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면 으레 블로그질은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리영희 선생이 별세하셨다는 소식도 피곤에 전 밤에 잠을 설치다 문자로 받았다. 병으로 어제 오늘 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았다. 떠날 사람은 떠난다. 우리는 다만 숱하게 흐르는 조사(弔辭) 속에서 이생의 그가 무엇이었지를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권력에 저항하고 약자의 편에 선 저널리스트, 꼬장꼬장한 선비, 마오이즘에 경도된 사회주의자, 아니면 그저 늙어빠진 반골……. 윤곽이 뚜렷한 사람은 그만큼 명암도 갈리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내뱉는 이 말들도 그에 대한 오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정작 리영희 선생의 글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 리영희 선생과 만나는 경로는 인터뷰 기사 몇 개가 고작이었다(내가 읽은 최신의 인터뷰는 김현진의 것이다). 내가 떠올리는 선생의 인상은 늙고 고독한 무사다. 한평생 벼리고 또 벼렸던 칼을 놓은 후에도 손바닥에 박힌 굳은 살을 손가락으로 부비며 마음의 칼만은 놓지 않는다고 거듭 되새기는 노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시대의 그림자가 더 짙어보일테지만, 그저,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베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라는 금언조차 무의미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베어야 할 스승은 우리가 베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이를 다행스러워 해야 할까?
그럼에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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