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환빠'라는 말보다 '유사역사학'이라는 말이 나름 영향력을 갖게 된 것 같다(이게 이글루라는 작은 생태계에 국한되는지, 조금 더 넓은 영역까지 나아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유사역사학을 비난하기만 하면, 담론의 취약성을 공격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유사역사학에 매몰된 사람이 '치유'될까?
유사역사학 비판 자체는 '합리적'이다. 『환단고기』만 봐도, 역사라기보다는 '전설'에 더 가깝다(그조차 '가공된 전설'일 가능성이 높지만.). 특히 고대사는 다른 역사 분야보다 더욱 더 사료와의 싸움이고(그런 의미에서 역사가의 진정한 적은 '시간'이다. 시간은 진실뿐만 아니라 왜곡과 과장, 오류마저 마모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기록 자료의 한계 때문에 고고학, 인류학과의 연계가 불가피한 분과다. 그래서 아무리 『환단고기』나 다른 비슷한 주장으로 떠들어 대도 사료가 반박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유사역사학의 신화를 믿는 걸까.
그 근원은 다름 아닌 경제와 정치 사이의 괴리에서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즉, 자본주의 중진국 반열에 올라선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주로 국민경제와 연결된 자신감), 언제나 강한 나라들에 둘러싸여 '약소국'의 지위에 설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인식'(국제정치적인 위상) 사이의 괴리에서 가장 강렬한 빛을 내뿜는 탈출구가 다름 아닌 『환단고기』 아니었을까.
그래서 유사역사학 비판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환독'이 쉽게 사라지지 않은 채 변형되어 잠재해 있는 건 아닐까. 『환단고기』는 위작이고 헛소리라고 말해도, 자본주의 중진국인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강국'으로 팽창하기를 바라는 욕망과 함께 한다면 그건 '세 번 거짓말한 베드로' 밖에 더 될까.
한 마디로, 나는 '환독'은 제국주의적 팽창 욕망과 궤를 같이 하는 반(反)시대적 욕망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한편, 유사역사학이라는 규정은 두 가지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첫째로, 역사학이 '담론'의 세계에 있고 언제나 '상상되고 재구성되는 것'인 한, 유사역사학 논쟁 자체는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굳이 E. H. 카를 불러내지 않더라도, 역사가 시대에 따라 구성과 재구성을 거듭한다는 건 역사학의 주요 전제다. 나는 앞서, 기록 자료와 함께 고고학적 발굴과 인류학적 탐구가 고대사 연구를 보충해준다고 이야기했다(더러 고고학적 발굴이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인상도 준다.). 역사 연구가 어려운 것은 여전히 '해석'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환독'이 내내 까일 수 있는 것은 해석의 문제에 있어 적합성을 획득하지 못한 데 이유가 있다(그건 앞으로도 힘들 것 같다.). 유사역사학 논쟁은 해석의 과정에서 '정통'과 '이단'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정통의 전선front에서 다른 이단들이 분쇄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런데 무엇을 기준으로 '정통'을 내세울 것인가. 이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야가 한국전쟁 및 분단사라고 보는데-물론 북한의 남침설 자체는 논객 사이에 합의를 본 상태인 듯하지만-'정통주의' 해석에 대한 '수정주의' 해석의 '편협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기울어질 가능성은 여전하지 않을까.
두 번째로, 앞의 논의에서 이어지는데, 어디까지를 '유사'로 볼 것인가이다. 환단고기 지지자들은 바로 이 점을 파고 들어 '다양성'을 내세워 반박에 나설 지도 모른다. 난점은 역사의 전장에서 전선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유사'를 판단할 근거를 제시하는 작업이 병행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유사'라는 딱지가 특정 입장에서 다른 입장을 일방적으로 '낙인찍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요약한다. '유사역사학 비판'은 '환독'을 대상으로 하는 한, 그 담론적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해석'의 문제와 '범주'의 오류 사이에서 균형을 잃을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는 걸 망각한다면 지극히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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