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7.01.25)
복지국가는 전진할 수 있을까
오바마 정부의 복지정책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가늠하다
버락 오바마는 이제 미국의 ‘전前’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퇴임 연설은 후임 대통령인 트럼프의 막말과 대비되면서 많은 이들이 오바마의 퇴임을 안타까워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들의 변명과 비겁함을 목도하는 지금, 오바마 같은 지도자를 향한 열망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 시기는 늘 좋기만 했던 것도 또 평화롭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금융위기와 전쟁 속에서 집권한 오바마 정부는 오바마케어와 같은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한시적이었으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런 점이 트럼프의 집권과 오바마케어의 축소라는 아이러니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김윤태 고려대 인문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빈곤정책과 복지정책의 변화: 오바마 행정부의 사례」(비판사회정책 43호, 2014년 5월)는 오바마 정부가 경제 회복과 빈곤 완화를 위해 복지 확대를 추진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다. 연구자는 사회정책을 결정하는 데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정치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의 정치 전략이 복지정책의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논문은 오바마 정부 임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쓰였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 시기 전체를 온전히 반영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요 대선 주자들이 저마다 복지정책을 들고 나오면서 각축을 벌이는 지금 시기일수록, 오바마 정부의 경험을 반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와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의 한계
신자유주의의 시대라 할 수 있을 지난 30년 동안, 서유럽과 미국의 복지정책은 크게 후퇴했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국가가 실업과 빈곤을 해결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졌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펼쳤지만 미국 노동시장은 높은 실업률과 고용 침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문제는 경제위기가 단지 경제적인 현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종적이면서 계층화된 현상이기도 하다는 데 있었다. 2010년 기준 실업률은 “백인 8.7%, 흑인 16.0%, 히스패닉 12.5%(95쪽)”로 나타났으며, 연령별로는 15~24세 청년들의 실업률이 가장 높았다. 무엇보다 고학력자에 비해 고졸 이하의 저학력자의 고용률 하락이 가장 심했다(고학력자 실업률 4.7%, 저학력자 실업률 15%).
높은 실업률은 소득 수준 또한 악화시켰다. 2007년 대비 2012년 실질 중위소득은 8.3% 가량 하락했으며, 인종적 격차는 더욱 커졌다. “1999~2000년과 비교했을 때 2012년 백인 가구의 소득은 6.3%, 아시아계 미국인 가구의 소득은 7.7%, 히스패닉 가구의 소득은 11.8%, 흑인 가구의 소득은 15.8% 정도 감소했다(97쪽).” 임금노동자 내부의 소득 불평등도 심해졌다. 고소득자라 할 수 있는 임금 상위 80분위 이상의 노동자는 시간당 실질 임금이 증가했지만, 임금 하위 10분위와 20분위 노동자는 실질 임금 감소폭이 가장 컸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남성보다 여성이 저임금 노동자에 많이 속했고(남성 24.3%, 여성 32.0%), 인종적으로는 흑인과 히스패닉의 비율이 백인보다 높았다(흑인 36%, 히스패닉 43.3%, 백인 23.4%). 이뿐만 아니라 불완전고용 비율도 높아졌다. 반면 미국 기업들의 이익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3%로 상승해 노동자의 상황과 크게 대비되었다.
기업은 점점 부유해지는 데 비해 노동자는 더욱더 빈곤해지는 상황은 사회 전체의 빈곤율 증가로 이어졌다. 2012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의 빈곤율은 15%에 달했으며 인종적으로 히스패닉과 흑인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에 따라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경제회복 및 재투자법’을 시행해 실업보험과 사회안전망을 위한 연방정부 예산을 확충했고, 주 정부와 지방 정부에 연방 정부 기금을 제공해 경기를 부양하고자 했다. 하지만 경기 부양은 미봉책이었고 연방 정부의 프로그램이 종료되면서 그 효과는 크게 줄어들었다. 또 한 가지 아이러니는 노인 인구보다 18세 미만의 아동과 18~64세 근로연령세대 인구의 빈곤율이 크게 상승했다는 데 있다. 노인 세대는 보충소득보장 급여 등의 혜택을 받아 상대적으로 덜 빈곤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한편 근로연령세대의 빈곤은 근로빈곤층의 증가로 이어졌다. 전체 빈곤층의 44%가 극빈층이 되었을 만큼 빈곤층 내의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은 오바마 정부 시기의 미국인들이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바마 정부보다 훨씬 이전 시기였던 1990년대 클린턴 정부 때에도 복지정책은 일부 시도되었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의 복지정책은 이른바 ‘근로연계복지workfare’로서 국가의 책임보다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쪽에 속했다. 클린턴 정부는 빈곤가정 임시지원 제도TANF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수급자에게 엄격한 근로의무를 부과했다. 하지만 정작 빈곤층이 자활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경제호황과 실업률의 감소로 빈곤율도 일시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IT 버블이 터지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빈곤층은 다시 증가했다. 클린턴 정부에 뒤이은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정부 시기의 부족한 복지정책을 더욱 줄이는 데 힘을 기울였다. 전체 사회보장에서 TANF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고 현금 지원 또한 감소했다. 대신 근로가정에 대한 소득공제를 제공하는 근로장려세제와 빈곤층에 현물을 제공하는 보충영양보조 대상자는 증가했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그나마 미흡한 근로연계복지마저도 ‘축소 정치’에 희생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세출 축소를 중시했던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 등에서의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인한 국가 부채 문제에 직면했다.
오바마 정부의 복지정책은
어떻게 한계에 봉착했는가
국가 부채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악재를 떠안은 채 출범한 오바마 정부는 미국 경제회복 및 재투자법ARRA의 제정을 통해 케인스주의적 경기 부양책을 펼쳤다. 연방 정부의 주 정부 재정지원, 복지 급여 인상과 수급 조건 완화, 개별 가구 및 기업의 조세 감면, 사회기반시설과 기술 부문 투자를 골자로 하는 ARRA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조세 감면이었다. 그렇지만 연구자는 오바마 정부의 사회보장 개혁은 부시 정부와 차이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미국 의회예산국에 따르면 “2011년 말까지 ARRA의 효과로 실질 국내총생산이 0.2~1.5% 증가했고, 실업률은 0.2~1.1%p 감소했으며, 고용 인구는 30만~200만 명 증가했으며, 전일제 일자리가 약 40만~260만 개 창출된 것으로 추정(107쪽)”된다. ARRA 법안과 예산에 따라 소득보장 제도 또한 일시적으로 확대되었다. 실업보험 예산이 확대되었고 수급 연장이 가능해졌으며, 보충영양보조 급여 수준이 인상되었다. 근로장려세제와 TANF 관련 예산 또한 증가했다. 보충소득제도의 일시 부가금을 위해 재정 지출이 이뤄졌고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이드가 확대되었다.
ARRA를 비롯한 오바마 정부의 복지정책은 나름 실효성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 2013년에 종료되면서 장기 실업자가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했다. 단적으로 폴 크루그먼은 오바마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국민총생산의 최대 1.6%를 진작하는 데 그쳤고, 유효기간은 2년을 조금 넘었기 때문에 경제침체를 극복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110쪽)”고 비판했다. 비록 오바마 정부는 ARRA 법안의 시효가 끝나는 2011년 9월에 4,47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일자리 법’의 입법을 시도했으나, 민주당의 보수적인 상원의원들을 포함한 우파의 반대로 실패했다. 오바마케어(전국민 의무 건강보험 제도)는 입법에 성공했지만, 보험 가입 사이트 장애, 기존 보험 가입자의 무더기 해지, 보험료 인상 우려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2012년 재선된 오바마 대통령은 빈곤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 상승을 새로운 국정목표로 설정했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9달러로 인상하는 것은 물론, 매년 물가인상분에 연동하겠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목표였다. 하지만 하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한 최저임금 상승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연구자는 오바마 정부가 1930년대 대공황 시기의 루스벨트 정부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으면서도 왜 그때보다 못한 사회개혁에 머물러야 했는지를 분석한다. 첫째, 양당제와 이념적 대립이라는 미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가 작동했다고 본다. 특히 반복지 정치연합이 주류의 풍부한 자원과 인종적 편견을 통해 강고해지면서 복지 확대의 정치를 봉쇄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둘째, 오바마 정부 또한 전략상 실책을 보였다. ARRA는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활수준을 충분히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지세를 끌어모으는 데 실패했다. 연구자는 여기서 오바마 정부가 클린턴 정부와 마찬가지로 직업 교육과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시행하지 못함으로써 정책의 한계를 노출했다고 본다. 복지 지출의 대략 1/3이 근로장려세제 등의 세금우대 정책에 쓰이면서 대중의 눈에 띄지 못했고 경기 부양의 효과도 적었다는 것도 문제였다. 2010년 11월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함에 따라 오바마 정부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공화당은 메디케어/메디케이드의 사영화와 축소를 공공연히 주장했고, 2013년 9월에는 보충영양보조 예산을 10년 동안 400억 달러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정치권 내외에서 실패한 오바마 정부는 복지정책을 지속할 내외적 동력을 상실해 갔다. 다만 부시 정부 당시 진행되었던 부자 감세 정책의 만기를 연장하지 않음으로써 부분적인 부자 증세 정책을 도입하는 데 그쳤을 뿐이었다.
여기서 연구자는 복지국가가 자본의 전지구화로 인해 후퇴한다는 네오마르크스주의적 관점보다, 계급연합class coalition 같은 정치적 행위자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에스핑-안데르센의 관점을 참조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미국에 전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오바마 정부는 계급연합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정당과 대중 사이의 연결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오바마 정부의 사회개혁 정책이 대부분 한시적인 프로그램에 그쳤다는 데 있다. 개혁 조치가 종료되면서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해졌고, 오바마 정부는 선거의 패배로 정치적인 난관에 몰림에 따라 주요 빈곤정책의 후퇴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연구자가 강조하는 대로 복지정책에 있어 정치적 행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우리 또한 오바마 정부의 경험에서 조금이라도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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