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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 환자 : 라캉과 함께한 헤겔

by parallax view 2016. 1. 3.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 환자』(2013, 인간사랑)


  슬라보예 지젝의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 환자』는 지젝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것이라 한다. 그의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과 『지젝이 만난 레닌』,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등을 읽으며 지젝의 논의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1부 '라캉과 함께한 헤겔'은 수월하게 읽히지 않았다. 


  1부는 단적으로 말해 '라캉으로 읽는 변증법, 변증법으로 읽는 라캉'이라고 하겠다(언젠가 주워 들은 말대로, 헤겔을 읽기 위해 굳이 라캉을 참조해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지젝이 설명하는 변증법을 거칠게 해석하자면 이렇다. 헤겔의 저 유명한 표현인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질녘에야 날개를 편다."는 말대로, 우리는 사태를 늘 사후적으로, 소급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변증법은 모든 것을 동일한 것으로 되돌리는 과정, 즉 정-반-합의 직선 운동이 아니라, 부정을 다시 한 번 부정함으로써('부정의 부정') 부정의 운동 자체를 보존하고 갱신하는 운동이다. 또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은 늘 우리를 배신하지만, 오직 그런 배반을 통해서만 그 목표를 달성한다……. 이 '말과 행동'을 '혁명'으로 바꾸면,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피비린내 나는 실패는 그런 실패를 통해서만 그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후적이고 소급적으로. 이는 오싹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배반당할 수 있으며, 사실 배반은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것, 그것이 변증법의 가혹한 논리다. 


  2부 '포스트헤겔적 막다른 길들'은 지젝의 '전체주의 담론' 비판이면서 그 당시(1980년대 후반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불안정과 붕괴 시기) 지젝이 펼친 전체주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 『전체주의가 어쨌다구?』 같은 책을 통해 펼친 것처럼,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과 달리, 이 책에서 지젝은 당시 그를 짓눌렀던 스탈린주의 역시 전체주의로 독해한다. 이 지점이 내겐 흥미로웠다. 이후 지젝이 영미권에 소개될 때 가교 역할을 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잠시 동안 이론적 동지로 지냈던 건, 그 당시 지젝의 관점이 라클라우가 견지하던 급진민주주의/헤게모니 전략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이미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 환자』에서 드러난다. 지젝이 라캉과 후기구조주의 사이의 차이를 구분할 때 특히 그렇다. 


  역자 후기를 보면 역자 주형일 교수가 지젝에 무척이나 비판적임을 알 수 있다. 번역을 할 때 꼭 저자의 입장에 동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자의 가차없는 후기를 읽고 있으니 역시 애정이 없으면 번역도 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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