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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삼십세

by parallax view 2013. 5. 4.

『삼십세』(잉에보르크 바흐만, 차경아 옮김, 문예출판사, 1994)


내가 과거에 했던 어리석은 일 중 하나는 책을 소리내어 읽던 동생을 몹시 미워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가 입에서 내는 소리로 내 독서가 방해받길 원치 않았다. 바로 그 행위, 종이 위에 새겨진 문장을 또박또박 읽어내리는 것을 나는 원치 않았다. 열한 살의 나는 그렇게도 작았다. 내 작은 세계 안에서 조용히 글에 빠져들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해야 했던 건 그녀의 낭독에 귀를 기울이고, 나 또한 낭독으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삼십세』 속의 단편 「삼십세」의 마지막 문단을 읽어내려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서른이 되리라는 생각을 좀체 해 보지 않았던, 지나온 과거를 향해 "나는 하지 않았어" 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과거의 그를 잊지 않았던, 한 어리석고 오만하며 경솔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 누구랄 것도 없이 책에 비친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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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곧 회복을 할 것이다. 
그는 곧 30세가 된다. 서른번째의 생일이 올 것이다. 하지만 종을 울려 그날을 고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아니 그날은 새삼스레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벌써 있었던 것이다. 그가 안간힘 쓰며 간신히 버텨온 이 일 년간의 하루하루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그는 생기에 넘쳐 닥쳐올 것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을 생각하며 저 밑 병실 문을 어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 병약한 사람들, 빈사의 사람들 곁을 떠나서.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삼십세」, pp.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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