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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Archive

"그냥 우리는 정말 힘이 없단 걸 느껴요."

by parallax view 2016. 7. 12.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7.04) 

<"그냥 우리는 정말 힘이 없단 걸 느껴요."> 



"그냥 우리는 정말 힘이 없단 걸 느껴요." 

중국 선전시 일대의 사회복지사를 통해 본 중국의 청년/계급 문제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로 고도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다. 그만큼 도시 내 빈부격차는 물론 도농격차도 가속화되는 중이다. 가속화된 경제의 폐해는 폭스콘 노동자의 연쇄 자살로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전 세계 주요 IT 기업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해 온 대만계 초국적 기업 폭스콘은 그 사건으로 중국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도 노동자가 겪는 어려움을 일시적, 부분적으로나마 해소하는 방안으로 ‘사회복지’를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중국 ‘사회복지’의 풍경은 우리에게도 무척 익숙하게 다가온다. 복지의 책임을 철저하게 개인에게 떠넘기면서도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사회복지(社會工作)의 일상적 연행을 통해 본 중국 국가의 구조적 폭력: 선전 폭스콘 공장지대를 중심으로」(중소연구 제38권 제1호, 2014년 봄)는 연구자가 중국 선전시深圳市의 청년 사회복지사와 함께하면서 작성한 문화기술지ethnography다. 연구자는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는 선전시로 찾아오는 청년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역시 그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 사회복지사들이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살펴본다. 하지만 이들 사회복지사 또한 농촌 출신의 외지인으로서 ‘도시의 과객’이며, 정부의 용역을 수주한 사회복지서비스기구에서 일한다는 점에서 온전히 정부에 속하지도 못하는 ‘정부의 과객’으로 존재한다. 이때 제도의 피해자이자 약자인 청년 사회복지사들조차 자신들의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부가 애용하는 ‘전문성’을 적극 전유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사회복지가 갖는 구조적 폭력을 드러낸다. 


글로벌 자본과 국가가 공모한 

지역의 한시성 


  홍콩 위쪽에 위치한 선전시는 원래 광동성의 바오안현이라는 작은 어촌이었다. 이곳은 1979년 3월 선전시로 승격되고 1980년 8월 경제특구로 공식 지정되는 등 중국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한때 개혁개방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홍콩이 반환되면서 선전시도 그 사명을 다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선전시는 1990년도 초중반에 연 30%를 넘는 경제성장률을 보이면서 젊은 노동자를 빠르게 흡수했다. “천만이 넘는 전체 인구 가운데 도시 호구 소지자가 3백만 명에 불과하고 도시 인구의 평균 연령이 30세에 불과한 이 젊은 이민도시(227쪽)”에는 빈부격차가 도시 경관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선전시는 이른바 ‘관내關內’와 ‘관외關外’로 구분된다. 관내는 금융과 IT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어 고층빌딩과 녹지가 조성된 환경친화적 계획도시로 구성되었지만, 관외는 관내에서 밀려난 제조·가공업 공장과 저렴한 임대주택이 난립한다. 자연히 비슷한 연령대의 청년일지라도 계층과 학력 등 상징자본에 따라 관내 거주자와 관외 거주자는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산다. 


  연구자는 선전시 외곽의 강화 지역을 중심으로 참여관찰과 면접을 진행했다. 연구자가 지역에서 처음 받은 인상은 ‘한시성’이었다. “외지 청년들의 임시 거주용으로 높고 빽빽하게 쌓아 올린 저가 임대주택, 이들이 잠시 사용하다 버릴 각종 플라스틱 가재도구들을 판매하는 상점, 푼돈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간이식당과 노점, 주택과 식당에서 토해내는 오수가 한데 모인 개울까지, 지역 생태의 지속성을 보증해 줄 만한 어떠한 장치도 부재(228~229쪽)”한 이 지역에는 15만 인구 중 11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폭스콘 공장과, 공장이 들어서면서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갑작스레 돈을 번 본지인들, 그리고 한시적인 조건 속에 뛰어든 외지 청년들이 있었다. 그동안 중국의 ‘신세대 농민공’에 대한 연구는 이들이 ‘저항의 주체’나 ‘사회 안정의 위협’으로 존재함을 강조해 왔지만, 연구자는 그보다 청년 노동자들의 모호한 정체성에 보다 주목한다. 이들은 부모보다 고학력이고 디지털 미디어의 세례를 받았지만 하청 노동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도, 그렇다고 “자기계발의 기회가 전무한(232쪽)”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과객’이다. 이때 기층 정부는 지역의 한시성을 더욱 부추기는데, 외지인의 극심한 유동성을 이유로 행정의 공백을 방기하기 때문이다. 


  “결국 선전의 한 주변부에서 연구자가 목격한 지역의 한시성이란, 도농이원체제라는 지역 불균형 발전 과정에서 농촌 출신 청년들을 떠돌이로 만든 국가 폭력과 유리한 투자조건을 찾아 “가장 잘 빠져나가고 사전 예고 없이 이동할 자유”를 거머쥔 다국적 자본의 폭력이 결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233쪽) 


중국 정부는 폭스콘 노동자의 연쇄 자살 등으로 노동자를 적절하게 관리/통치해야 할 역할을 '사회복지'라는 명목으로 아웃소싱한다. (사진: https://www.flickr.com/photos/greenpeace_switzerland/)


노동자로, 사회복지사로… 

이중으로 착취당하는 중국 청년들 


  여기서 지역에 유입된 신세대 농민공을 관리할 역할을 떠맡은 이들이 바로 사회복지사다. 중국 정부는 ‘사회복지사 인재대오 건설 중장기 계획’을 통해 2015년까지 전문 인력을 50만 명, 2020년까지 145만 명으로 확대할 것을 천명했다. 선전시 정부도 2013년 8월 기준 1,800명의 사회복지사를 2015년까지 6,00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선전시의 사회복지사들의 월급은 2,800~4,000위안으로, 2010년 대학 졸업자의 선전시 평균 임금 3,579위안과 비교해서 아주 낮지는 않다. 하지만 재원을 정부 예산이 아니라 복권기금에서 충당하고, 사회복지서비스기구와 정부 간의 소통에서 문제가 많으며, 임금 체불이 잦고 임금 상승도 낮아 직업 만족도는 무척 낮은 상황이다. 대부분 20대인 사회복지사들은 다른 외지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지역 내 임대주택에서 산다. 그 때문에 면접에 참여한 사회복지사는 “여기 아파트가 평방미터 당 3만 위안이 넘어요. 지역 주민들이 우리를 딱하다는 듯이 봐요.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우리를 돌봐야 한다고요(235쪽)”라고 말할 정도로 복지사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상황에도 사회복지사들이 일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지 못하는 것은, 사회복지가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계속 발전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사회복지사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바는 지역 정부 관리의 ‘강력한 의지와 추진력’이었다. 사회복지사들이 대면하는 지역민 또한 이들 사회복지사를 ‘정부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지역민이 계획경제 시기의 강력한 국가 개입도,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돌봄도 아닌 제3의 방식을 국가라는 창을 통해 보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현장의 복지사들 또한 “주민들 사이에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239쪽)” 그냥 정부에서 왔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더 편할 때가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들은 엄밀하게 말해 국가/정부 소속이 아니라 정부가 승인하고 관리·감독하는 민간 사회복지서비스기구에 소속되어 있었다. 계약상 재정후원자인 갑은 지역 관구 민정국, 프로젝트 실시 및 관리자인 을은 지역 관구 산하 가도위원회 사회사무과, 서비스 제공자인 병은 이 지역의 서비스 제공 기관인 따샨 사회복지서비스기구다. 이때 병은 “폭스콘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선전에 온 건설자들來深建設者’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이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귀속감을 심어줄 수 있는 각종 케이스 자문과 심리지도를 실시할 것(241쪽)”이라는 정부의 목표를 받아들인다. 이에 따라 따샨 사회복지서비스기구 산하의 광화 커뮤니티 서비스센터는 각종 소조(모임) 활동과 대형 활동을 조직해야 하고, 지역의 다양한 조직과 합작 파트너십을 맺어야 했다. 그런데 병에는 각종 의무와 책임이 따르지만, 갑과 을에게는 권리만 있을 뿐 강제나 의무가 따르지 않아 업무 과중에 임금 체불 같은 문제도 수시로 겹쳤다. 더군다나 지역의 ‘업무 외’ 활동에도 동원되는 일도 빈번해, 정부가 청년 사회복지사들의 한시적인 위치를 악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사들은 자신들이 전문성을 더 키워야 하고 또 그 전문성을 통해 인정받아야 한다는 국가/정부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비록 사회복지사들은 그 ‘전문성’이 무엇이냐는 연구자의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전문성에 대한 믿음을 통해 스스로를 변호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연구자는 이들이 ‘구조적 폭력’에 처해 있음을 강조한다. 이렇게 구조적 폭력에 놓여 있는 중국 청년들의 모습에서, 각종 사회 활동과 정부/지자체 주도의 청년 사업에 참여하는 한국 청년들이 겹쳐 보인다면 지나친 것일까. 복지를 아웃소싱하는 한국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청년 사회복지사의 아래와 같은 성찰은 씁쓸하다. 


  “결국 사회복지사는 정부가 장식을 위해 동원한 체제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에게 사회가 평화롭고 조화롭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 … 실상 군중들이 당면한 문제들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해결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냥 우리는 정말 힘이 없단 걸 느껴요.” (2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