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6.27)
기본소득은 정말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독일의 모델 연구로 기본소득 논의를 살펴본다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오는 7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에서 열린다. 기본소득은 이름 그대로 전 국민에게 소득(임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진보정당, 특히 녹색당은 지난 4.13 총선 때 “전 국민에게 월 40만 원 기본소득 보장”을 제시하며 적극 홍보에 나섰다. 임노동 중심의 복지체계가 한계에 이르고 저임금·불안정고용이 일상화된 ‘고용 없는 저성장’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통계학적 요인, 인공지능의 기술적 진보로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가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옴에 따라 기본소득 담론도 활성화되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중도우파 성향의 정부가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예비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 발표했고,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이 국민투표 안건으로 제출된 뒤 부결되는 등 국제적으로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와 성남시는 각각 청년수당과 청년배당이라는 명칭으로 기본소득에 가까운 구상을 정책으로 실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들을 살폈을 때 기본소득은 생각보다 훨씬 우리 삶에 가까이 온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진보진영 일각에서 제시한 ‘모두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19세기에는 노예제 폐지, 20세기에는 보통선거권 쟁취, 21세기에는 기본소득 도입’ 등의 슬로건은 모두 기본소득이 진보적인 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그 자체로 정당하고 진보적인 기획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승호 충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의 「독일의 기본소득보장(Garantiertes Grundeinkommen) 모델 연구: 근로의욕 고취인가, 보장성 강화인가?」(한독사회과학논총 제23권 제1호, 2013년 3월)는 독일의 좌우파 정당이 근로의욕 고취(우파)와 보장성 강화(좌파)라는 관점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했음을 살피면서, 보장성 강화라는 목표를 놓고 보았을 때 기본소득 외의 실행 가능한 대안이 있음을 강조한다.
논문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16세기 이래의 고전적인 사회 유토피아 이념에 속한다. 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기본소득은 영국의 사회배당social dividend과 국가보너스state bonus, 국민배당national dividend 등의 논의와, 1960~70년대 미국의 데모그란트demogrants와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논의, 조건 없는 기본소득 지급을 둘러싸고 1970년대 후반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1986년 9월 벨기에 루뱅에서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asic Income Europe Network, BIEN가 결성되며 오늘날까지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현재적 논의에 있어서는 독일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어, 연구자 역시 독일의 사례를 참조했다.
독일 좌우파의
기본소득 모델
기본소득 논자들은 고전적인 유토피아와 사회주의 운동, 아나키스트 운동, 생태주의 운동의 맥락에서 ‘노동 구속으로부터의 자율성’에 주목해 왔다. 누구나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과 무관한 소득이 주어졌을 때 부당한 조건 속에서 차별을 겪으며 살지 않아도 될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국가의 관료주의와 사각지대라는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좌파만의 논의가 아니라 좌우파 모두가 저마다의 관점에서 해석하기에 이른다.
기본소득을 가리키는 명칭에는 ‘사회적 기본보장’, ‘부의 소득세’, ‘생계수당’, ‘최소보장’, ‘사회배당’, ‘시민소득’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들 모두 ‘노동에 종속되지 않는 기본소득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논문에서는 기본소득 보장의 기초 모델로 부의 소득세와 사회배당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 참조할 것을 권한다.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독일의 기본소득 논의에서는 크게 두 가지 주장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첫 번째는 우파의 정책으로 노동자의 근로의욕을 고취하는 것이 목적이고, 두 번째는 좌파의 제안으로 인민의 사회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높은 비중을 두는 것이다.
기본소득 논의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우파의 정책 중 자민당의 시민급여 모델은 부의 소득세를 구체화시킨 것이다. 대표적인 우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강조한 부의 소득세 모델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노동소득에 대해 고소득에 대한 양(+)의 소득세를 원천으로 하여 그 차액만큼 지원금을 주자는 주장(102쪽 각주 5번)”이다. 자민당은 모든 시민에게 시민급여를 지급하자고 제안하면서도,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만 급여를 지급하고 사회보험료를 시민급여에 포함시키려는 등 공급자 우선적인 정책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한편 기독민주당 소속의 튜링겐 주지사 디터 알트하우스는 연대적 시민소득 모델을 제시한다. 연대적 시민소득 모델 역시 부의 소득세를 골자로 하되 세제를 더욱 통합해 기존의 소득세와 노동자의 사회보험료를 40%의 연대적 소득세로 대체하고자 한다. 연대적 시민소득 모델은 독일에서 운영되는 실업급여 프로그램에서 추가소득에 따른 감액률이 80~90%인 데 반해 40%의 감액률을 보일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근로의욕 고취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파의 기본소득 정책들은 모두 기본소득의 도입을 통해 사회보장비용을 줄여 국가와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 때문에 법정최저임금의 유지나 단체교섭권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그런 제도들이 불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반면 좌파당의 기본소득연방연구회는 행정관리비용의 절감을 포함하되, 다양한 세원을 확보해 직접 분배원칙과 사회보험의 소득재분배원칙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또한 독일 녹색당은 기본보장을 제안하면서 18세 이상의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매달 800유로의 기본급여를 제공하고자 한다. 녹색당의 기본보장 모델은 사회배당 방식에 기초하며, 기존의 보험료 재정적인 보장 시스템에서 조세재정적인 보장 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좌파당과 녹색당 모두 법정최저임금과 불안정고용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단지 기본소득만으로는 보장성이 강화될 수 없다는 걸 드러낸다.
기본소득 보장이냐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이냐
연구자는 기본소득 보장제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살펴야 할 지점이 있음을 강조한다. 첫 번째는 재원 확보와 사회보장제도와의 조정이다. 과연 임금노동에 의한 사회보험급여를 기본소득에 통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답을 제시해야 한다. 두 번째로 기본소득 도입으로 발생할 사회적 제 관계의 변화와 재조직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기본소득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뒤바꾸기보다는 체제 안에서의 변화라는 성격을 갖기에, 사회적 동의를 얻을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 번째로 조건 없는 기본소득 지급으로 근로의욕이 떨어질 것이라는 자유주의적 비판이다. 이는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 네 번째는 기본소득 보장 모델이 각 나라마다 상이한 발전 경로에 따를 것이라는 점에서 각국의 독자적인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연구자는 기본소득 모델의 취지가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성 강화라는 점에 주목해, 독일 사회민주당의 전통적인 사회보장모델인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을 대안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은 일정 소득선 이하의 사람들에게 근로소득의 유무와 무관하게 소득을 지급, 보전하는 제도다. 이때 노동시간 감축, 고용률 제고, 임금인상 등의 개혁이 동반해야 기초보장의 보장성이 유지될 수 있다. 다만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은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유지, 보완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현 사회보장제도에 따르는 막대한 행정관리비용에 대해서는 개선의 의지가 없는 단점(116쪽)”이 있다. 연구자는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성 강화라는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 기본소득과 필요 지향의 기초보장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의 문제는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논문을 마무리한다.
기본소득은 어떤 조건도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점에서 임노동 중심의 복지국가 모델을 벗어날 대안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은 국가장치의 재편성은 물론 사회의 재편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장은 단순하지만 적용에는 많은 난항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정책의 문제이면서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기본소득 논자가 강조하는 것보다 훨씬 국가라는 문제가 전면으로 부각되는 이슈라는 점에서 기본소득 모델을 더욱 면밀하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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