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카이브 기고문 (2016. 03. 31)
“저는… 꿈은 다음 생애에 펼치려고요“
대학생 해외 자원봉사의 동상이몽… '공공'이라는 이름의 치유
‘청년’이란 말이 밝은 미래나 꿈, 희망 같은 어휘와는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다. 실업이 만성화되면서 ‘청년실업’은 ‘가계부채’나 ‘노동개혁’과 함께 신문지상과 정치권의 대표적인 명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른바 ‘선진국형 불황’에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청년으로 호명되는 10~30대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돌파구도 쉬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대학생은 기존의 ‘특권’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에게는 아직 사회생활로 나아가기 이전의 ‘유예’가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유예가 정말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예컨대 어학연수나 해외 자원봉사 같은 것으로 그 유예의 시간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까?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공공이라는 이름의 치유: 한 대기업의 해외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본 한국 사회 ‘반(反)빈곤’과 ‘대학생’의 지형도」(한국문화인류학 46-2, 2013년 6월)는 현재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스펙 쌓기’인 대학생 해외 자원봉사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한편, 대학생 해외 자원봉사에 참여한 학생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문화기술지로 썼다. 조문영 교수가 참여관찰을 진행한 곳은 M 기업이 매년 방학마다 주최하는 한중 대학생 글로컬 캠프로, 교수는 2011년 여름 중국 베이징, 2012년 여름 쓰촨성 일대와 베이징에서 열린 세 번의 캠프에 ‘중국 전문가’이자 ‘멘토’ 자격으로 참여했다.
여기서 왜 대학생 해외 자원봉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오랫동안 빈곤은 ‘진보’ 혹은 ‘좌파’가 상대해야 할 사회악이었다. 이때 빈곤을 퇴치하거나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에서부터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반(反)자본주의와 그와 연결되는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이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전 지구화된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반(反)빈곤 담론도 크게 변했다. 이제 빈곤을 몰아내자는 주장은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의 몫이 아니라 빌 게이츠 같은 인도주의적인 자본가나 세계적인 록그룹 U2의 멤버 보노처럼 ‘깨어 있는’ 예술가의 것이 되었다. 특히 유엔에서 2000년에 ‘밀레니엄 개발 목표’를 공식 의제로 선정하면서 국내외에서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해외 자원봉사 홛동은 급격하게 힘을 얻었다.
인도 뭄바이의 빈민가 모습. ⓒEconomy Insight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활동 외에도 개발 NGO가 참여하고, 여기에 대기업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명분으로 내걸면서 빈곤 퇴치와 ‘글로벌 리더’를 표방한 해외 자원봉사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때 해외 자원봉사 활동은 대학생에게 인턴십, 공모전, 서포터스, 기자단, 마케터 같이 대학생일 때 지원할 수 있는, 스펙을 쌓는 ‘대외활동’ 중 하나다. 그리고 해외 자원봉사 활동은 여러 대외활동과 마찬가지로 지원과 심사, 활동, 평가로 구성된 한 건의 프로젝트로 나타난다. 아이러니는 과도한 스펙 쌓기에 대한 자원봉사 인사팀의 비판적 태도에서 나타난다. 이미 해외 자원봉사 활동 자체가 스펙의 일종이라는 것을 간파한 인사팀은 ‘순수한’ 봉사와 ‘불순한’ 봉사를 구분하고 이를 모집과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드러낸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자의적인 판단일 뿐이다.
연구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실제 학생들의 활동에서 ‘순수한’ 봉사와 ‘불순한’ 봉사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쪽이 진실이고 다른 한쪽이 거짓인양 가정하는 자의적 이분법이 프로그램의 전 과정을 통해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스펙 경쟁에 몰두하는 사회를 야기한 ‘구조적/객관적 폭력’에 대한 비판적 성찰 없이(지젝 2011: 37-40) 행위자의 도덕성을 감정 평가하고, 그(녀)의 불순한 의도를 까발리고, 그 행위자의 범주에서 자신을 빼내기에 급급한 형국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67~68쪽)
그런데 대학생의 해외 자원봉사 활동에서 주목해 볼 지점은 해외 자원봉사가 공적(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데서 비롯된다. 비록 해외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다른 대외활동이나 구직에 쓰일 ‘에피소드’를 쌓는 데 집중하긴 하지만, 대학생들도 해외 자원봉사를 냉소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거기에서 나름의 의미를 길어내고자 한다. 특히 기업이 해외 자원봉사를 이른바 Voluntainment(봉사를 뜻하는 volunteering과 놀이를 뜻하는 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기획하고, 대학생들이 지역의 빈곤 문제나 각종 봉사활동을 해결해야 할 ‘문제’와 구현 가능한 ‘대책’으로 받아들이면서 해외 자원봉사는 스펙 쌓기라는 도구적 목적을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자원봉사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는 아주 좁기 마련이고, ‘문제해결식의 테크닉으로 복잡한 현실을 다림질하는 방식’으로는 구직에 지친 학생들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조문영 교수가 인터뷰한 해외 봉사활동 참여자들도 그런 맹점을 간파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해외 자원봉사를 통해 힐링을 하고 싶으면서도 일정한 나이에 취직을 해야 한다거나 대기업이나 공사의 직원 아니면 공무원이 되어 버젓한 명함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정상성(규범성)까지 다 버리진 못한다.
광주의 한 국립대 법학과 졸업을 1년 앞둔 선영은 예전에 실패한 공무원 시험을 다시 도전하기는 싫지만 완전히 포기하기도 아까워서 결국 비슷한 시험 과목을 가진 공사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M 기업의 봉사활동을 도전적·창의적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안정성’ 때문에 공사 시험을 택한 이유를 물었을 때, 혹시 부모님의 강요 때문인지 질문을 던졌을 때 선영은 무표정으로 답했다. “강요받은 거 맞아요. 꿈이 없어서.” 이후 선영의 냉소적 답변 속에 꿈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다. “지금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죠. …그렇게 쳇바퀴 속에서 살고 쳇바퀴 굴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저는… 꿈은 다음 생애에 펼치려고요. 친구들이 웹툰 작가를 해보래요.” (83쪽)
“쳇바퀴 속에서 살고 쳇바퀴 굴릴 준비가 되어 있는” 대학생에게 해외 자원봉사는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내면의 빈곤을 일시적으로 치유해 주지만, 이 치유는 다분히 자족적이고 단편적이며 분절적인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다. 반(反)빈곤 활동이 국가나 대기업, 유엔과 개발 NGO의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되는 오늘날, 해외 자원봉사 활동은 대학생이 세계의 빈곤을 잠시나마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한편 한국 사회의 정상성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유예의 시간이 된다. 이 유예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준비가 되기엔 역부족일뿐더러, 여기에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정상성 밑에 감춰진 대학생과 청년들의 불안이 숨어 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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