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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4

코뮤니스트 후기 보리스 그로이스는 『코뮤니스트 후기』(문학과지성사, 2017)에서 소비에트 공산주의(즉 스탈린주의)야말로 공산주의의 중핵이라는 테제를 기꺼이 떠안는다. 그는 소비에트 국가가 플라톤 식의 '철인 왕국', 즉 철학자들이 통치하는 이상 국가의 처참한 실패였다는 우파의 비난을 적극 긍정한다. 그에 따르면 소비에트 공산주의는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로이스는 바로 그 모순과 역설이야말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핵심이며, "흰 소도 일 잘하고 검은 소도 일 잘한다"는 식의 논리야말로 총체성을 손안에 그러쥐는 유일한 방법이었음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레닌 사후의 노선 투쟁에서 좌파(트로츠키)와 우파(부하린)에 대항해 승리한 중앙파(스탈린)가 좌우파의 노선을 동시에 추구했다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이 대목.. 2017. 11. 26.
러시아 혁명사 강의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나무연필, 2017)에서 현실 사회주의를 ‘적색 개발주의’라고 바꿔 부른다. 그가 보기에 구소련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국가들(중국, 북한 등)은 민주주의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또한 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나라였기에 민중 친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박노자는 (아마 그가 청년기를 보냈을) 전성기의 소련을 부족하게나마 일찌감치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시스템을 갖췄고 소비재가 부족한 대신 문화적인 토양을 풍부하게 갖춘 나라로 회상한다. ‘속삭이는 사람들’이 사는 ‘전체주의 국가’라는 그림과는 또 다른 측면일 텐데, 박노자도 잘 서술했듯이 성장과 폭력이 등치되었던 스탈린 집권 이후의 사회주의 국가는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 2017. 10. 29.
"불꽃 한 점이 들판을 태운다" 리뷰 아카이브 기고문(17.01.11) "불꽃 한 점이 들판을 태운다" 바디우와 지젝의 '공산주의 가설'을 통해 본 '도래할 민주주의' 2017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뜻깊은 해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 이뤄지느냐 마느냐 하는 이슈와 함께, 이르든 늦든 대통령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또한 올해는 6월 항쟁 30주년이며 무엇보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다. 한국은 아직 조용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며 각종 행사가 연이을 것으로 예상된다(이 와중에 한국에서는 ‘노동자의책’ 대표가 ‘이적표현물’을 판매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는 단지 100주년이라는 숫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수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외쳤다. .. 2017. 3. 7.
밤은 노래한다 0. 심연을 바라보는 자 그는 개가와 함께 모든 고통을 정복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고통은 가장 비참하다. 용기는 또한 심연에 있어서의 현기증도 몰아낸다. 그러나 인간이 서 있는 곳은 어디나 심연이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곧 심연을 바라보는 것이다. F.W.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환상과 수수께끼 중에서 김연수가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 2008)를 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슬픈 사랑에 관해 노래했다. 1930년대의 만주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오로지 그 추억만으로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 그녀를 추억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는 기억 하나만을 붙잡고 살아간다. 한 번도 어둠을 본 적이 없던 눈이 어둠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점점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심해 깊은 곳으로.. 2008.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