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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by parallax view 2015. 12. 13.

『생명정치란 무엇인가』(2015, 그린비) 


  토마스 렘케의 『생명정치란 무엇인가』는 그의 <생명정치 : 고급 입문>을 통치성/생명정치 연구자 심성보가 번역한 책이다. 렘케는 독일어권에서 미셸 푸코의 연구를 소개, 해석한 연구자로, 통치성과 생명정치/생명권력 개념을 역사적, 경험적으로 잘 설명한 사람이다. 한참 문화학과에서 푸코를 공부할 때, 심성보 선생이 번역하고 그린비 블로그에 올라왔던 토마스 렘케 글에서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링크) <토마스 렘케: 푸코, 통치성, 비판>


  렘케는 『생명정치란 무엇인가』에서 생명정치/생명권력 개념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미셸 푸코는 1980~90년대에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알려졌고, 국가나 자본 같은 거대 서사에 반해 미치광이, 환자, 죄수, 범죄자, 장애인 등의 '비정상인'이라는 사회적 형상, 미시적이고 주변부적인 이런 형상들에 주목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푸코의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가 국내 출간된 뒤에도 푸코는 여전히 『감시와 처벌』을 쓴 작가이자 개인의 육체를 다스리는 각종 훈육권력('파놉티콘'이 대표적인 예이다)의 해설자·비판자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5~76년』을 필두로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8~79년』이 출간되면서 이른바 '후기 푸코'에 대한 논의가 국내 연구자들 틈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 『생명정치란 무엇인가』는 '후기 푸코'의 작업을 씨줄로 삼고, 여기에 생명정치/생명권력 개념을 둘러싼 백가쟁명을 역사적 맥락과 경험적 맥락에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정리한 책이다. 


  생명정치biopolitics와 생명권력biopower을 단순하게 잘라 설명할 수는 없다. 거칠게 요약하면 생명정치는 인구(population)의 생명을 관리하고 조절하고자 하는 지식과 테크놀로지, 전략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도식화해서, 기존의 국가권력을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두는' 주권권력으로 놓고, 80~90년대에 국내에서 수용된 푸코의 논의를 '개인의 육체에 개입해 정상인으로 만드는' 훈육권력으로 놓는다면, 이른바 후기 푸코의 논의는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두는' 생명권력이라는 것이다. 이때 권력이 주권권력 → 훈육권력 → 생명권력 식으로 '진화' 내지 '진보'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권력의 이런 세 가지 형태(또는 '권력의 삼위일체')는 근대의 독특한 현상으로서, 시대가 현재에 가까울수록 생명권력이 주권권력과 훈육권력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상황('헤게모니')이라고 보는 게 나을 것이다. 푸코는 생명정치와 생명권력을 종종 혼용한다. 여기에 푸코가 자주 '통치성(governmentality)'과 이 두 용어를 섞어 쓰면서 독자의 혼란을 가중한다. 


  통치성과 관련해서는 국내에 『푸코 효과』가 오랜 시간에 거쳐 번역되었으니, 그쪽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또한 생명정치/생명권력 개념의 특성상 통치성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후기 푸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이다. 렘케는 적은 분량 안에서도 생명정치/생명권력과 관련한 논의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는 20세기 초의 '국가생물학' 논의에서 시작해 인종주의 담론과 생태주의 담론을 거치면서 생명정치/생명권력 개념이 푸코의 독자적인 발명품이라기보다, 당대 이론적 투쟁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렘케는 푸코의 논의를 요약하고, 조르조 아감벤과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또한 그는 생명정치를 '생명 그 자체의 정치'로 확장한 니콜라스 로즈와, 각종 유전 정보와 장기가 금융화를 통해 전지구적으로 소비된 '생명 자본'을 역설하는 카우시크 순데르 라잔 같은 이들의 연구를 간략하게 설명한다. 여기에 생명정치 개념이 내포한, 자연과 사회(정치) 사이의 이분법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반대로 그 이분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연구자들 또한 소개하면서 생명정치/생명권력 개념을 둘러싼 논의를 풍부하게 한다. 


  렘케는 책 마지막에 '생명정치 분석학'을 제안한다. 그가 제안한 생명정치 분석학의 세 가지 초점인 지식, 권력, 주체화는 질 들뢰즈가 『푸코』에서 푸코의 논의를 해석하며 요약한 세 가지 키워드에 부합한다. 이때 렘케는 생명정치와 통치성 개념 사이의 상관성에 주목한다. 그는 "생명정치 분석학은 권력 과정, 지식 실천, 주체화 양식 사이에 형성된 네트워크를 탐색해야 한다(190쪽)." 면서 각주에 "여기서 내게 제시하는 제안은 푸코가 고안한 두 가지 개념, 즉 통치성과 생명정치를 결합하려고 한다. 이는 생명정치를 하나의 '통치술'로 이해하기 위해서이다(190쪽 각주 2)." 라고 썼다. 렘케의 논의는 자연과 사회(정치) 사이의 이분법을 의문에 부치고 학제 간 경계 이탈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미셸 칼롱 등의 이론적 프로젝트인 '행위자연결망이론(Actor-Network Theory, ANT)'과 친화성을 보인다(통치성 연구와 행위자연결망이론 사이의 친화성 혹은 가족유사성은 니콜라스 로즈와 피터 밀러 등 '통치성 학파'에게서 두드러졌다). 렘케의 『생명정치란 무엇인가』는 푸코의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하는 한편으로 '글로벌 지식장'에서 생명정치/생명권력 개념이 어떻게 수용되고 자리매김하는지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첨언 1. 나는 지난 달 열린 『생명정치란 무엇인가』 북토크에 갔다. 번역가 심성보 선생과 현재 니콜라스 로즈의 『생명 그 자체의 정치』를 번역 중인 이규원 선생이 강연자로 나온 자리였다. 그때 이규원 선생의 강연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강연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면, 로즈가 주목하는 개념은 생명정치/생명권력이었으며 '생명 그 자체'에 주목하는 로즈를 따라가다 보면 통치성 개념과는 점차 멀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푸코는 국가라는 개념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통치성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고 생각한다. 통치성과 유리된 생명정치/생명권력 개념은 푸코가 갖고 있던 균형감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여전히 국가는 인민이란 누구인가, 인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와 관련해 중요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규원 선생은 로즈가 국가와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상대화하는 데 집중하는 면이 있고, 그의 생명권력 논의가 지나치게 제1세계(이규원 선생이 이런 표현을 썼다는 건 아니다)에 치중해 있다는 비판 또한 받는다고 설명했다. '국가'라는 문제는 강연 한 번, 답변 한 번으로 마무리될 것은 아니지만, 조금 아쉬운 느낌이었다. 


  첨언 2. 렘케가 소개한 순데르 라잔의 논의는, 비록 생명이 생산과 교환, 소비의 영역으로 진입한 경로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경제적 순환에 대한 비판과 '정치경제학 비판'을 혼동하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포획되고 재배열되어 시장에서 판매된 유전 정보와 장기는 누가 어떻게 생산하며 누구의 몸에서 추출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수탈과 착취를 혼동하는 것은 아닐까. 말하자면 누군가의 몸에서(보통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존재, 여성일 것이다) 난자와 장기를 적출할 때, 이를 수탈이라고 해야 할까, 착취라고 해야 할까. 만약 착취라고 한다면 이런 추출의 '노동'은 누가 수행하며, 이때 노동자의 생산물일 유전 정보와 장기를 과연 그/녀의 노동력이 투입된 상품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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