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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위기의 신호탄, 서브프라임 위기

by parallax view 2013. 4. 1.

『뉴레프트리뷰』 2009/1(한국판)의 「세계 경제위기의 신호탄, 서브프라임 위기」(로빈 블랙번)를 읽었다. 아래는 단상.


1. 이 글이 쓰인 시점은 2008년 3월 이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분석이 아직도 유효한 것은 서브프라임 위기가 해소된 게 아니라 지연(혹은 억압)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G20, 특히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 등의 재정지출로 위기를 모면했을 뿐 글로벌 금융과세는커녕, 금융감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키프로스 위기를 비롯한 남유럽 금융위기에 전전긍긍하는 상태니까. 


2. 슘페터 역시 경기순환 국면 중 부동산 시장에서 버블이 터진다고 주장했고, 대공황기 미국에서 공적기관을 통해 부동산 위기를 해소하려 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대공황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뉴딜정책에도 글래스-스티걸 법 이외에 1933년 주택소유자대출공사(HOLC: Home-Owners Loan Corporation)의 설립, 1935년 사회보장법의 통과, 그리고 1938년 지금은 패니메이(Fannie Mae)로 알려진 연방전모기지협회(Federal National Mortgage Association)의 설립 등이 포함되었다. HOLC는 점증하는 모기지 관련 담보의 압류를 막기 위해 고안되었던 반면, 패니메이는 프라임 주택 모기지에 대해 보증하고 보조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p.110)."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의 원형인 셈인데, 어제 발표된 박근혜 정부 부동산대책에는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는 빠진 듯하고 주로 세제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3. 서브프라임 위기가 터졌을 때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대공황기에 버금가는 위기라고 그렇게 언론이나 금융권이나 정치권에서 떠들어댔어도 정작 내놓는 대책들이나 실행되는 것들은 대공황기에 턱없이 못미친다. 이 이야기는 거품이 터졌어도 계급권력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공고해졌음을 유추하게 한다. 단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에 큰 책임이 있는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무디스, 피치, S&P 등)의 권위는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4. 도널드 매킨지 같은 행위자연결망이론(ANT, Actor-Network Theory) 연구자들의 논문이 종종 인용된다. 블랙-숄즈 옵션 가격결정공식 연구가 대표적인데, ANT 연구자들의 관심은 금융시장이 그저 브로커들의 탐욕과 사기가 판치는 도박판일 뿐만 아니라 특정한 "장치들"로 구성되고 작동되며, 가격결정공식이 일종의 도구였음에도 왜 애널리스트나 브로커를 막론하고 그 방법론을 기꺼이 활용했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읽다 보니 알렉스 프리다 같은 금융사회학자들의 연구도 떠오른다). 


5. "서브프라임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집을 잃거나 잃게 될 200만에서 300만에 이르는 미국의 모기지 보유자 혹은 그들의 세입자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젊은 여성, 흑인 그리고 다른 소수자 집단의 비중이 높았다(p.116)." 이와 관련된 연구로 Center for Responsible Lending의 <Lost Ground, 2011>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방법론 이하의 장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논문은 서브프라임 대출에 소득 수준뿐만 아니라 인종이 주요 척도였음을 강조한다(백인보다 소득이 높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프라임이 아니라 서브프라임 대출 대상자라던가). 


6. 블랙번이 제시하는 대안에는 국가가 거대 공적기관을 만들어 부실자산을 매입하고, 사회적 기금의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며, 글로벌 금융과세와 감독을 수행하는 세계금융기구를 만드는 것 등이 있다(기후변화와 고령화, 시장의 불안정성에 대응하는 "미래펀드" 혹은 국부펀드의 사례 중에 한국이 끼었다. 국민연금을 두고 하는 이야기일까?). 루돌프 마이드너(스웨덴 사민당의 이론가이자 임노동자기금을 제안한 경제학자)를 대표적인 예로 든다는 점에서 블랙번 역시 사회민주주의적 대책을 요구하는 셈인데, 그 제안으로부터 5년 동안 그 비슷한 정책이 어디에서 시행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대안세력 자체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