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6.13)
"임대인들을 타도하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라!"
도시 재개발을 둘러싼 예술적 개입과 실천을 보다
소설가 정지돈의 단편 「건축이냐 혁명이냐」(『2015 제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 문학동네, 2015)는 1960~1970년대 뉴욕의 도시개발과 동시대 서울의 도시개발이 진행된 양상을 교차시켜 보여 준다. 소설은 “한때,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미쳐 있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그런 전 세계적인 광기가 세계를 휩쓴 육십년대 후반(『수상작품집』 29쪽)”에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으리라 짐작했던 두 개의 세계(68혁명을 전후한 뉴욕과 개발독재 시기의 서울)에서 벌어진 일들이 똑같이 ‘새로운 세계’를 향한 몸짓에 다름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소설의 제목처럼 그 시대의 건축과 혁명은 서로 다른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겠다는 유토피아적 열정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난 뒤의 폐허 속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고 세련된 도시에 살고 있다는 우리의 안도감과는 정반대로.
이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객원교수의 「아나키텍처(Anarchitecture)·안티젠트리피케이션(Anti-gentrification): 1970-80년대 뉴욕 다운타운 도시빈민의 주거공간에 대한 미술의 대안적 모색」(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40, 2014년 2월)은 1970~80년대 뉴욕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Lower East Side 지역에서 벌어졌던 예술가들의 미학적 실천을 조명한다. 로어이스트사이드가 고급 주거지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그 지역에 살던 빈민과 노숙자들이 쫓겨나자, 미술가들과 액티비스트들은 개발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미적·정치적 실천을 조직했다. 이들의 활동은 자본주의적 도시 개발과 도시 빈민의 생존이라는 문제를 다룸으로써 오늘날에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도시 (재)개발에 대항하는 ‘관계미학’, ‘대화적 미학’, ‘개입적 미술’ 등의 전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아나키텍처와
바우어리 거리 전시
연구자는 1960년대부터 도시연구와 미술 분야에서 “마스터플랜에 의거한 모더니즘적인 도시개발 및 건축에 대해 회의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기 시작(245쪽)”했음을 지적한다. 1960년대 예술가 공동체가 로버트 모제스의 로어맨해튼고속도로 계획을 무산시키면서 다운타운의 지역적 정체성이 중요하게 부각된 게 주된 계기였다. 특히 1973년 고든 마타클락은 아나키텍처Anarchitecture라는 건축 연구 모임을 결성했는데, 아나키Anarchy 또는 부재와 부정의 접두사 ana-와 건축architecture의 합성어인 아나키텍처라는 이름은 연구 모임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마타클락에 의하면 아나키텍처는 “공간의 가능한 사용범위를 넘어서는 가치들을 제시하는 공간들을 다루며, 이 공간들은 은유적인 빈 공간들, 틈, 자투리 공간, 개발되지 않은 장소 등이다(247쪽).” 마타클락은 ‘쇼핑카트 주택’과 ‘몽땅 싸들고 다니는 주거 공간’ 같이 여행자와 노숙자들을 위한 움직이는 주거공간을 구상하거나, “부서진 운송수단이나 재해로 무너진 건물들, 건축 및 도시와 관련하여 포착되는 엉뚱한 순간들, 도시의 쓰레기나 도시 부랑자와 노숙자들의 흔적을 담은(249쪽)” 사진을 전시하면서 도시의 일부분이었지만 대부분 무시되었던 공간들에 주목했다.
한편 마사 로슬러는 1974년 12월과 1975년 1월에 걸쳐 뉴욕의 바우어리 거리를 찍은 사진을 전시했다. 이 사진들은 도시 빈민과 노숙자 등 도시의 실거주민이지만 주변화된 사람들의 흔적을 드러내면서 근대 건축에서 누가 배제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가로 6개, 세로 4개의 가로로 길쭉한 그리드’로 구성된 패널에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병치되어 있는데, 로슬러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적 도시 개발의 격자(그리드)에서 배제된 빈민들을 관객의 시선으로 불러들인다. 이때 그녀는 배제된 이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술에 취한 노숙자가 누워 있던 자리를 촬영함으로써 “도시의 스펙터클로부터 소외되었던 주체와 그들의 공간을 재현(254쪽)”한다.
행동주의 그룹인 PAD/D는 맨해튼의 로어이스트사이드 지역에서 <낫포세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젠트리피케이션에 저항했다. (출처: http://www.sholetteseminars.com)
액티비스트들의
안티젠트리피케이션 활동
모더니즘 건축을 향한 미술가들의 질문은 1980년대 로어이스트사이드 재개발을 통해 다른 형태로 빚어졌다. 시정부와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한쪽에, 예술가들과 저소득층 주민이 다른 한쪽에 서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미술가들의 그룹인 콜랩Colab은 강제 퇴거 명령에 저항하던 흑인 여성이 경찰에 의해 숨지면서 <부동산 전시>(1980)를 기획했다. 참여 작가들은 지역 사회 주민이자 주민의 대리자로서 전시를 조직했는데, “참여 작가들이 ‘전술적 점거’tactical occupation라고 부르는 이 전시의 핵심은 전시 자체보다는 시 소유 건물의 불법 점유와 시당국과의 대치 과정에서 이루어진 협상(258쪽)”에 있었다. 한편 또 다른 예술가 그룹 PAD/D는 <낫포세일: 주거지고급화에 반대하는 프로젝트>(1984)를 추진해 주거지고급화 또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직접적으로 다뤘다. 이들은 선전propaganda 성격을 가진 포스터(“움직이지 말고 외쳐라, 임대인들을 타도하라, 주거지고급화에 맞서 싸워라”라는 구호가 적혔다)를 제작하고 야외 갤러리에 부착해 “미술 작품의 전시장이라기보다는 정치 집회 현장과도 같은(261쪽)” 성격을 드러냈다. <낫포세일>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에게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긴다는 의심을 받던 예술가들이 주민들의 편에 적극적으로 서면서 “집단적인 정치 행동으로 현실에 개입하고 단일한 문제를 공유한 지역 공동체 일원으로서 통합되려는 시도(262쪽)”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바우어리 거리 사진전을 진행했던 마사 로슬러는 <만약 당신이 이곳에 선다면…>(1988~1989) 전시를 통해 빈민과 노숙자가 도시 거주민으로서 관객과 공존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로슬러는 미술재단의 후원을 받았지만, 재단의 기대와 달리 노숙자 문제를 전시 주제로 제안했다. 이때 노숙자 모임인 홈워드 바운드와 건축가/디자이너 그룹인 매드하우저스 등 여러 그룹이 참여해 전시는 협력 프로젝트 성격을 띠었다. 로슬러의 작업은 콜랩이나 PAD/D 같은 행동주의 그룹과 달리 제도권 안에서 수행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였다. <주택 전선><노숙자: 거리와 그 외 장소들><도시: 비전들과 수정들> 등의 제목으로 기획된 세부 전시들은 노숙자 보호소를 닮은 전시 공간을 전시장 내 배치하거나 각종 통계자료와 그래프, 에이즈 환자와 여성 노숙자를 위한 주택 계획 등을 보여주었다. 이런 식으로 로슬러의 전시는 시민과 빈민/노숙자 사이의 분할을 의문시하고 제도권과 비제도권 사이의 경계를 넘나듦으로써 “미술가와 전시기획자, 주류 미술가와 대항문화 작가, 실내와 야외, 전시장과 도시 공간, 기록과 행동 간에 경계 가로지르기를 촉발(267쪽)”했다.
연구자는 1970~1980년대 예술가들의 미학적 실천이 도시 개발과 맺은 관계를 일별하면서 “미술이 주체, 즉 도시 빈민을 단순히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사회적인 구조와 관계에 대해 분석하고 변화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있음을 의미(268쪽)”한다고 주장한다. 아나키텍처와 안티젠트리피케이션 활동은 오늘날 도시 재개발을 둘러싼 예술가들의 개입이 갖는 역사성을 드러낸다. 특히 ‘관계미학’이나 ‘대화적 미학’, ‘대항적 가능성의 미술’, ‘개입적 미술’, ‘형식으로서의 삶’ 등 현대 미술 담론의 개념은 이런 활동과 떼어 놓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1970~1980년대 예술가들의 미적 실천은 어쩌면 ‘혁명 이후’의 폐허를 직시하고 이를 미학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시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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