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나무연필, 2017)에서 현실 사회주의를 ‘적색 개발주의’라고 바꿔 부른다. 그가 보기에 구소련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국가들(중국, 북한 등)은 민주주의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또한 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나라였기에 민중 친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박노자는 (아마 그가 청년기를 보냈을) 전성기의 소련을 부족하게나마 일찌감치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시스템을 갖췄고 소비재가 부족한 대신 문화적인 토양을 풍부하게 갖춘 나라로 회상한다. ‘속삭이는 사람들’이 사는 ‘전체주의 국가’라는 그림과는 또 다른 측면일 텐데, 박노자도 잘 서술했듯이 성장과 폭력이 등치되었던 스탈린 집권 이후의 사회주의 국가는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전체주의적 폭력'의 상징과도 같은 대숙청이 어떻게 급격한 사회 변동과 계급 상승을 부추겼고, '보통 사람들'이 여기에 어떻게 편승함으로써 체제와 타협했는지에 대한 서술은 무척 시사적이다. 1930~40년대 소련의 급격한 경제 성장에 대한 식민지 조선의 관심사라던지 '적색 개발주의 국가' 소련과 발전주의 국가 남한을 비교하는 부분들도 그렇다.
박노자의 관점은 『서구 마르크스주의, 소련을 탐구하다』 (서해문집, 2012) 식으로 풀어 본다면 소련을 바라보는 관점 중 1. 타락한 노동자 국가 이론, 2. 국가자본주의 이론, 3. 새로운 생산양식 이론 및 관료적 집산주의 이론 중 세 번째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구소련이 붕괴된 원인을 공산당 관료들의 이기주의에서 찾을 때 특히 그렇다. 박노자는 구소련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국제주의적인 관점을 이리저리 엮어 나름대로 균형감 있는 서술을 전개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여전히 난처한 주제다. (혁명) 국가를 물신화했다는 점에서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을 비판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선택이 아닌가, 그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여기에는 바디우와 같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포함될 것이다) 국가/당에 얽매이지 않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물론 그 질문은 책의 내용을 초과하는 것이기에 지나치게 문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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