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원, 추천제로 합시다
(레디앙 기고)
3월 출간된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원고의 문제의식과 이어지는 글이다(leopord, <정치혐오와 정면으로 맞서기>). 지방선거가 하루 남은 오늘, 기초의원을 추천제로 바꾸자는 말이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다. 기초의원은 투표하지 말자는 얘기니까.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투표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민의 권리는 좋은 대리인을 뽑는 데서 끝나는 것일까. 지방자치의 주체가 끝내 지역 주민이라면, 시정·구정을 지역 주민이 직접 다스리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 아닐까. 이건 진보신당 같은 이른바 진보 정당의 정치적 기반 마련과 또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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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걷다 보면 곳곳에 보이는 게 트럭이다. 과일이나 채소 실은 트럭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련만, 도무지 시끄러워서 대체 무슨 일이야 하고 쳐다볼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를 맞아 후보를 선전하는 트럭들이다.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왜 그리도 다들 트로트 열풍인지. 아줌마 아저씨들 좋으라고 틀어놓은 게 당연하건만 귀에는 거슬리기 일쑤다. 그냥 세대 차이일까? 하지만 최신 유행가를 가져다 틀어놓아도 시끄럽긴 마찬가지. 일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와 잠이라도 청할 때면 으레 요란한 선거방송에 또 몇 번이나 깨곤 하는지.
지방선거의 취지가 지역 주민이 민주적으로 지역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 방법으로 대의제가 동원되는 것도 대의제 국가의 시민인 우리들에겐 익숙한 일이다. 기초의원이라 불리는 구의원, 시의원에서부터 광역단체장인 도지사 등, 거기에 교육위원과 교육감까지 그 동안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임명하거나 불투명하게 결정되었던 인사를 지역 주민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보라 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솔직히, 선거 한 번에 8표는 너무 많다. 나는 서울에서 거주하는 지방민, 즉 부재자였기 때문에 얼마 전에 먼저 투표를 했다. 갈색 봉투 안에 한 아름 든 선전물을 꼼꼼히 읽을 엄두는 좀체 나지 않았다.
뭐가 이리 많아
이미 비례대표는 어느 당에 줄지를 결정해 두었으므로 남은 것은 기초, 광역단체장들과 교육위원 등을 정하는 일이었다. 지방에 내려와 살지 않으니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는 정말, 선전물 조금과 몇 안 되는 기사가 전부였다.
겨우 후보들을 정하고 나니 6명(도의원 비례와 시의원 비례 제외)이나 되는 후보를 다 머릿속에 기억했다가 투표할 자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수첩에 후보들을 하나하나 적어서 가져가야 했다. 한참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야 할 젊은 것(!)도 이렇게 고생인데, 머리 굳었다고 한탄하는 아저씨들이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고충은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정확하게는 나같이 '오바성' 진지함을 표출하는 유권자가 별로 없을 게다. 그저 내가 아는 사람이니까, 언젠가 한 번 도움을 받았으니까, 힘 있는 당 사람이니까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로 투표를 하기 때문에 표가 6개든 8개든 상관없는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시의원까지 일일이 뽑아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는 얼마나 제대로 돌아갈까? 선거 때마다 시끄럽고 시시콜콜하고 거기다 돈도 많이 드는데!
선거운동원에겐 일급 줘야지(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일용직 노동자인지도 모른다.), 곡 써 준 사람들한테는 저작료 줘야지(그런데 노브레인은 이명박 선거운동 끝나고 돈 좀 솔찬히 받았을까?), 이외에도 돈 나가는 곳은 수두룩할 게다. 지방선거에서 뿌린 돈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면야 좀 좋겠지만 과연 그럴까? 언제나 그렇듯, 눈 먼 돈은 그냥 눈 먼 돈일뿐이다.
기초의원, 무작위 추첨제는 어떨까?
대의제가 민주주의의 전부일 수는 없다.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이고, 시대적이고 사회구조적인 필요에 의해 채택된 시스템 중 하나다. 그 필요성을 당장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몇 가지 문제는 제기해봐야겠다.
과연 구의원이나 시의원 같은 작은 단위에서까지 대의제를 관철시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또 정당이 그 단위까지 자리를 차지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지역 주민이 투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역 의회에 진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기초의원은 추첨제로 진행했으면 좋겠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을 대상으로 4년에 한 번씩 온라인 추첨을 거쳐 무작위로 선출하는 방식은 어떨까. 이 때 추첨으로 올라간 사람들의 인격적 결함이나 신체적 불평등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다.
국민공천배심원제와 같이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기초의원 심의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심사를 밟게 하는 방법도 가능할 게다.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성과 인성을 전제로 지역 주민이 돌아가면서 단임으로 지역 의원이 되는 것이다.
시끄러운 선거는 이제 그만
고대 아테네의 추첨제를 지금 되살린다는 게 도리어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지역 주민들의 자치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우리는 뉴타운 욕망에 휩쓸려 이명박을 뽑은 자랑스러운 국민들이 아닌가 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을 게다.
여기서 무턱대고 “민중을 믿는다.”고 뻔뻔스레 대꾸할 생각은 없다. 단지, 민주주의란 꾸준히 스스로를 벼리는 과정 자체에 있다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이제 구의원, 시의원은 지역 주민이 직접 나서도 되지 않을까. 시끄러운 선거 홍보와 번거로운 투표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말이다.
4년이라는 기간 때문에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기초의원이나 기초단체장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과를 이어가고자 한다면 대의제에 맴도는 지방선거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게다. 정당에 대표되지도 않고 정부에 임명되지도 않을 때, 지역의 예산과 정책을 스스로 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을 겪을 때 비로소 지방자치의 알맹이가 나오지 않을까.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지금도 선거 방송이 동네방네 요란하다. 적어도 기초의원 선거는 좀 하지 않기를. 기왕이면 좀 직접민주주의 하자. 시끄럽고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드는 선거는 이제 좀 그만!
(레디앙 기고)
3월 출간된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원고의 문제의식과 이어지는 글이다(leopord, <정치혐오와 정면으로 맞서기>). 지방선거가 하루 남은 오늘, 기초의원을 추천제로 바꾸자는 말이 좀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다. 기초의원은 투표하지 말자는 얘기니까. 그런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투표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민의 권리는 좋은 대리인을 뽑는 데서 끝나는 것일까. 지방자치의 주체가 끝내 지역 주민이라면, 시정·구정을 지역 주민이 직접 다스리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 아닐까. 이건 진보신당 같은 이른바 진보 정당의 정치적 기반 마련과 또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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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걷다 보면 곳곳에 보이는 게 트럭이다. 과일이나 채소 실은 트럭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련만, 도무지 시끄러워서 대체 무슨 일이야 하고 쳐다볼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를 맞아 후보를 선전하는 트럭들이다.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왜 그리도 다들 트로트 열풍인지. 아줌마 아저씨들 좋으라고 틀어놓은 게 당연하건만 귀에는 거슬리기 일쑤다. 그냥 세대 차이일까? 하지만 최신 유행가를 가져다 틀어놓아도 시끄럽긴 마찬가지. 일을 마치고 새벽에 들어와 잠이라도 청할 때면 으레 요란한 선거방송에 또 몇 번이나 깨곤 하는지.
지방선거의 취지가 지역 주민이 민주적으로 지역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 방법으로 대의제가 동원되는 것도 대의제 국가의 시민인 우리들에겐 익숙한 일이다. 기초의원이라 불리는 구의원, 시의원에서부터 광역단체장인 도지사 등, 거기에 교육위원과 교육감까지 그 동안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임명하거나 불투명하게 결정되었던 인사를 지역 주민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보라 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솔직히, 선거 한 번에 8표는 너무 많다. 나는 서울에서 거주하는 지방민, 즉 부재자였기 때문에 얼마 전에 먼저 투표를 했다. 갈색 봉투 안에 한 아름 든 선전물을 꼼꼼히 읽을 엄두는 좀체 나지 않았다.
뭐가 이리 많아
이미 비례대표는 어느 당에 줄지를 결정해 두었으므로 남은 것은 기초, 광역단체장들과 교육위원 등을 정하는 일이었다. 지방에 내려와 살지 않으니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는 정말, 선전물 조금과 몇 안 되는 기사가 전부였다.
겨우 후보들을 정하고 나니 6명(도의원 비례와 시의원 비례 제외)이나 되는 후보를 다 머릿속에 기억했다가 투표할 자신이 나지 않았다. 결국 수첩에 후보들을 하나하나 적어서 가져가야 했다. 한참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야 할 젊은 것(!)도 이렇게 고생인데, 머리 굳었다고 한탄하는 아저씨들이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고충은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정확하게는 나같이 '오바성' 진지함을 표출하는 유권자가 별로 없을 게다. 그저 내가 아는 사람이니까, 언젠가 한 번 도움을 받았으니까, 힘 있는 당 사람이니까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로 투표를 하기 때문에 표가 6개든 8개든 상관없는지도 모르겠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시의원까지 일일이 뽑아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는 얼마나 제대로 돌아갈까? 선거 때마다 시끄럽고 시시콜콜하고 거기다 돈도 많이 드는데!
선거운동원에겐 일급 줘야지(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일용직 노동자인지도 모른다.), 곡 써 준 사람들한테는 저작료 줘야지(그런데 노브레인은 이명박 선거운동 끝나고 돈 좀 솔찬히 받았을까?), 이외에도 돈 나가는 곳은 수두룩할 게다. 지방선거에서 뿌린 돈으로 지역 경제가 살아나면야 좀 좋겠지만 과연 그럴까? 언제나 그렇듯, 눈 먼 돈은 그냥 눈 먼 돈일뿐이다.
기초의원, 무작위 추첨제는 어떨까?
대의제가 민주주의의 전부일 수는 없다.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이고, 시대적이고 사회구조적인 필요에 의해 채택된 시스템 중 하나다. 그 필요성을 당장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몇 가지 문제는 제기해봐야겠다.
과연 구의원이나 시의원 같은 작은 단위에서까지 대의제를 관철시켜야 할 이유가 있을까? 또 정당이 그 단위까지 자리를 차지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지역 주민이 투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지역 의회에 진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기초의원은 추첨제로 진행했으면 좋겠다.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을 대상으로 4년에 한 번씩 온라인 추첨을 거쳐 무작위로 선출하는 방식은 어떨까. 이 때 추첨으로 올라간 사람들의 인격적 결함이나 신체적 불평등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다.
국민공천배심원제와 같이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기초의원 심의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심사를 밟게 하는 방법도 가능할 게다. 의정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성과 인성을 전제로 지역 주민이 돌아가면서 단임으로 지역 의원이 되는 것이다.
시끄러운 선거는 이제 그만
고대 아테네의 추첨제를 지금 되살린다는 게 도리어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지역 주민들의 자치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우리는 뉴타운 욕망에 휩쓸려 이명박을 뽑은 자랑스러운 국민들이 아닌가 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을 게다.
여기서 무턱대고 “민중을 믿는다.”고 뻔뻔스레 대꾸할 생각은 없다. 단지, 민주주의란 꾸준히 스스로를 벼리는 과정 자체에 있다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이제 구의원, 시의원은 지역 주민이 직접 나서도 되지 않을까. 시끄러운 선거 홍보와 번거로운 투표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말이다.
4년이라는 기간 때문에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기초의원이나 기초단체장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과를 이어가고자 한다면 대의제에 맴도는 지방선거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게다. 정당에 대표되지도 않고 정부에 임명되지도 않을 때, 지역의 예산과 정책을 스스로 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을 겪을 때 비로소 지방자치의 알맹이가 나오지 않을까.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지금도 선거 방송이 동네방네 요란하다. 적어도 기초의원 선거는 좀 하지 않기를. 기왕이면 좀 직접민주주의 하자. 시끄럽고 번거롭고 돈도 많이 드는 선거는 이제 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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