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 & Think

글쓰기 생각쓰기

by parallax view 2013. 6. 23.

『글쓰기 생각쓰기』(윌리엄 진서, 이한중 옮김, 돌베게, 2007)


 맨해튼 중부에 있는 내 사무실 벽에는 작가 E. B. 화이트의 사진이 하나 걸려 있다. 화이트가 일흔일곱 살 때 메인 주 노스브루클린의 자택에 있는 모습을 질 크레멘츠가 찍은 것이다. 작은 보트 창고 안, 판자 세 장에 네 다리를 못으로 박은 수수한 나무 탁자가 놓여 있고, 수수한 나무 벤치에 백발의 남자가 앉아 있다. 창밖으로는 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화이트는 수동타자기를 두드리고 있다. 달리 눈에 띄는 것은 재떨이와 못 통 하나뿐이다. 못 통은 말할 것도 없이 휴지통이다.

 지금까지 만난 많은 사람들, 기성 작가와 작가 지망생, 지금 학생과 옛날 학생들이 그 사진을 보았다. 그들은 대개 글쓰기 문제를 상의하거나 자기 사는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시선은 타자기 앞에 앉아 있는 노인에게 끌렸다. 그들을 사로잡은 것은 간소함이었다. 화이트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글쓰기 도구, 종이 한 장,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은 문장을 받아줄 휴지통 하나.

 그 뒤로 글쓰기는 전자적인 것이 되었다. 컴퓨터가 타자기를, 삭제키가 휴지통을 대신했으며, 글을 통째로 삽입하거나 옮기거나 재배치하는 여러 키가 생겼다. 하지만 그 무엇도 글 쓰는 사람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남들이 읽고 싶을 만한 무언가를 쓰기 위해 골몰한다. 화이트의 사진이 말해주는 바가 바로 그것이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 역시 삼십 년 동안 마찬가지였다. (pp.7-8) 


 글을 쓴다는 건 힘든 일이다. 명료한 문장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심지어는 세번째까지도 적절한 문장이 나오는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절망의 순간에 이 말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이다. (p.24)


 성실한 필자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조 디마지오에게서 얻은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디마지오는 내가 본 최고의 선수이며, 누구도 그만큼 편안하게 경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외야에서 광범위한 수비 영역을 책임졌으며, 우아한 걸음으로 움직였고, 언제나 공보다 앞서 와 있었으며, 가장 어려운 공도 아무렇지 않게 잡았고, 타석에서 엄청난 힘으로 공을 쳐내면서도 전혀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힘들이지 않는 듯한 모습에 감탄했다. 그것은 매일같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어떻게 하면 늘 그렇게 잘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늘 제가 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관중석에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p.281)


=================================================================================


 진서는 글쓰기는 노동이고, 언어를 정확하게 쓰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임을 알려주는 작가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청량한 기분에 휩싸인다. 아마 진서가 화이트의 글을 읽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문장을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쓸 것. 불필요한 어휘를 삭제할 것. 늘 고쳐 쓸 것. 사람과 대상을 향한 애정을 잃지 않을 것. 그의 책 자체가 글쓰기 교본이자 좋은 예시이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런 글을 써야 한다.



'Read & Thin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만의 방 : 고시원으로 보는 청년 세대와 주거의 사회학  (0) 2014.01.15
사회주의 최초의 비극에 대하여  (0) 2013.07.08
사도 바울  (0) 2013.06.01
문화의 해석  (2) 2013.05.31
반딧불의 잔존  (0) 201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