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로, 한RSS로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접했다. 그의 나이 서른 두 살.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말에 내 마음도 쓰리다. 빈곤이라는 점에서 그와 나는 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 때 찍은 단편영화로 주목받던 한 작가는 차가운 방 안에서 혼자 죽어갔다. 설도 되기 전에. 그렇게.
나는 그의 죽음이 슬픈 한편, 화가 난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도 좋고, 재원의 죽음에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좋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났다. 화를 내야 한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는 '문화 산업'이라는 맷돌, 더 크게는 자본주의라는 '사탄의 맷돌'에 갈려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소설이든 영화든 만화든 음악이든. 저임금에 불안정한 고용이 일상적인 동네다. 그나마 받는 임금도 떼어먹히기 일쑤다. 거기다 선후배를 강조하는 문화 속에서 '후배들'이 제 목소리를 못내는 구조는 "열심히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어"라는 희망고문과 함께 현재의(그리고 미래의) 창작자들을 끊임없이 갈아버리는 맷돌이다.
나는 청소년보호법과 만화대여점에 반대하는 운동을 했다. 운동이 소멸하고 나서도 여전히 아쉬운 점은, 작가들이 좀 더 급진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던 데 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출판사 등과 싸우지 못했다. 당시 한 작가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땐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그러나 그래선 안 되었다. 왜 작품으로 말하냐며 도망치냐고, 당신 밥그릇은 당신이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어야 했다(그 점에서 '전사'는 박무직 하나뿐이었다. 몇 년 전 나는 박무직의 에로만화계 진출을 비난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나쳤다. 그의 '고립'은 자초한 부분도 있으나, 작가들과 운동가들은 그를 홀로 내버려두면 안 되었다).
물론 작가의 고립은 자초한 것뿐만 아니라 강요된 것이기도 하다. 저 말도 만화판에서 그나마 깨어있다는 작가가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권위주의 문화에 절어있는 '보통 작가들'은 도무지 어떻단 말인가.
나는 작가들이 사회 참여에 전혀 무관심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악! 법이라고?』를 내는 등 정권비판에 서슴지 않으면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작가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그들의 투쟁은 정치적인 이슈에서 맴돌 뿐이고, 경제 민주화 및 일상의 민주화에는 여전히 취약하다(이들은 '민주개혁세력'의 딜레마를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다).
그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몇 년 전 미국 드라마 작가들의 파업이었다. <CSI>, <히어로즈> 등의 제작을 중단시키며 헐리우드 전체를 뒤집어 놓았던 그 투쟁은 우리 작가들에게 미국 작가들의 힘을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매체에 대한 영향력 측면ㅡ미국 작가들은 헐리우드라는 전지구적인 '중심'에 기반을 두고 있다ㅡ에서 미국과 한국의 작가들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겐 '길드'가 있었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조합이다. 연대만이 살 길인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아이디어는 capcold, <2010베스트: capcold 세계만화대상 발표>를 참고하기 바란다).
한국의 작가들은 고립이 곧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동시에, 선후배 사이의 권위주의 문화와 제작자-창작자 사이의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 속에서 조합 하나 만들기도 요원한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그 구조를 어떻게 깰 수 있을까. 해답도 요원하기 그지없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그저 연대다. 어떤 사람(들)은 좌빨들이 이슈를 가지고 또 투쟁하자고 꾀어낸다며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묻고 싶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싸우지 않고 배길 수 있느냐고. 분노하지 않고 배길 수 있느냐고. 그 어느 것도 거저 얻어지지 않았다는 걸 떠올려야 한다.
왜 우리는 길드를 갖지 못할까? 이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계속해서 작가와 독자(관객) 대중이 분노하지 않는 한, 작가들의 고립된 죽음은 거듭될 것이다.
故 최고은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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