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원래 미국 민주당보다 왼쪽"> (시사IN)
여론조사 전문가 출신으로 손학규 대표가 영입한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이철희 부위원장은 이 딜레마를 거론하며 “그래서 복지 정치가 복지 정책보다 먼저다”라고 말했다. 무슨 의미일까. “복지 제도에서 이익을 얻는 지지 블록을 다수파로 구축하는 것이 예산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보다 먼저다. 이를테면 친환경 무상급식은 학부모 외에도 유기농 농산물을 다루는 농민과 유통업자를 지지 블록으로 묶어낸다. 의료에서도 보육에서도 이런 ‘이익을 얻는’ 블록을 형성해 다수 연합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지금 우리는 노동자의 90%와 중소 자영업자 전체가 조직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복지를 매개로 해서, 이 층을 지지 블록으로 묶어내자는 거다. 이 지지 블록의 힘을 업고 국가 재정을 재구성해야 한다. 현재 재정 구조 내에서만 하자는 것도, 섣불리 증세부터 하자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인터뷰에서 그람시를 이야기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철희 부위원장이 말하는 '복지 블록'은 꼭 역사적 블록의 재생산이다. 다만 계급적 이익이 아닌 계층적·산업적 이익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에 보다 보수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계급 없는 대중'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복지 블록이라는 매개는 무척 유혹적이다.
이는 사실상 ‘복지 전선’으로 한국 정치의 갈등 구조를 대체하자는 구상이다. 흔히 말하는 정계 개편보다도 한 단위가 더 큰, 정치의 핵심 갈등 구조를 개편하자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두드러진 갈등축인 ‘지역 구도’에서 이익을 얻는 세력의 반발은 사실상 필연이다. 민주당에서는 호남에 뿌리를 둔 정치인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다.
'복지 블록'을 무기로 전선을 새로 짜겠다는 전략은 좌파 및 자유주의 의제를 모두 민주당 안으로 모아 양당제를 뿌리내리겠다는 뜻이기도 하다(즉, 진보 정당 말려 죽이겠다는 소리). 개혁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이야 더 바랄 것 없겠다. 하지만 기자도 지적하다시피 민주당 실세인 호남 유지들과 이들의 지지를 받는 호남 출신 정치인들과 빚을 마찰이 거듭 장애가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호남에서 민주당을 위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학계에서도 진보·보수 양당제의 출현 가능성을 논한다. 정치 전문 출판사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는 “정당 이론에서 정당의 개수는 ‘그 사회의 갈등축+1개’로 본다. 즉, 갈등축이 하나면 양당제가, 갈등축이 두 개 이상이면 다당제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상충하는 이해관계 개수만큼 그를 대변하는 정당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갈등축은 갈수록 분배 문제 하나로 모이고 있다. 기존 진보 정당에는 안된 얘기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정치의 골격은 다당제보다는 양당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라고 전망했다.
정치평론은 평론가에 의해 수행되는 현실분석인 동시에, 그가 현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이상을 반영한다. 박상훈은 민주당이 '복지 전쟁'의 실질적인 수혜자가 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내 반동을 얼마만큼 뿌리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실패할 경우, 다른 보수 정당과 자유주의 정당, 좌파 정당이 반대급부를 비례적으로 가져갈 것이다(물론 비율의 편차는 크겠지만). 여기서 민주당의 '좌클릭'에 대한 시사IN의 기대와는 거리를 두고 기사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여전히 한국 진보·좌파 정당의 지지도가 민주당의 대중적 지지에 비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역사적 블록' 형성 시도는 좌파 정당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즉, 좌파 정당은 역사적 블록을 형성할 수 있을 때에야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잡설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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