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 Think

호모 루덴스 : 놀이와 문화에 관한 한 연구

by parallax view 2015. 1. 11.

『호모 루덴스 : 놀이와 문화에 관한 한 연구』(까치, 1981)


  놀이와 진지함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은 "놀이하다"와 "도박하다"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를 보면 잘 설명된다. 즉 사람이 룰렛 도박을 하는 경우와 증권 거래를 하는 경우에, 전자의 경우는 놀이하는 사람 자신이 그가 하고 있는 일이 놀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후자의 경우 증권 투기업자는 값의 상승과 하락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 속에서 증권을 사고 파는 일은 생활을 위한 진지한 사업이고 사회의 경제적 기능이라고 주장한다. 두 경우 모두 실제의 요인은 소득을 얻고자 하는 희망이다. 그러나 전자는 순전히 우연한 운수라는 것을 대체로 인정하는 반면에(이길 수 있는 체계가 있음에도), 후자의 경우는 그 당사자가 미래의 주식 시장 동향을 계산해 낼 수 있다는 어떤 환상 속에 빠져 있다. 여하튼 둘 사이의 정신 상태는 거의 다를 것이 없다.


 - 요한 호이징하, 『호모 루덴스』 3장. 문화를 창조하는 기능으로서의 놀이와 경기 p.85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것은 후에 소원대로 실현되리라는 희망에 기초를 둔 상거래 협정의 두 가지 형태(즉 우연한 운수를 믿고 하는 형태와 계산이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하는 형태/역자 주)는 바로 내기에서 직접 발생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여기서는 놀이와 진지한 이해관계 중에서 어떤 것이 우선적인가 하는 문제가 논쟁점이 된다. 우리는 중세기 말엽 제노바와 안트베르펜에서 미래의 만일의 가능성에 내기를 건 비경제적인 성질의 형태로서 생명 보험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때 사람들은 "사람들의 생사에 관해, 사내아이가 출생할 것인가 여자아이가 출생할 것인가에 관해, 여행이나 순례의 결과, 어느 나라, 어느 곳, 어느 도시가 점령되는가에 관해서" 내기했다. 이와 같은 협약들은 이미 순수한 상업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칼 5세(1500-58)에 의해서, 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도 특히 운수에 건 불법적 노름이라는 이유로 거듭 금지당했다. 새로운 교황이 선출될 때에는 마치 오늘날의 경마에서처럼 내기들을 했다. 17세기까지도 생명 보험 거래는 "내기"로 불리었다.


 - 요한 호이징하, 『호모 루덴스』 3장. 문화를 창조하는 기능으로서의 놀이와 경기 p.85~86



  주식 거래와 보험상품 가입과 같은 금융적 실천을 내기 혹은 게임으로 해석하고 싶은 유혹은 항상 존재한다. 그만큼 이들이 놀이의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이징하가 짤막하게 짚은 "미래의 주식 시장 동향을 계산해 낼 수 있다는 어떤 환상"이야말로 도박과 금융거래를 구분하는 데 결정적일 것이다.


  계산가능성에 대한 환상은 단지 허상이 아니라 주식 시세를 통해, 시세를 계산하는 계산기(컴퓨터)를 통해, 각종 금융상품을 사고파는 행위자를 통해 재생산된다. 여기서 계산가능성이야말로 오늘날의 통치 실천을 파악하는 데 핵심이라는 것이 통치성 연구의 주된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계산가능성에서 도출되는 것이 개인이 자신의 삶을 조직하는 윤리적 태도이자 합리적 행동양식으로서의 책무성(accountability)이다.


  호이징하 식으로 오늘날의 경제적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해석한다면 모두가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일 것이다(물론 호이징하는 굳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논하지 않고도 인간의 본질은 호모 루덴스에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가 놀이하는 인간으로의 복귀를 주장할 때, '현대 문명'에 놀이의 요소가 사라져감에 따라 문명 또한 쇠락한다고 개탄할 때 나는 그가 너무 멀리 나갔거나 혹은 과거로 후퇴한 채 방어적으로 쇠락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