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여주었다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영화 <암살단The Parallax View>(1974)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암살단>은 미국의 미디어 정치를 음모론적으로 풀어낸 영화로,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1976)와 함께 앨런 파큘라 감독의 대표적인 음모론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클립 제목은 The Brainwashing Scene이지만 실제로는 주인공 기자(워렌 비티는 거칠고 난폭하며 의심 많은 기자 역할에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다)가 의심스런 기업인 Parallax Corporation에 진입할 때 받은 테스트다. 제공된 영상과 음향에 대한 생리적 반응을 검사받는 것인데, 작품의 톤을 한군데에 집약해서 보여주는 주요한 장면이다.
LOVE, MOTHER, FATHER, HOME, COUNTRY, GOD, HAPPINESS, ME 등의 단어 사이로 사진이 교차하고 사진의 위치와 줌인/아웃을 바꿔치는 편집과, 잔잔하게 흐르다 격하게 바뀌는 사운드를 계속 보고 듣고 있자면 어느 샌가 섬뜩해진다. 그것은 영화 내외의 테크닉 때문인데, 어둠 속에서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주인공의 시선으로, 테스트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시 교차되는 액자식 구성과, 관객 자신이 주인공의 입장에서 테스트를 받는 느낌을 주는 편집이 그렇다. 영상 또한 모호하고 양가적인데, 이 영상이 영화 안에서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진 자'를 판별해내는 것인 동시에 영화 밖으로는 7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 내지는 풍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북미정상회담장에서 상영된 영상과 <암살단>의 영상 사이에는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바로 단어/문장의 반복과 이미지/사운드의 교묘한 편집이다. 영상에서 북한의 밝은 미래와 어두운 미래가 교차되면서 "이것이 현실이 될까요?"라는 질문이 반복될 때, 운명 영화사Destiny pictures는 한반도의 '운명'이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트럼프든 김정은이든 하다 못해 변방의 소시민조차도 미디어의 이데올로기 작업에 대해 훤히 꿰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속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헤매지 않겠다고 머리를 굴릴수록 미디어 정치는 힘을 발휘한다. 이는 <트럼프가 김정은에 보여줬다는 한국어 영상 보니…> 같은 클립의 댓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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