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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 Think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by parallax view 2010. 11. 17.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한경구 외 / 일조각, 2003)은 한국문화인류학회에서 엮은 문화인류학 교양서다. 인류학에 대해 단편적으로밖에 알지 못하기에 입문 차원에서 읽었다. 학자들을 해외 이론이나 지식의 '오퍼상' 쯤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인류학에 있어서는 그런 말이 잘 해당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인류학은 이론적인 작업 이상으로 '참여관찰'이 무척 중요한 분과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전환』에 소개된 말리노프스키나 마거릿 미드 등 인류학자들은 모두 어떤 거대한 이론이나 서사에서 지식을 탐구하지 않은 듯하다. 트로브리앙 군도에 가서, 뉴기니의 마을로 들어가서 눈으로 직접 살피고 주민들과 호흡하며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고자 시도했다.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의 지은이들 역시 한 사람의 인류학자로서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부흥 운동, 다국적 기업의 여성 노동 행태, 제주 해녀의 생애 등에 대한 참여관찰과 '문화기술지'(보통 '민족지'로 번역되지만, 조한혜정은 이를 '문화기술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작성을 통해 현지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자 한다. 이들은 인간에 대해 더욱 밀접하고 현장성 있는 접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이 책 한 권으로 현장 연구를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디까지나 맛보기로 질적 연구 방법론, 젠더 연구, 가족, 종족성, 경제, 정치, 사회, 미학, 종교, 역사 등을 개략적으로 짚어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파트는 '제3장 루시에서 사이보그까지'(김현미)와 '제10장 몸을 통해 문화를 본다'(김은실), '제13장 타문화로서의 과거'(함한희)였다. 제3장과 '제4장 여성성과 남성성'(조한혜정)을 읽으며 진화심리학 담론이 서구+남성+엘리트에 편향되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더 커졌다. 또, '제12장 문화현상으로서의 종교'(김형준)를 보면 리처드 도킨스 등이 벌이는 '종교 전쟁'이 결국 '종교=기독교'의 인식틀과 계몽주의적 이분법 안에서 맴도는 논쟁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즉, 도킨스는 종교 일반을 공격하지만, 도리어 기독교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며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 대한 여백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학은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 지배를 과학화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인류학자들은 이를 반성하기 위해 더욱 더 '낯설게 보기'를 몸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것 같다. 특히 조한혜정은 현장연구를 넘어 '개입'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는 본문 밖의 이야기다). 현장이 어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것.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호흡하며 '몫 없는 자들'이 되는 것. 그러면서도 또 다시 조금 거리를 두면서 그들의 삶을 가능한 고스란히 전달하는 일. 그리고 마침내 '그들'과 '나'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공감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일('순수한 연구자'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덧. '제7장 문화로 풀어보는 경제'(오명석)는 경제인류학과 관련한 장으로, 필통의 <경제인류학 카페>에서 관련 글과 자료를 보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조한혜정, 우석훈 등의 강의를 일부 볼 수 있다(아쉽게도 장하준, 박찬욱, 오명석 강의가 열리지 않는 것 같다). 작년부터 폴라니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도 살펴봐야겠다.

덧2. 이 책은 문화연구라는 큰 틀에서 바라봐야 더 적절하다. 특히 '제8장 정치의 문화인류학'(김광억) 등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 등을 염두에 두어야 더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문화연구에 대한 주요 접근법으로서 문화인류학이 어떻게 '권력'을 해부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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