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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4

뼈는 정신이다 그저께는 "거대한 이론을 창안하지 못해 안달하기보다 차라리, 코앞에 놓인 꽃의 냄새를 맡고 흘러가는 것들 그 자체의 무상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태도가 훨씬 낫다"고 썼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이론은 세계의 단순한 반영이나 '프레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의 조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론은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을 통과함으로써만, 그런 왜곡과 오독을 거침으로써만 생산되며, 그 자체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하세가와 히로시가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에서 설명하는 바를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정신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거대한 이론에 집착하기보다 일상의 사물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 이론을 말하지 않는 그 순간에도 사물.. 2017. 7. 9.
변증법은 살아 있다? 마르크스, 어떻게 읽을 것인가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6.05.28) 변증법은 살아 있다? 마르크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새로운 자본 읽기'를 둘러싼 논쟁으로 마르크스 다시 읽기 “항상 역사화하라!”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그의 주저 『정치적 무의식』(민음사, 2015)을 위와 같은 선언으로 시작한다. 저 문장은 얼핏 이론에 대한 비평의 우위, 사유에 대한 역사의 우위, 주관에 대한 객관의 우위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임슨이 이야기하려는 바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책의 「서문」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이론과 문학사, 이 두 경향들은 서양 학계의 사고에서 너무나 자주 엄격히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어 왔기에, 결론적으로 그 둘을 넘어서는 제3의 입장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 2016. 6. 30.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 환자 : 라캉과 함께한 헤겔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 환자』(2013, 인간사랑) 슬라보예 지젝의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 환자』는 지젝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것이라 한다. 그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과 『지젝이 만난 레닌』,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등을 읽으며 지젝의 논의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1부 '라캉과 함께한 헤겔'은 수월하게 읽히지 않았다. 1부는 단적으로 말해 '라캉으로 읽는 변증법, 변증법으로 읽는 라캉'이라고 하겠다(언젠가 주워 들은 말대로, 헤겔을 읽기 위해 굳이 라캉을 참조해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젝이 설명하는 변증법을 거칠게 해석하자면 이렇다. 헤겔의 저 유명한 표현인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질녘에야 날개를 편다."는 말대로, 우리는 사태를 늘 사후적으로, 소급적.. 2016. 1. 3.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박가분, 자음과모음, 2014)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은 가라타니 고진을 비평가일 뿐만 아니라 사상가(이 두 위치는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종종 포개지는 것이다)로 읽고자 하는 시도이다. 박가분은 고진의 사상적 변화를 거칠게 『일본근대문학의 기원』~『탐구 2』 시기의 초기, 『트랜스크리틱』의 중기, 『세계사의 구조』의 후기로 구분한다. 그는 고진 사상의 맹아를 근대 문학에서의 내면과 풍경의 이분법적 구도에 대한 비평에서 발견한다. 근대문학비판에서 후기 구조주의에 대한 몰입을 거쳐 '고유명'(다른 무엇이 될 수 있지만 결국 지금 이 모습이 된 '이 나')에 대한 사유를 다듬던 고진은 『트랜스크리틱』에서 자기 고유의 사유를 발전시킨다. 바로 '교환양식'을 통해 자본주.. 2014.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