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얘긴 시사인 제165호(2010년 11월 13일자)에서 박권일(『88만원세대』 공저자)이 다 얘기해서 별로 할 말이 없긴 하다. 요컨대 G20은 비민주적이고(왜 G7도 아니고 G10도 아니고 G20인지 그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이 제로), 실효성이 없으며(금융거래세, 은행세 등을 도입할 의지도 제로), 무엇보다 기만적(금융위기를 초래한 국가의 수장들이 모였는데도 금융위기 해소에 대한 책임감도 제로)이라는 얘기다(두 번째 부분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시사인 기사를 봐주시길). 그러나 적어도 내가 G20에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이 세 가지에 있다.
그런데 G20에 반대하는 이유를 들기 전에 박권일이 딱 집은 게 하나 있다. 그러니까 정부의 국격 드립이나 과도한 시민의식 강요에 대한 풍자는 있어도, G20 자체에 대한 비판 같은 건 도통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언제나 그랬듯, 이명박 개새끼, 라고 하는 건 참 쉽다. 국격 그까짓거 뭐라고 난리야, 불평하는 것도 쉽다. 그런데 풍자하고 조롱하는 게 끝이다. 이게 전국민적 카타르시스의 고양(혹은 오르가즘?)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이런 말들만큼 권력에게 안전한 말은 없을 거다. 물론 억압적인 시대일수록 풍자가 발달하는 건 맞다. 과격한(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선전보다 풍자와 해학이 더 가볍고 즐거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풍자 안에서 너무나 쉽게 안주하는 건 아닌가. 게다가 조롱에는 언제나 조롱으로 맞상대할 뿐이다. 경호특별법을 비롯한 정부의 과잉반응에 대한 비난 역시 세계 정상들 모이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수준의 답변만 돌아올 뿐이지 않나.
솔직히 이건 이른바 좌파(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가 G20을 얼마나 나이브하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한다(G20 반대 시위에서 '애국심' 운운하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아주 그냥 속터지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도 그것과 별 다를 게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G20 정상회의가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당신의 목소리도 전달되지 않고, 아무 것도 바꿀 의지가 없는 채 그저 지금의 '세계 질서'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국가 마케팅 하고 있는 판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게다가 자국은 양적완화 정책(간단히 말해서, 헬리콥터로 돈 뿌리는 일)을 추진하면서도 다른 나라들에는 시장 결정적 환율제도(역시 간단히 말해서, 환율을 달러의 수요와 공급에 그냥 맡기라는 것. 아니, 잠깐. 달러의 공급은 Fed가 하잖아?)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오바마는 얼마나 기만적인가. 한 마디로, 환율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토빈세를 비롯한 금융거래세와 은행세 의제(링크한 기사에서는 한국의 정책, 그것도 올해 6월의 정보만 제시되어 있다)는 그저 들러리가 되었을 뿐이다. 환율-기축통화 문제와 투기불로소득 환수 및 부자 증세를 이야기하지 않는 G20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부자한테 뭐 뜯어내지 못해 왜 그리도 안달이냐는 사람들도 있겠다. 도무지, 자칭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사람들이 '노블'로서 책임조차 지지 않겠다는 행보를 비판하지 않는다니. 이건 우파적으로 봐도 넌센스다)? 또, 장하준이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IMF, 세계은행, WTO에 대한 개혁도 얘기하지 않고 무슨 개도국 성장 견인 운운한단 말인가?
백보 양보해서 G20 서울 회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잘해야 G20 토론토 회의에서 합의된 '재정 건전성' 유지일 것이다. 이 재정 건전성 유지란 결국, 긴축재정을 통해 국가 부채를 줄이겠다는 건데 이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 가계 소비 하락, 기업 투자 감소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을 더욱 고착화시키겠다는 얘기다. 지금은 각국이 전지구적 규모의 재정지출을 통해 겨우 금융위기를 봉합한 상황이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이 여전한 상태에서 금융에 손대지 않고 재정 건전성만 얘기하는 지금 같은 상황은 더 큰 위기만 불러올 것이다. 한술 더 떠서 한국 정부는 비즈니스 서밋이 서울 회의 이후 정례화될 거라며 이 또한 G20 서울의 성과라고 자축한다. 국가 못지 않게 금융위기와 고용 문제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기는 커녕, 귀빈으로 대접하는 이 역설을 어떻게 그냥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구나 기업은 참여하는데 제3섹터인 시민단체는 왜 거부할까. 이게 민주주의의 탈을 쓴 과두정이 아니고 무엇인가(어차피 권력은 원래 그랬다느니, '과두제의 철칙'이라느니 하는 말은 사양하겠다. 그런 말로 G20을 합리화할 거면 자신이 민주 국가의 시민이라는 말도 하지 마시라).
더욱 안타까운 건 G20에 반대하는 이른바 '좌좀'에 대한 일부의 반발이 고작 정부의 G20 추진을 옹호하는 정도에서 맴도는 데 있다. 좌파들이 말하는 게 고깝고 불편한 건 그려려니 하겠는데, 겨우 돌아서는 지점이 정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답습하는 정도라니.
요약하자. 나는 G20 서울 회의에 모인 세계 정상들(과 거기 모인 기업인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소하는 데 어떤 진지함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IMF, 세계은행, WTO에 대한 개혁 의지도 없고, 기축통화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 상태의 국제경제질서 유지에도 반대한다. G20이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지 않은 채 무조건 좌좀만 까고 보자는 사람들에게도 반대한다. 지금 내가 하는 말도 찻잔 속의 태풍이고, 허공에 대고 외치는 소리일 뿐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말도 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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