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 Think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by parallax view 2014. 5. 10.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박가분, 자음과모음, 2014)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은 가라타니 고진을 비평가일 뿐만 아니라 사상가(이 두 위치는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종종 포개지는 것이다)로 읽고자 하는 시도이다. 박가분은 고진의 사상적 변화를 거칠게 『일본근대문학의 기원』~『탐구 2』 시기의 초기, 『트랜스크리틱』의 중기, 『세계사의 구조』의 후기로 구분한다. 그는 고진 사상의 맹아를 근대 문학에서의 내면과 풍경의 이분법적 구도에 대한 비평에서 발견한다. 근대문학비판에서 후기 구조주의에 대한 몰입을 거쳐 '고유명'(다른 무엇이 될 수 있지만 결국 지금 이 모습이 된 '이 나')에 대한 사유를 다듬던 고진은 『트랜스크리틱』에서 자기 고유의 사유를 발전시킨다. 바로 '교환양식'을 통해 자본주의의 사슬을 분석하고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을 갱신하는 것이 고진의 이론적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네이션=스테이트(국가)=자본이라는 고진만의 세계 해석은 『세계사의 구조』에 이르러 교환양식 A(호수제 혹은 호혜제)와 교환양식 B(국가에 의한 수탈과 재분배), 교환양식 C(상품교환)로 정교해진다. 고진은 교환이라는 관점으로 마르크스를 재독해하고자 하며, 교환양식 A, B, C의 사슬 안에서 변혁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발리바르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에는 환원 불가능한 세 가지 항이 있다. 세 개의 항은 각각 정치의 자율성으로서의 해방(자유주의), 정치의 타율성으로서의 변혁(사회주의), 정치의 타율성의 타율성으로서의 시빌리테('시민인륜'으로도 번역된다)(보수주의)를 말한다. 교환양식 A는 시빌리테에, 교환양식 B는 변혁에, 교환양식 C는 해방에 대응할 것이다). 이때 고진이 제안하는 개념은 교환양식 D로서의 어소시에이션이다. 협동조합 운동과 대안화폐 운동이 어소시에이션에 포함된다. 어소시에이션은 칸트의 표현을 따르면 '규제적 이념'으로서 작동한다. 즉 곧바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없다면 어떤 개입도 상상할 수 없으므로 불가피하게 도입해야 할 무언가다. 그런 규제적 이념의 실현양상(혹은 박가분의 표현을 빌면 '구성적 이념')으로 고진이 제안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서의 추첨제(제비뽑기)와 군사력의 증여를 통해 달성되는 세계공화국의 도래이다.


  고진은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커뮤니케이션(교통)을 주된 문제의식으로 삼는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렇게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사를 바라보았을 때, 고진이 참조하고 의지하는 논리는 모스나 고들리에, 폴라니 등이 연구한 인류학적 증여의 원리, 교환의 원리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진 논의의 약점은 단지 추첨제나 세계공화국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생산이라는 영역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네이션=스테이트=자본의 사슬을 어소시에이션이라는 규제적 이념으로 돌파하려는 기획은 국가(스테이트)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처지에 놓인다(그런 점에서 쉬잔느 드 브뤼노프의 『국가와 자본』은 고진이 빠뜨린 지점을 적확하게 짚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와 자본』은 자본이 의지하지만 직접 생산할 수 없는 특수한 상품으로서의 노동력과 화폐라는 문제를 건드린다. 이와 같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국가다).


  박가분이 옳게 보았듯이 교환양식 D(어소시에이션) 개념은 교환양식 A(호수제)와 교환양식 C(상품교환)를 동시에 품는 개념이면서 교환양식 B(국가에 의한 수탈과 재분배)는 배제한다는 점에서 국가에 대한 사유에 취약하다. 고진에 따르면 교환양식 D는 교환양식 A의 호혜성을 복원하되 네이션의 권위주의는 지양하고, 교환양식 C의 자유는 획득하되 자본의 착취는 배제하는 양식이다. 문제는 이때 교환양식 B는 공백으로 남겨진다는 것이다.


  되풀이하자면 가라타니는 교환양식 D를 개시하는 '보편종교'가 어떻게 하면 실정적 제도와 질서 그리고 관습으로 실현될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교환양식 D가 전면적으로 실현된 사회 안에서 교환양식 B에 기초한 '국가'가 다른 교환양식들과의 상호연관 속에서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전망이 부재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319쪽, 강조는 본문)


  박가분은 마르크스가 「고타강령 초안 비판」을 통해 국가 이후의 국가, 즉 '공동기탁'의 역할을 할 국가로서 어소시에이션으로는 창출해내지 못하는 사회적 공제기금으로서의 국가를 사유했음을 밝힌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사유했지만 고진은 놓치는 지점을 탐색할 때, 박가분이 의지하는 것이 헤겔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공간,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 있는 교통 공간이란 어떤 자명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헤겔은 개별 공동체에서 아무리 반성에 반성을 거듭해도 붙잡을 수 없는 '세계'를 반성하려면 우선 그 자신이 '어떤' 공동체를 실현해야 할지를 물은 최초의 철학자다. 단지 공동체를 넘어서 교통 공간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교통 공간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참여하려면 자신이 존재하는 공동체의 존재 방식을 반성하고 재창안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헤겔이 이성적 국가를 만들어나가는 정치적 기획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국민국가가 존재하기 이전에 지역적·부족적 '공동체'들 너머의 교통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바깥으로 추방된다든지, 재난을 겪고 피난을 간다든지 하는 역사적 우연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국가라는 정치공동체는 이미 그런 외부에 대한 자각으로서 성립해 있다. 무엇보다 헤겔이 말한 '국가'는 오늘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네이션=스테이트와는 다르다. 당시 헤겔이 살던 프로이센은 제대로 된 국민국가조차도 존재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즉 사전의 시점에 서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는 무엇보다 현실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히 '앞으로 도래해야 할 이성적 국가'라고만 말할 수 없다. 이미 실현되어 있는 것에 기초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중에 보겠지만) 헤겔이야말로 사전의 시점과 사후의 시점에 모두 서서 '보편성'을 사고한 최초의 트랜스크리틱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113~114쪽)


  역사유물론의 '공백'은 '보편종교'에 대한 가라타니의 관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헤겔은 '정신적 종교'와 '실정적 종교'를 구분하는데, '정신' 대 '실정성'의 구분은 가라타니가 말한 '보편종교'(종교 비판으로서 개시된 종교)와 '세계종교'(세계제국의 실정적 종교)의 구분에 대응된다. 헤겔 역시 실정적 종교에 비해 비판적 '정신'으로서의 종교를 우선시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정신적 종교가 실정적 종교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정성 자체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말하자면 기존의 실정화한 종교를 폐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실정성'(제도, 의례, 교리)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이것이 헤겔만의 '트랜스크리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이 관습과·화석화한 실정적 종교를 명확히 거부하는데도 그는 여전히 종교의 '실정성'에 대한 긴장된 의식을 놓지 않는다. (318~319쪽)


  즉 헤겔의 변증법은 이미 그 자체로 일종의 '트랜스크리틱'이라는 것이다. 다만 박가분은 고진의 마르크스 독해를 헤겔의 논의를 빌려 그 한계를 지적하는 데 그친다. 박가분이 '보편종교'와 '세계종교'의 변증법적 대립을 환기하며 언급은 했지만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지점은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문제설정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자본은 자본 자신만을 알 뿐이다. 자본의 운동이 상품과 화폐의 교환으로 표상될 때, 그와 같은 표상(representation)을 지탱하는 것, 아니, 표상 그 자체를 우리는 물신주의(fetishism)라고 부른다. 자본은 늘 즉자적이고 대자적인 이데올로기이다. 즉 내가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가, 돈이 모든 것을 교환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아이러니는 상품과 화폐의 관계는 교환이라는 형식만으로 분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거꾸로 된 헤겔을 다시 거꾸로 세우고, 상품의 세계로 내려가 『자본』 1권을 "상품은 첫눈에는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품을 분석하면 그것이 형이상학적 궤변과 신학적 잔소리로 차 있는 기묘한 물건이라는 것이 판명된다." 는 말로 시작했을 것이다. 고진이 생산과 교환을 '트랜스크리틱' 하겠다는 이론적 야심에 비해 생산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것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것의 맞짝이다. 


  고진에 대한 요약과 고진의 논의를 그대로 등치시킬 수는 없지만, 박가분의 고진 독해, 그리고 고진의 마르크스 독해에서는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문제설정이 미약하거나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은 박가분의 예비작업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Read & Thin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곤과 공화국 - 사회적 연대의 탄생  (0) 2014.11.01
코뮤니스트  (0) 2014.05.25
모멸감  (0) 2014.05.05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노예들에게  (0) 2014.05.03
권력이란 무엇인가  (0) 201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