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2015, 펭귄클래식 코리아)
추석 연휴를 절반쯤 보내는 동안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을 읽었다. 소설은 상품의 스펙터클 속에서 부르주아의 삶을 동경하나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쁘띠(小)부르주아 혹은 룸펜프롤레타리아를 조명한다. 이들의 20대는 욕망의 시간이며 실패의 시간이었다. 이들 청년은 모든 것을 원하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혹은 부(富)의 부스러기만을 겨우 얻을 뿐이다. 약간의 정치적 낭만이 양념으로 곁들여지지만, 이들은 그저 상품만을, 더 많고 고급진 상품만을 원한다. 그런 점에서 책의 제목을 『사물들』에서 『상품들』로 바꿔 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서동진의 표현대로 소설의 시간인 1960년대는 "다양한 사물이 집하되어 아슬하게 펼쳐 보이는 흐릿한 풍경일 뿐"(서동진, <시장, 이성, 대학의 삼위일체>)이다. 그러니까 여기서의 1960년대는 오로지 상품들의 집합으로만 보여진다. 혹은 '1960년대 프랑스 파리의 그랑(大)부르주아가 누리는 모든 것'이라고 바꿔도 좋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소설은 어떤 성공도 보여주지 않는다.
여기서 이 책을 청년 문제의 현실로 소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지극히 속물적인 20대의 초상을 통해 이미 자본주의의 그물에 깊숙이 포섭된 주체의 문제로 간단히 환원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이렇게 사물을, 상품을 전경에 내세우는 소설을 통해 우리를 사로잡는 거울과, 번번이 실패하는 욕망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는 걸로 충분할 것이다.
여담. 지난주 화요일부터 하루에 한 장(章)씩 페렉의 『인생 사용법』을 읽고자 시도하고 있다. 추석이 끼어서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두 장을 읽기도 했다. 전체 99장, 총 744쪽의 분량이기에 그렇게 나눠서 읽으면 대략 세 달쯤 걸릴 것 같다. 그 소설은 그렇게 읽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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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과 실비의 생각에 조바심이야말로 20세기의 특징인 것 같았다. 나이 스물에, 삶이란 감춰진 행복들의 총합, 삶이 허락하는 한 끝없이 계속될 성취라는 것을 보았을 때, 아니 봤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들에게 기다릴 힘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도달된 상태만을 원했다. 아마 이 점에서 이들이 소위 지식인 축에 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들을 비난했고 무엇보다 삶 자체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사방에서 삶을 누리는 것과 소유하는 것을 혼동했다. 그들은 시간의 여유를 갖고 싶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했지만, 그들에게 무엇 하나 가져다주지 않는 세월은 마냥 흐르기만 했다. 결국, 다른 이들이 삶의 단 하나의 성취로 부를 꼽게 되었을 때, 그들은 돈 한 푼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신들이 가장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아마 옳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타인의 불행을 지워버림으로써 본인의 불행을 확대해 보여 주기 마련이다. 그들은 별 볼 일 없었다. 겨우 벌고, 프리랜서로 일하며 뜬구름 잡는 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의미에서 세월이 그들 편인 것은 사실이었다. 감정을 자극하는 이미지의 세상이 온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보잘것없는 위안이었다. (6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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