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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사회민주주의의 시대

by parallax view 2015. 9. 11.

『사회민주주의의 시대』(2015, 글항아리)


  프랜시스 세예르스테드의 『사회민주주의의 시대』는 1905년 연합 해체 이후의 스웨덴과 노르웨이 역사를 '사회민주주의 체제'라는 관점으로 서술하는 역사책이다. 통사로서 총론적인 서술을 지향하다 보니 백서 같은 느낌도 없잖아 있는, 딱딱하고 심심한 책이다. 700쪽에 달하는 분량이 압박으로 다가오긴 한다. 하지만 '복지국가'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이, 현지 역사학자가 서술하는 '내부적 관점'에 집중한다면 꽤 참고가 될 만하다.


  종종 복지국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지만 꽤 먼 이상향처럼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스웨덴처럼 할 수 있다"는 주장과 "그건 북유럽에서나 가능한 일이다"는 주장은 동전의 양면에 불과하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한 사회민주당이 이념과 정책의 공백을 케인스주의와 공동체주의로부터 끌어오는 와중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국가를 통해 달성하자는 국가주의와 맞물리면서 형성되었다. 그러니까 복지국가는 항상 국가의 산업 모델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추동된 산업화와, 사회운동세력이 견인한 민주화라는 이분법은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지국가를 만드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노사 갈등이 타협으로 귀결되는 평화로운 조합주의 체제'의 밑바닥에는 끊임없는 계급투쟁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복지국가 혹은 사회적 국가 스웨덴에서 제안된 여러 복지정책은 항상 그 국가의 경제 체제, 노동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스웨덴의 독특한 경제 모델로 알려진 렌-마이드너 모델이나, 보편적 보충연금 같은 사회보험정책, 임금노동자기금과 같은 '연기금 사회주의' 전략의 흥망성쇠는, 우리가 '보편적 복지'라고 부르는 제도를 실제로 구현하려 할 때 얼마나 많은 저항과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특히 복지국가 체제는 세계의 정치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 부분만을 뽑아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당 독재'라는 말까지 들었던 사민당 집권 30년의 영광은 끝났다. 1970년대 이후로 사회민주주의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복지국가의 형태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고, 아직도 자본주의 세계의 모범적인 사례라는 것을 저자는 자랑스러워한다. 한 동안 한국의 변혁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복지국가는 인민의 혁명적 기운을 순화시키기 위한 미봉책으로 비판받았다. 말하자면 북유럽 사민당은 잘 작동하는 자본주의 국가를 만들었을 뿐,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랬던 복지국가가 이제는 신자유주의에 멍든 나라가 지향해야 할 이상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이제는 자유주의자가 된 한때의 변혁운동가들이 복지국가 담론의 선두에 서 있다. 하지만 복지국가가 목표일 수는 없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흥망성쇠에서 배울 부분은 복지국가라는 완성된 틀이 아니라,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이들은 사회주의 우파이다)이 자본가와 벌인 투쟁 안에 들어 있는 급진적인 측면일 것이다. 


  1944년에 노동운동의 전후 계획이 실시됐다. 이 계획에 대한 영감은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아닌 전시경제에서 비롯됐다. 전시경제정책은 노동력과 자원이 공익을 위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 이 정책은 계획경제와 케인스의 거시정책을 전제로 삼았다. 자원의 정당한 배분, 높은 생활수준, 좀더 높은 효율성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결정지을 원칙이 뒤따랐다. 가장 구체적인 제안 중 하나는 국영상업은행에 관한 것이었다. (…) 


  계획경제를 두고 발생한 대립은 1948년 선거운동의 특징이 됐다. 그 결과 부르주아 정당을 향한 방향으로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자유당은 득표수가 2배 증가했고, 부르주아 야당에서 가장 중요한 정당이 됐다. 공산당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쿠데타로 지지를 잃게 됐으나, 사민당은 상하원의 과반수를 차지함으로써 동일한 수준의 위치에 남아 가까스로 정부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민당은 권력을 쥐었지만 계획경제에서 한 발 물러설 결심을 했다. 의견충돌은 금세 잦아들었고 정치 분위기가 한층 온화해졌다. 정부는 재계를 충족시키고 바람직한 협력과 필요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시도했다. 이에 재계는 사민당에 대한 공격적인 선동을 중단했다. (…) 


  반사회주의 당원은 사민당이 당시에 제안했거나 시행한 것뿐만 아니라 다음에 그들이 제안할 것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사회주의 사회는 어떤 이에게는 희망을, 또 어떤 이에게는 우려를 심어줄 수 있는 개념이었다. 그 사회를 향한 길에 첫걸음을 내디딘 사회민주주의의 계획을 이해하는 사람은 양 진영 모두에 존재했으나 전후 위기가 구체화되지 않자 기대감은 약화됐다. (352~3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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