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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4

벤야민과 브레히트 『벤야민과 브레히트: 예술과 정치의 실험실』(2015, 문학동네) 에르트무트 비치슬라의 『벤야민과 브레히트: 예술과 정치의 실험실』(2015, 문학동네)은 당대의 가장 예리한 비평가와 작가의 만남을 다룬다. 동독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저자 에르트무트 비치슬라는 현실 사회주의의 공식 시인 브레히트가 아니라 체제의 모순을 파헤치는 예술가 브레히트에 주목한다. 반면 벤야민은 동독에서 낯선 존재였고, 현실을 돌파하는 해방의 기획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에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비치슬라는 벤야민과 브레히트의 관계를 문헌학적으로 살펴보면서 두 사람의 우정이 맺어진 역사적 배경과 그들 사이의 교류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두 사람이 쓴 공식 논문을 비롯해 일기와 편지 등 다양한 출처의 기록을.. 2016. 4. 2.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2012, 문학동네)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의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는 그의 지독한 반(反)헤겔주의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저작이다. 내가 크라카우어의 『역사』를 읽고자 했던 것은 발터 벤야민 그리고 테오도어 아도르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어떤 징검다리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징검다리는 순순히 두 입장을 절충하거나 연결해 주지 않는다. 크라카우어는 앞서 말한 대로 반헤겔주의자로서 역사의 총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그는 역사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속성을 가진 철학도, 이야기라는 서사적 형식을 통해 인간의 삶을 재현하는 예술도, 역사를 자연처럼 다루는 과학도 아니라고 말한다(하지만 서사적 형식과 과학적 탐구라는 영역에 한해서는 역사에서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승인한.. 2016. 2. 15.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중에서 "벤야민이 말했듯이, 혼란을 보여주는 것은 혼란스럽게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다." =========================================================================================== 하나의 서사틀 안에서 「파사젠베르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단편들은 해석자를 의미의 심연으로 밀어넣으며, 바로크 알레고리 작가의 우울에 필적하는 인식론적 절망으로 위협한다(나는 지난 7년 동안 그러한 절망에 빠지고 싶은―아니면, 벤야민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치 아래 기호학적 자유낙하를 즐기고 싶은―달콤한 유혹을 느낄 때가 많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그런 작가가 아니다. 그리고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자의성에서 구해내.. 2016. 1. 13.
투명사회 『투명사회』(한병철,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한병철의 글에 어른거리는 하이데거의 유령을 쫓아내야 할 것이다. 사실 쫓아낸다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넘어서려 시도해야 한다는 말이 보다 맞을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를 만들어내기는커녕 투명성의 독재를 이뤄낸다는 통찰은 일견 적절하다. 투명성의 독재는 감사(audit)의 제국과 쌍을 이룬다. 대학의 360도 다면평가, 국정감사, 더욱 투명한 감사, 감시, 통제…. 하지만 기술을 향한 적대적 태도로는 불충분하다. 게다가 한병철은 벤야민을 인용하면서 벤야민이 제의가치와 아우라의 붕괴를 서술할 때의 독특한 자세를 애써 무시하는 듯하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즉 사진과 영화의 등장이 아우라의 붕괴, 대중.. 2014.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