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도착했다. 던컨 폴리의 『자본의 이해』(유비온)와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의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아트북스), 故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 김현 일기 1986~1989』 세 권을 주문했다.
1. 『자본의 이해』 :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한계』에 이어 또 해설서를 읽으려 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여전히 정면승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표지를 넘기자 정오표가 표지와 면지 사이에 꽂혀 있었다. 정오표라는 말에는 어딘가 성실한 냄새가 난다. 그토록 여러 번 교정과 교열을 거듭했을 텐데도 기어이 나오고야 마는 오류를 보며 '오류 자연발생설'의 지지자가 되는, 그러면서도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갖은 애를 쓰다 결국 속상함을 내리누르고 부끄럼에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만지작거리며 정오표를 만들어 놓을 편집자의 마음이란.
2.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 순전히 직업적인 이유로 사려는 책이지만, 책을 대하는 정민영 대표의 태도가 책을 사게 된 첫 번째 이유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같은 곳에서 내는, 편집 강의 모음집 같은 것을 읽다 보면 책을 너무 소중히 여기는 나머지 물신의 위상으로 올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시장성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품으로서의 책의 특성상, 책을 물신으로 볼 정도로 간서치(책만 읽는 바보)가 아니면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일까(물론 일반화할 수 없는 이야기다. 생각보다 많은 출판인이, 제작과 영업을 포함해, 책의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쨌거나 책은 상품이니까). 정민영 대표 또한 별 수 없이 책에 미친 탐서가다. 하지만 그의 관점은 책을 그림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그림이자 누군가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보게 함으로써 독자에게 잘 읽힐 수 있는 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질문에 나름 답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3. 『행복한 책읽기 - 김현 일기 1986~1989』 : 문학평론가이자 <문학과지성>의 창간 동인이며 프랑스 문학/철학을 국내에 들여온 당대의 '지식인'. 내가 알고 있는 김현은 대략 저런 '프로필'에 머무른다. 오래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이제야 읽는 것은 순전히 문학과지성사 40주년 페이지에 올라온 정희진의 『행복한 책읽기』 서평 때문이다.
정희진, <김현은 예외다>
김현의 시선은 비평의 기준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다. 나의 책읽기는 여유가 없고, 욕심이 많고,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한 책읽기』.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정원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행복했다. 나는 오랜만에, 촛불이 켜진 차분한 한여름 밤의 정원을 거닐었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서 정신적으로 죽는다(136쪽)." 김현은 예외다.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을 뿐 "정신적으로 죽지 않았다." 그가 남긴 책이 있지 않은가. 책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 대신 만질 수 있는 몸.
'사람 대신 만질 수 있는 몸'으로서의 책. 그런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책을 쓴 사람을 읽는다는 것이고, 그런 책을 쓴 사람을 다시 쓴다는 것이다. 정희진의 글 때문에 김현의 글을 욕망하게 되었다. 읽다 보면 언젠가는 김현의 글 때문에 그의 다른 글을 욕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시칠리아의 암소』처럼, 수십 년 전 이미 푸코에 대한 해석과 평론을 감행했지만 나 같은 문외한에게는 그저 옛날 이야기일 뿐이었던 책을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문화학과에서 내내 푸코를 붙잡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에서 푸코에 대한 해설을 시도한 책들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다. 그때 내가 배웠던 것, 외국 이론가들의 연구를 '최신의 이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희진이 말한 바, "푸코가 1984년에 죽었는데 그의 책에 이미 푸코는 물론 마크 포스터, 데리다가 자연스럽게('오독 없이') 등장한다. 2015년 한국사회에도 그런 이가 드문데."라는 말에 혹하고 있다. 나는 이제 와서 김현이 궁금해졌다.
계간 『문학과지성』 발간 기념사진(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치수, 최재유, 김현, 성민경, 황인철, 김병익)
출처 : 문학과지성사 40주년 기념 홈페이지 http://moonji.com/40years/#on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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