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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List

연속과 단절

by parallax view 2011. 8. 8.

1. 대학원 한 학기는 내가 그 동안 쌓아왔던 생각과 지식이 얼마나 얕고 좁으며 산만한 것인지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은 문화연구와 젠더연구, 문화인류학을 하는 곳이고, 비판적 거리두기를 일상적으로 체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공간이라는 게 크게 작용했다.

2. 내가 어떤 이념의 '대안'이나 '상징'으로 삼아왔던 모든 것에 대해 '단절'을 선언하는 것만큼이나 서투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야 할 텐데, 이는 대상에 쏟는 애정과 관심 이상의 잔가지를 쳐내는 데 목적이 있다.

3. 나는 내가 지나왔던 그리 길지 않은 지적(知的), 이념적 행로 중 일부는 반성하고 일부는 정당화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여기에는 마키아벨리와 칼 폴라니에 대한 과대평가, 지식의 연결망을 탐색하는 데 있어서 드러낸 경솔함, 온건파적 경향에서 급진주의적 경향에 대한 지지로 선회함에 따라 해소해야 할 인물과 사건들(제대 후 대선에서 문국현에게 투표했다던가, 심상정의 경기도지사 출마포기선언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던가 등등)이 포함된다.

4. 더불어 지금 살펴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펴보게 될 수많은 연구자들의 이름을 떠올리면서, 이들과 조금은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만나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맑스든 푸코든 그람시든 해러웨이든 조금은 가볍게, 산보하듯 만날 수 있다면. 그리고 모순과 긴장을 웃으면서 견딜 수 있다면. 아이러니와 역설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연구자' 아닐까?

5. 매 학기마다 어떻게 생활해나갈지 물적 토대를 고민하기 바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나의 언어를 더욱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듬으며 한 명의 '유기적 지식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카데미아를 넘나들며 연구하기. 이론-실천이라는 이분법에 갇히지 않기. 논쟁하기보다 생산하기. 인식론의 문제를 품성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기. 대결에서 협력으로 변이하기. 기꺼이 '오염'되기.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소소한 선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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