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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Archive

탄핵 정국 한가운데 놓인 고양이 방울, 개헌

by parallax view 2017. 3. 7.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12.19) 

<탄핵 정국 한가운데 놓인 고양이 방울, 개헌> 



탄핵 정국 한가운데 놓인 고양이 방울, 개헌 

대통령 임기를 둘러싼 논쟁을 통해 개헌의 정치적 의미를 살피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본격적인 대선 국면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듣는 요즘이다. 그러면서 개헌을 둘러싼 새누리당 비박계와 이른바 ‘잠룡들’의 입장 또한 함께 거론되고 있다. 단적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며 의원내각제 개헌의 시급함을 강조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대통령 임기를 비롯한 개헌을 지금 시점에서 논의하는 것은 개헌을 정략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로 국정농단 의혹이 본격화되기 전에 개헌 카드를 꺼내면서 국면을 전환하고자 했음을 떠올려 보자. 그래서 우리는 개헌이 그저 정략의 도구로 쓰인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서희경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센터 연구교수의 「한국 헌정사와 개헌: ‘대통령의 임기’ 논의를 중심으로」(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35집 2호, 2014년 2월)는 우리나라 헌정사에서 대통령 임기가 첨예한 쟁점이었음을 1954년 제2차 헌법개정(개헌)에서 살펴보는 논문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이승만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자유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의 연임을 원했다. 이에 야당은 연임을 독재로 가는 길로 보고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이승만은 결국 하야했지만, 나중에 박정희는 1969년 삼선개헌과 1972년 유신헌법 제정을 통해 또다시 대통령 연임을 관철시켰다. 이 점에서 개헌은 국가의 이념과 현실정치의 세력관계 간 긴장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그 때문에 지극히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차 개헌의 논리

“국난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는 단순한 대통령 중심제가 아니었다. 1948년 건국헌법은 내각제 요소가 포함된 ‘중간형 대통령제’ 혹은 ‘내각제적 대통령제’를 보장했다. 건국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되며 국무원은 합의제 의결기관이었고 국무총리의 임명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했다. 건국 당시 이승만은 강력한 대통령제를 원했지만, 대중적 정치지도자가 없었던 한민당은 의원내각제를 선호했다. 그럼에도 이승만 없는 국가 수립은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절충이 이뤄진 것이다. 건국헌법은 제55조 1항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보장했고, 대통령은 재선을 통해 한 번 중임할 수 있었다. 1954년 제2차 개헌은 여기에 “헌법공포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제55조 1항 단서의 제한을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추가하면서 이승만의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이때 개헌을 둘러싼 논의는 상황주의situationism와 민주주의democratism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개헌론자들은 국난의 비상 상황에서 영도력 있는 지도자에 한하여 계속 집권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78쪽).” 이런 말은 헌정사에서 거듭 반복된 것이기도 했다. 


  이때 개헌 반대론자는 세 가지 비판을 내놓았다. 첫째, 비상상황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전쟁이나 자연재해, 경제공황 등은 쉽게 비상상황임을 판단할 수 있지만, 이런 판단을 일상적인 상황에도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더욱 곤란한 지점은 대통령제가 ‘비상상황의 정치’의 유혹에 취약하다는 데 있다. 대통령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1인 기관이었고 국가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자리다. 그래서 대통령제에는 일종의 영도자주의 내지는 메시아주의가 포함되어 있다. 


  둘째, 이승만 대통령에게만 중임금지 조항을 예외로 하는 것이 법 앞의 평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에 개헌 찬성론자들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4선을 예로 들면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개헌 찬성론에 대한 반대 논거로 아테네 민주정을 제시했다. 아테네 민주정은 개인이 독선과 부패에 취약하다고 보았기에 ‘탈인격화된 통치’로서의 법치를 중시했고, 법률을 관리·유지하는 데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게 참여해야 했다는 것이다. 


  셋째, 개헌 반대론자들은 임기 연장이 권력의 독점 즉 독재를 불러온다고 주장했다. 이 논리에도 개헌 찬성론자들은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은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함으로써 정치적인 안정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의 연방주의자들이 임기와 연임이 자유와 긴장관계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미국은 ‘정치적 지혜’를 통해 그 긴장을 잘 조화시켰다고 보았다. 비록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한국이 미국과 같은 ‘정치적 지혜’나 유럽과 같은 정당체제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연임이 독재로 이어지는 길이 되곤 했다고 간주하는 듯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4년 제2차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자 했다. 


내각제적 대통령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제2차 개헌은 정부형태에 관한 논쟁 또한 불러일으켰다. 건국 초기 대통령을 견제하는 주요한 장치는 국회였다. 국회가 대통령 선출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사안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되어 있었으며, 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모든 행위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副署, 대통령이 서명한 다음 국무총리 등이 함께하는 서명)가 필요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여기에는 국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만큼 당시 대통령의 권한은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작았다. 하지만 이승만은 1952년 5월 25일 전시 부산을 비롯한 23개군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게 하면서 국회의 견제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아직 몇 가지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제2차 개헌은 이승만이 남은 장애물을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첫째, 개헌 찬성론자들은 국무총리제를 폐지하고자 했다. 그들은 대통령이 행정 수반으로서 이미 국무를 총괄하는데 국무총리가 존재한다는 건 이론적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그들은 국무위원 연대책임제 또한 폐지하고자 했다. 국무위원 연대책임제는 일종의 내각 불신임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국무위원의 전원 총사퇴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1952년 비상계엄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대통령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선출하는 직책이 되었다. 그 때문에 국무위원 연대책임제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셋째, 개헌 찬성론자들은 중대한 국가 현안에 대한 국민투표제를 주장했다. 이승만은 그동안 정치인의 잘못으로 나라를 망쳤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을 국민투표에 맡기자면서 적극 동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국회의원소환제까지 제안했다. 이때의 국민투표제는 비록 인민주권의 원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국회를 통제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대중으로서의 유권자는 선전과 선동에 매우 취약한 존재이다. 따라서 국민투표제 정치plebiscitary politics는 어떤 의미에서 순수대통령제를 넘어서는 것(93쪽)”이라고 보며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이런 조항들을 포함했던 제2차 개헌은 1954년 11월 27일 국회의 제90차 회의에서 부결되었다. 하지만 자유당이 야당의 총사퇴를 이용해 수정결의안을 가결하면서 결국 개헌이 이뤄지고 만다. 


  저자는 공산주의와 빈곤과의 대결 속에서 건국 초기 대통령제의 채택을 정당화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동시에 정치문화의 미성숙으로 인해 대통령 임기를 둘러싼 논쟁이 독재로 이어지곤 했다고 분석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상징이라는 위치와 정파적 정치인이라는 측면을 함께 가짐에 따라 모순에 빠지는데,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영도자주의가 더욱 강하게 나타나면서 혼란도 커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논문에서 미국 정치를 높이 평가하고 인민의 참여를 부정적으로 살피는 등 보수적인 정치관을 드러낸다. 하지만 우리는 논문을 통해 개헌이 순수한 법의 영역이 아니라 이념과 현실정치 사이의 길항을 보여주는 전장戰場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개헌을 말하는 이들을 냉정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