금 20대가 체감하고 있는 이 현실은 정말 그렇게도 인간이 발붙이고 살 수 없을 정도로 생지옥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따지고 보자면 전혀 살지 못할 곳은 아니다. 비록 자랑스럽게도 GDP 4만달러시대를 앞두고 1년 대학등록금 1천만원시대를 먼저 맞이하는 현 시점이어도, 전체 대학생의 약 70% 가량이 학자금 대출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기사가 도처에서 뜬다고 해도, 열심히 일해서 벌면 먹고 살 수는 있는 시대다. 어디까지나 '먹고 살 수는 있다'에 한정한다면 그렇다. 라면에 삼각김밥으로 삼시세끼를 때우는 인생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여기서 '자기개발' 이니 '자아완성' 같은 말이 먹혀들리가 없다. 사회개혁에 대한 이념 역시 마찬가지인지 오래되었다. 연구자들의 경고가 다소 과장되게 들리긴 하지만, 어쨌든 '먹고 살 수는 있는 사회'의 현실이다.

연구자들이 던지는 또 하나의 주장 :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정체는 '세대 안에서의 경쟁'이 아닌 '세대 간의 경쟁' 이라는 것에 관해서도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결국에는 자기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경쟁을 통한 성공은 당연하고, 실패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라고. "재태크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걸까요?" 라는 질문에 "무조건 아끼세요. 내 인생 남이 대신 살아주는 거 아니잖아요? 지출은 최대한 줄이시구요, 모임 같은 것도 꼭 필요한 것만 나가시구요, 자기를 위해 투자한다 생각하시구 밥도 최대한 싼 거 사먹으세요. 그럼 꼭 부자되세요^^" 라는 어느 네티즌의 답글이 지금의 우리네 생각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당연시 되는 세계에서,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다는 룰을 받아들인 20대에게 진짜 커다란 장벽은 같은 20대가 아니라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어른' 혹은 기성세대들이다. 무한경쟁의 룰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공정한 게임 같은 게 성립할 리가 없는데도, 20대는, 우리는 그 룰을 '공정한 게임'으로 인정한다. 왜? 결국에는 '자기 능력'에 달린 거니까...

차마 지옥이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이런 환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 것이 신기할 정도다. 10대 때 IMF를 맞이하고, 20대 때 비정규직 노동을 맞이한 우리들은, 현실이 이대로 진행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밥그릇'을 넘어 '생존'을 둘러싼 이 전쟁이 계속된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는 딸과 아버지, 조카와 삼촌, 막내와 큰형으로 만나게 될 20대 '88만원 세대'와 50대의 유신세대, 40대의 386세대, 30대의 X세대(연구자들이 지금의 30대를 X세대라고 규정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긴 하지만) 간의 무한경쟁이 지속된다면 지금 20대 대부분의 경제적 빈곤 또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이제 곧 20대가 될 지금의 10대들과 현재의 20대가 생존경쟁을 벌이게 될 장면이다.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 항상 밀려나던 20대가, 과연, 자기 뒤에서 생존을 위해 맹렬히 추격해 올 새로운 '88만원 세대'들에게 온정을 베풀 거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미래의 가능성을 미리 대출받아 흥청망청 써버리다가 결국에는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할 대한민국이 되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개인의 노력은 중요하다. 성공한 소수도 존재한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뒤안길에는 '실패한 다수'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그것을 단순히 패배자들의 능력부족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는 것이 이 책이 외치는 바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 우선 전제를 깐다. '혁명'과 '반(反)세계화' 그리고 '포드주의로의 회귀'(즉, 우리는 더 이상 개발독재시대의 고도성장을 이룰 수 없다)로는 현재의 세대간 경쟁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들 20대가 현재의 상황을 자각하고 스스로 나름의 생존전략을 집단적으로 짜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먼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어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나 제안 따위도 무용지물이 되기 쉽다. 그리고 이것은 연구자들도 고백하듯이, 그 무엇보다도 힘든 과제다. 같은 20대인데도 각자 너무 뿔뿔이 흩어진 나머지 집단적인 힘은 커녕 서로 간의 의견이 맞을지조차 의문이다(이렇게 말하는 본인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지난 대선에서 보았듯이 '경제성장'에 대한 꿈에 취해 이명박 캠프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20대 지지자들과, 학생회의 이름으로 이명박 지지를 선언한 총학생회장들의 모습을 그저 정치에 대한 순수한 참여와, 좌파 정권과 우파 정권이 각각 집권하는 '진짜 민주주의'의 실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몇 걸음 양보해서 그것이 정치학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집권세력이 정말 지금 비정규직 평균임금인 119만원에서 20대 급여의 평균비 74%를 곱해서 나온 결과인 88만원 전후 밖에 받지 못하는(그리고 당분간 계속 그러할) 우리 20대에게 무엇을 얼마나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들이 우리사회의 다양성과 안정성, 즉 '다안성'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짱돌은 어디에 버려져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들 수 있는 '짱돌' 중 하나는 20대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 즉 20대 정치인을 내세우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하등 문제가 없다. 만 25세 이상의 시민은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후보로 나갈 수 있으니까. 다만 어떤 당에서 활동하는가 하는 문제와(설마 한xx당에서 청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두 팔 걷어붙일 거라고 생각하시는지?), 얼마나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기존의 보수적인 정당제도 안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인가(이젠 정당에서조차 세대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라는 구체적인 난관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피선거권을 가진 20대 정치인이 나타난다 해도 그 기반인 지방정부가 허술하고 부패가 심한 한국에서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지방정부의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연구자들이 선진국의 사례에서 주목하는 부분도 이쪽이다. 독일과 스위스와 같이, 경제난 같은 거대한 파도에 맨몸으로 처할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을 지방정부가 자체고용과 보조금 지원이라는 형태로 보호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을 한국에도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20대를 위해 제시하는 정책과 제안자가 좌파냐 우파냐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연구자들의 제안은 심하게 급진적이거나 과격하지 않다. 오히려 제안하는 것은 '인간의 탈을 쓴 자본주의'라고 봐야 한다. 비록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원자재값 상승으로 위기를 겪고 있긴 하지만 올해 약 4.6% 정도의 성장률을 보일 세계경제가 갑자기 무너질지 어떨지는 모를 일이다. 적어도 지금과 같이 무자비하고 패자부활전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식 자본주의'에서 보다 현실적인 대책과 전략으로 지금의 20대와, 미래의 88만원 세대인 10대에게 외부의 충격을 완화해 줄 매트리스를 깔아주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모여야 되는 지점은 바로 '공동체'다. 우파적으로 말하자면 '공화국'의 어원인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일 거고, 좌파적으로 말하면 꼬뮌(commun)일테지만, 역시나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언제까지 K모F의 '붉은 악마'로 하나되고, 첼시의 유니폼을 입으며 삼☆의 홍보대사나 될 것인가. 된장녀 소리 들으며 명품족의 뒤꽁무니를 쫓을 것인가. 당장 토익책을 던져버릴 수도 없고, 끊임없이 추락하는 주가를 지켜보며 펀드에 쏟아부은 돈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짓고 있다 해도, 이 책을 읽은 20대들 그리고 10대들-저자들이 자신의 책을 꼭 읽어주기를 바라는 세대-이 이것 하나만은 떠올렸으면 좋겠다. "나 하나만은 살아남을 수 있다" 는 생각만은 버리자는 것을.

영어의무화교육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로스쿨 선정으로 대학과 교직원들이 상경투쟁도 불사하고, 본고사 부활로 학원가가 들썩이고, 1년 등록금 1천만원시대 진입으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화, 신용불량자 증가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2008년 2월 첫날인 오늘, 집값과 교육비와 임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바라기에는 아직 날씨가 매섭다.
한편에서는 한국의 선진국 진입이 코앞이라고 떠들어댄다.'선진국' 이란 무엇일까. GDP만 높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걸까. 우리는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여유가 있는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배운 것 같았는데, 현실은 역시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반대여야 되나 보다.


88만원 세대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나의 점수 : ★★★★

우리가 들 수 있는 짱돌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