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좌파 몰락 원인, 우리는?> (레디앙)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의 글이다. 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의 노동 탄압이 어떤 배경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그에 대한 이탈리아 노동 계급의 저항은 어떤지에 대한 글을 먼저 읽는 걸 권한다(레디앙, <이탈리아판 노조파괴 맞선 금속 총파업>).
본문을 읽고 나니 '그람시 이후'의 이탈리아 좌파 정치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 깊게 뿌리내렸던 공산당은 어째서 몰락한 것일까? 그리고 현재의 반동 국면(베를루스코니의 극우파 정부)에 대한 노동 계급과 좌파의 대응이 왜 지리멸렬한 것일까? 이 글은 현장에 대한 크로키다, 그래서 더욱 섬세하고 세밀한 리포트가 요구된다.
구 소련 붕괴 이후 좌파의 몰락은 돌이킬 수 없는 전지구적 추세인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아랍의 혁명 국면, 그리고 만성적인 계급 분열은 좌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우리가 이탈리아 좌파의 몰락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2012년 총선/대선이라는 '부르주아 정치 일정'(이상한모자의 표현에 따르자면)을 앞두고 선거연합에 몰두하고 있는 지금, 좌파의 생존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덧. 글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이탈리아 공산당을 이끌었고 오랫동안 그람시가 그의 그늘에 있었다는 보르디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급진주의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공산주의 투쟁'은, 그러나 너무 고립되어 있는 듯보인다. 우리의 경우로 보자면,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같은 느낌이랄까(그래도 이탈리아는 구체적인 '조직'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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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좌파 몰락 원인, 우리는?
[현장에서] 시장에 굴복, 무원칙 선거연합, 분열주의 등
유럽에서 좌파정당은 물리력만이 아니라 헤게모니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그람시의 고국, 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서구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공산당이 있었던 나라, 이탈리아에서 지금 좌파는 의회에 한 석도 없다.
나의 의문
이탈리아의 노동조합을 방문하면서, 나는 이들이 정권과 자본의 탄압과 노동자 투쟁을 얘기하면 할수록, 그런데 정치권은 왜 제대로 노동자를 지원하거나 함께 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이면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화려했던 이탈리아 공산당의 역사는 어디 가고 지금 이렇게 되었는가?
이명박만큼, 아니 이명박보다 더 화려한 베를루스코니의 반노조 활동, 그 수많은 섹스 스캔들에도 꿋꿋이 버텨내는 '문제적 총리' 못지 않게, 내게 더 '문제적'인 것은 좌파정치의 몰락이었다.
90년대 초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명을 좌파민주당으로 바꾼 이후, 과거의 '낡은 유산'을 벗어던지고 시장 이데올로기를 전면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남은 좌파는 재건공산당의 깃발을 내걸었지만 지지층은 소수로 전락하고 그나마도 분열로 더욱 소수화됐다.
여기에 검찰의 '깨끗한 손' 운동으로 검은 정치자금 내막이 드러나면서, 수십 년간 정권을 장악했던 기민당도 몰락하고 만다. 과거의 낡은 정당들이 송두리째 몰락하는 가운데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방송 재벌 베를루스코니다. 방송을 장악한 그의 선전술과 우파선거연합을 바탕으로 그는 무려 3차례나 수상을 역임하는 쾌거(?)를 이룬다.
소수화된 좌파민주당은 과거의 정적이었던 기민당계까지 끌어들여 또다시 민주당으로 변신하여 한 차례 선거에 승리하지만, 선거연합의 내부 분열로 정권을 내놓아야 했다. 결국 2008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좌파정당과 연합을 절대 안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했으며, 좌파연합은 3%밖에 되지 않은 지지율로 의회에서는 전멸하고 만다. 특히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에서 다수득표제로 바뀌면서 소수정당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이에 비해 베를루스코니는 우파연합을 통해 의석 과반수를 얻었다.
이탈리아 노동자들의 이야기
‘붉은 볼로냐’라는 별칭까지 있는 볼로냐 지방의 노동총동맹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볼로냐 시장은 민주당 당원이지만, 좋은 친구다. 그러나 다수 민주당 당원들은 지금 노동자 투쟁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너무나 시장친화적이다. 아울러 베를루스코니는 복지, 교육 등의 예산을 깎아버려 지방정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그리 많지 않다.”
금속노조 간부도 시니컬하게 말한다. 노동권을 무시하고 헌법과 노동법을 무시하는 자동차 회사 피아트 사측에 대해서 민주당 내에서는 3가지 입장이 있다고. “사장에게 레드 카펫을 깔아주어야 한다는 입장, 노동자 편을 들어야 한다는 입장, 고용이 불안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 그것이다.
토리노에서 만난 피아트 공장 대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낡은 재건공산당은 제대로 현장에 뿌리박지 못하고 있다. 우리 피아트 공장에도 당원이 한 사람도 없다.” 대신 그 친구는 '공산주의 투쟁'이라는 정당의 당원이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자신들은 과거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였던 보르디가 등이 이끌어왔던 정당이라고.
보르디가는 20년대 코민테른 창립 때 레닌에게도 대항하여 의회주의 무용론을 펼쳤던 좌파계열의 맹장이며, 그람시도 한때 그 그늘 아래 있었던 인물로서 나에게는 기억되는 인물이다. 사라져간 인물로 알았던 그가 이끈 정당이 계속 활동 중이라니 놀랍기도 했다.
이 당은 현장에 뿌리박는 것을 중시하여 자신들은 토리노 피아트 공장에만도 50명의 당원이 있고, 주요 공장지대에 당원이 집중되어 있으며, 매월 기관지를 발간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집회 때도 이들은 이 기관지를 판매하고 있었다.
타산지석
내게 보여준 최신호 기관지 내용을 보니 이탈리아 재벌 분석, 유럽정치, 미국의 양극화와 선거, 인도, 남북한 긴장 관계 등의 이슈들이 눈에 띤다. 점심은 사주면서도 기관지 구입 1유로를 달라고 한다. 이들은 레닌주의를 주창하지만 보르디가 류의 의회무용론에 가깝고 소수화된 상황에 자족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주류 좌파의 시장에 대한 굴복과 무원칙한 선거연합으로 인한 정체성 위기, 비주류 좌파의 낡은 레퍼토리와 분열주의가 이탈리아 좌파정치의 총체적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 본격적인 평가라기에는 너무 거친, 현장에서 느낀 나의 소회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김태현 / 민주노총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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